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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 드러낸 '붉은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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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인류는 멀리 화성으로부터 날아올 소식을 기다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까지 지구촌은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화성에 도착한 우주탐사선 마리너가, 고도로 발달한 화성 문명 사진을 전송해오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마리너 4호가 보내온 사진은 무수한 충돌 구덩이로 얼룩진 황폐한 계곡뿐이었다. 그 사진에서는 문명이 존재한 증거라던 운하는 고사하고 생명체가 살아 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미국 신문들은 이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싣고 '화성은 죽은 행성'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이렇게 화성을 향한 인간의 짝사랑은 끝나는 듯했다.

생명체 존재했을 가능성 높아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사진들은 지질학자들을 흥분시켰다. 사진에 담겨 있는 화산, 거대한 계곡, 극관의 미세한 층리, 한때 물이 흘렀던 것으로 추정되는 수로 등은 화성이 지질학적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이것만으로도 이 미지의 행성은 충분히 탐험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화성이 제2의 지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일면서, 인간의 끝없는 화성 탐사가 시작됐다. 지금 인류는 화성에 안착한 쌍둥이 화상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보내오는 화상 한 장면 한 장면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아주 먼 옛날 화성에 생명이 존재했으며, 앞으로 지구인이 화성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화성과 금성, 지구. 넓은 태양계에서 이 세 행성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지구는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태양계 내에서 유일하게 생명체를 품은 별이고, 금성은 그런 지구의 쌍둥이 행성이다. 또한 화성은 태양계 내에서 지구와 가장 비슷한 환경을 가진 별이다. 우주탐사 계획이 금성과 화성에 집중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화성은 생명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 행성으로 그 의미가 각별하다.

화성은 지름이 지구의 절반 정도인 작은 별이다. 지구 대륙을 한데 뭉쳐놓은 것과 같은 크기다. 중심에 금속핵은 있으나 자기장은 없고, 오존층도 없다. 그러나 얄팍하지만 대기를 가지고 있다. 여기 저기 물이 있었을 가능성도 포착된다. 특히 화성의 마리너 계곡은 약 5,000㎞ 길이의 거대한 협곡인데, 이 협곡이 생성되는데 물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화성에 물이 있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물은 곧 생명체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과학자들은 이를 증명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다.

화성 탐사는 미국의 우주탐사선 마리너호 이후 1976년 바이킹호에 의해 재개됐다. 바이킹호의 탐사활동은 화성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화성의 흙이 점토와 산화철로 구성됐음을 밝혀낸 것이다. 또 온도 등 가장 기본적인 자료들도 수집됐다. 화성의 여름 최고 온도는 240K(-33℃), 같은 지점에서 새벽 최저 온도가 190K(-83℃)로 일교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바이킹의 주 임무에는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바이킹에 탑재된 소형 생물실험실은 생명체의 호흡, 영양분의 흡수, 토양과 주위와의 기체교환 등의 증거를 찾기 위한 실험을 계속했다. 화성으로부터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SNC 운석이 물분자와 유기화학 탄소분자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바이킹의 토양 분석에서 생명체의 기운을 밝혀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실험에서는 생명체의 기운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2005년 유인우주선 발사 계획

바이킹의 탐사 결과는 실망할 정도였지만, 과학자들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더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한결 광범위한 탐사 활동이 필요했다. 화성에서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사람을 대신해 샘플을 채취하고, 분석할 똑똑한 탐사기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요구는 1997년 현실화했다. 화성 탐사선 패스파인더는 화성에 색다른 물체를 내려 놓았다. 6개의 바퀴를 가지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가는 로봇. 바로 소저너의 화성 탐사가 시작된 것이다. 소저너는 알파 프로톤 X레이 분광계(APX) 등 첨단 분석센서를 장착하고 지구의 조종에 따라 각종 탐사 작업을 수행했다. 비록 하루에 10~20m 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초거북 행보였지만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특히 패스파인더는 화성에서 홍수의 흔적을 찾아내 지구를 기쁘게 했다. 소저너의 뒤를 이어 올해 다시 화성을 찾은 오퍼튜니티와 스피릿은 더욱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탐사중이다.

이들 탐사선의 임무는 '생명체를 잉태할 태고의 환경'을 찾는 것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스피릿을 '로봇 지질학자'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이들은 화성에서 홍수가 있었던 곳으로 짐작되는 구세브 분화구와 메리디아니 고원에서 물의 흔적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표의 암석이나 흙에서 점토층이나 소금 등 강과 바다의 흔적을 찾아내길 갈망하며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탐사선의 또다른 임무는 인간이 직접 화성탐사에 나설 경우 맞닥뜨릴 위험 요소들을 미리 분석하는 것이다.

현재 NASA는 화성에 유인우주선을 발사할 계획이며, 2005년이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 아직 화성으로부터 물을 찾았다는 소식은 없다. 다만 화성표면에서 채집한 산화철 등이 물이 있었을 개연성을 시사하고는 있으나 NASA는 분명한 대답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과연 인류는 화성에서 물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까.



'화성인' 집착 화성탐사 불붙였다

인류의 우주탐사, 그 이면에는 '화성인'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 깔려 있다. 화성에 고도의 문명이 존재할 것이라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은 1920년대 이탈리아 천문학자 지오바니 쉬페랄리다. 당시 지오바니는 화성을 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길고 희미한 선들, 즉 물이 흐른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는데, 이것이 화성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증거라는 꼬리표를 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특히 지오바니의 논문이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 단순히 물이 흐른 흔적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수로'가 인공적인 물길을 뜻하는 '운하'로 오역되면서 사태는 심각해졌다.

여기에 미국 보스턴의 재벌인 퍼시발 로웰이 가세하면서 화성의 문명 존재설은 사실로 굳어졌다. 로웰은 지오바니가 관찰한 수로가 화성인들이 악화해가는 기후에서 생존하기 위해 건설한 운하라고 주장했고, 이를 대중강연을 통해 전파했다. 특히 로웰 가문은 당시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매우 존경받는 명문가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얻기 쉬웠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명문가 자손이 따뜻한 밥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거짓말을 하겠어?"라는 믿음이다. 게다가 로웰은 화성 곳곳에서 '운하'를 직접 관측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로웰 이외에는 운하 관측에 성공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망원경 제작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운하'의 실존 가능성은 부정됐다.

하지만 대중은 로웰의 '화성인'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였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행성탐사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라고 동의했다. 즉,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우주계획이 현실이 됐다.

유지영〈과학신문 기자〉 jyryoo@scienc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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