'여성할당제' 후끈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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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추세로 가면 여성이 검찰을 장악하는 것 아니야."

"법무부 수장을 여성이 맡고 있는 시대인데, 뭐."

2월 17일 법무부의 신규 임용 검사 발표가 있던 날, 두 남성 검사가 내뱉은 '환영 반 우려 반'의 농담이다.

이날 신규 임용된 검사 81명 가운데 21명이 여성이었다. 지금까지 전체 검사 1,381명 중 여성 검사가 85명이었다.

'여성할당제' 후끈 달아올랐다

편견 줄어도 제도장벽은 여전

대부분 직업에서 남성의 성역이 무너지고, 일부 직업군(群)에서 남성이 소수자로 전환되기까지 한다. 이런 시점에서 정치권에서 제기된 '여성전용선거구제' 논의가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쪽에서는 이를 '평등을 위한 조치'로 해석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논의 자체가 위헌적 발상'이라며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의 추이로 볼 때 이번 총선에서 여성전용선거구제 도입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애초 이 제도 도입에 잠정 합의했던 국회 정치개혁특위조차 합의를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성전용선거구제를 둘러싼 이번 논란에서 얻은 것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할당제(쿼터제)로 보장하는 문제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크게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성계는 아직 사회 진출을 바라는 여성 앞에 적지 않은 장벽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 서민자 간사는 "여성의 경우 채용이 확정된 상태에서도 기혼 여부나 용모, 나이 등을 이유로 채용이 취소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꼬집었다.

군의 할당제는 오히려 '장애'

'여성할당제'는 이처럼 일하고 싶어도 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가로막혀 좌절했던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여성할당제 도입이 가장 활발한 부문은 공직 분야이다. 특히 1996년부터 '공무원 임용시험령'에 따라 여성 채용 목표제가 시행됨에 따라 9급 공무원시험의 경우 직급별로 최고 30%, 7급은 25%를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제도적으로 배려했다. 또 2000년 7-9급 공무원시험부터 군가산점제도가 폐지돼 여성의 공직 진출이 한결 수월하게 했다.

'여성할당제' 후끈 달아올랐다

여성부 관계자는 "공공 부문에 여성할당제가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아직 크게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한 뒤 "특히 과학기술계의 경우 여성이 진출할 수 있는 곳은 아직도 국-공립 연구기관이나 정부투자기관연구소 등에 국한돼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여성 공무원의 수는 많이 늘었지만 아직 관리직에 임용되는 여성은 극히 적고 각 부처 과장급 이상은 여성이 거의 전무하다"라고 덧붙였다.

군(軍)도 여성의 진출을 할당제로 보장하고 있는 분야다. 육-해-공군사관학교는 1997년부터 여성생도에게도 입학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그 비율을 정원의 10%까지 보장했다. 예컨대 육사의 경우 해마다 25명 안팎(정원 250명)의 여성 생도가 입교하고 있다. 해사와 공사 역시 해마다 입학생도 가운데 20명 가량을 여성으로 채우고 있다. 공사 정훈공보실 이영권 중령(43)은 "여성의 역할이 증대되는 사회발전 추세와 국가 정책방향에 부합하는 군 여성전문가 양성의 필요성을 고려해 1997년부터 여성생도의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사관학교 여성 생도의 경우 일반적으로 남성 생도에 비해 입학성적이 높다는 사실. 따라서 3군사관학교의 여성 생도 10% 할당제는 여성에게 오히려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여성할당제 도입과 관련해 최근 가장 주목을 끌고 있는 분야가 정치 부문이다. 우리나라 국회 여성 의원 비율은 5.9%로 세계 여성 의원 평균인 15%에 크게 미달할 뿐만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총선을 앞둔 최근에는 정치권과 여성계, 시민단체 사이에서 여성전용선거구제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여성의 정치참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여성전용선거구제가 사실상 물 건너 간 지금 여성계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은 비례대표의원 정수를 늘린 뒤 이 가운데 여성 의원의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려달라는 것.

조영숙 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은 "여성단체의 기본 입장은 처음부터 비례대표 확대와 여성 50% 할당이었다"라며 "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위헌이니 역차별이니 하는 주장을 펴는데 사실상 할당제는 평등을 위한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도 "올바른 개혁을 위해서는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며 "여성전용선거구를 만들려면 차라리 지역구를 늘리지 말고 그 의석만큼 비례대표를 늘려 여성에게 주면 된다"고 피력했다.

숫자는 숫자일뿐 '힘'이 아니다

'여성할당제' 후끈 달아올랐다

업무 특성상 육체적 능력이 중시되는 군측의 '여성할당제'에 대한 반응은 심각할 정도다. 해군의 한 영관급 장교는 "해군뿐만 아니라 각군 장교들은 지금의 추세대로 군장교 가운데 10%가 여성으로 배출된다면 인력 활용과 관련해 문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해군만 해도 해상 전투부대 함정에 여성을 태울 수가 없어 대형함 위주로 여성 생도를 태우고 있는데 그래도 남는 인력이 많다"고 우려했다. 사회적 시각 때문에 여성의 입학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막상 이들을 '쓸 데'가 마땅치 않다는 불만이었다.

여성할당제 도입이 가장 활발했던 공직 분야에서는 이미 일부 직군에서 남녀의 성비가 역전되는 현상이 발생해 2003년부터 여성할당제를 '양성평등채용목표제'로 바꾼 바 있다. 행시 및 7-9급 공무원시험에서 어느 한 성의 합격자가 70%를 넘지 않게 한다는 것이 양성평등채용목표제의 취지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어느 때보다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 불거진 여성전용선거구제와 비례대표 여성 50% 할당 논란이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주목된다.



기업에도 '할당제' 바람

지금까지 일반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남녀를 차별하는 관행이 알게 모르게 퍼져 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공공 부문에 비해 아직 민간 부문은 채용이나 승진에서 여성할당제 도입이 더딘 편이다. 다만 2002년 초 LG생활건강이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서 여성 사원을 20% 가량 뽑은 것을 시작으로 같은해 현대중공업도 대졸 공채에서 역시 전체의 20%를 여성으로 채용한 바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채용 과정뿐만 아니라 승진인사에서도 여성할당제를 도입했다. 국민은행은 2002년 12월 승진인사에서 국내 최초로 여성할당제를 적용했다. 당시 국민은행은 과장 승진자 가운데 20%에 해당하는 347명을 여성에게 할당했는데 이는 예년에 비해 2~3배 높은 수치였다.

민간기업이 여성할당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둔감했던 것은 공공조직과 달리 이들에게는 이를 강제할 만한 장치가 없기 때문. 여성부 공보관실 이정현 사무관은 "여성고용촉진법을 보면 여성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필요한 예산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는 정도의 조항이 있을 뿐"이라며 "이 정도의 소극적 인센티브라면 아무래도 기업들로서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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