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서 길에게로

고석정에서 도피안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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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5년, 외눈박이 궁예는 철원에서 민중들과 함께 미륵세상을 열고자 했다. 그러나 그 꿈은 호족세력들과 연합한 왕건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다. 양주 출신의 백정 임꺽정은 철원을 무대로 더러운 세상을 훔치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고석정 밑을 흐르는 한탄강 속으로 꺽지가 되어 숨어버렸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던 철원을 중심으로 한 철의 삼각지대는 피의 능선에서, 아이스크림고지에서, 백마고지에서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다.

이처럼 한탄강을 끼고 펼쳐진 철원평야에는 무너진 꿈의 잔해들이 무더기로 널려 있다. 궁예의 꿈이 꺾이고, 상처만으로 덧없는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아직까지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는데, 우리는 이번에도 기어이 무너지고 말 것인가.

고석정 물 속에 꺽지가 산다

[길에게서 길에게로]고석정에서 도피안사까지

맹렬한 철원의 추위가 고석정 주변의 한탄강 물을 꽝꽝 얼려놓은 다음, 눈덮인 그 단단한 얼음판 위로 한 번 거닐어보라. 햇살을 잘 받은 눈은 발밑에서 자꾸만 뽀드득거리고, 아릿한 겨울바람조차 왠지 차갑게만 느껴지지 않으니, 고석(孤石)의 높은 벼랑도 결코 쓸쓸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어느새 겨울은 철원의 벼랑밑에까지 아늑하게 내려앉아 있는 것이다.

고석정에서 자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놓고 자랑하려는 자연의 풍광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임꺽정에 얽힌 설화 한 자락쯤 떠올려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 지방 사람들은 양주 백정 출신 임꺽정이 큰뜻을 품고 자기를 단련하고, 동지들을 규합한 곳으로 고석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임꺽정이 황해도 서흥에서 부상을 입고 관군에게 체포되어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 후에도, 이 고장 사람들은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평소의 변화무쌍하던 재주를 부려 꺽지라는 물고기로 변해 한탄강물 속으로 숨어버렸다고 믿는 것이니, 민초들의 사랑이 어떻게, 어디로 가는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좌가 아닐 수 없다.

고석정의 두꺼운 얼음판 위에서 발을 굴러 깊숙이 흐르는 한탄강에 물어보라. "꺽지여, 잘 있느냐"고. 민망하게도 나는 그 대답을 민물매운탕집 아주머니에게서 듣는다. "강물이 풀리는 3~4월이면 영락없이 꺽지의 맛을 볼 수 있다"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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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말(신철원) 쪽에서 고석정으로 가다보면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해진 다리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북에서 반을 만들고, 남에서 나머지를 만들어서 이승만의 '승' 자와 김일성의 '일' 자를 땄다고도 하고, 한국전쟁 당시 장렬히 산화한 박승일 연대장의 이름을 따서라고도 하는 '승일교'다. 한탄강 위를 가로지른 한국판 〈콰이강의 다리〉는 이제 차로 건널 수 없고, 그 옆으로 새로 난 '한탄대교'를 지나면서 건너다볼 수 있다.

비무장의 넉넉함으로

[길에게서 길에게로]고석정에서 도피안사까지

제2땅굴에 이르기 전에 오른쪽에 위치한 바다처럼 넓은 토교저수지 안에는 민간 소유의 작은 섬이 하나 있다. 그 섬의 주인이 소일삼아 섬 안에 토끼를 방목했다고 한다. 한겨울이 지나고 걱정스러웠던 주인이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보니 토끼는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더라는 것이다. 과연 토끼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답은 한겨울의 추위에 호수가 얼어붙자 그 얼음판 위를 달려 뭍으로 내빼버린 것이다.

이 문제를 내면 초등학생급들은 금방 정답을 알아맞힌다고 한다. 복잡한 어른들만 얼피설피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거나, 되지도 않은 비약으로 답을 그르친다.

안보관광의 첫번째 방문지는 제2땅굴이다. 무엇 때문에 500m(왕복 1㎞)에 이르는 땅굴의 끝까지 앞사람의 등짝만 보고 다녀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놓치지 않고 보아둘 것이 하나 있다. 처음 이 땅굴을 발견할 때 뚫었다는 시추공이다. 땅굴 안에서 그 구멍을 통해 땅 위의 빛이 아득하고 희미하게나마 비춰 들어오고 있음을 보라. 마치 소통과 통일에의 간절한 희망처럼.

철의 삼각전망대부터 풍경은 상처로 변한다. 전망대의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는 낙타고지를 비롯한 숱한 피의 전선(戰線)들, 달빛 교교하던 월정리역에는 다리 부러진 철마가 누워 있고, 폐허가 되어버린 구철원 시가지를 달려 마침내 노동당사에 이르면, 상처는 더 이상 아물기조차 힘들어한다. 그래도, 전망대 망원경의 셔터가 내려지면 조용히 가슴에 대고 물어보자. 저 철책 너머 아련한 들판 깊숙이 가시처럼 박혀 있는 모든 쇠붙이들을 걷어내고 난 다음, 비로소 비무장이 주는 넉넉함으로 우리 다시 만날 수는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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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교저수지의 토끼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철원군 전적지 관리사무소 소속 젊은 안내인 이나영씨다. 철원에서 이 일을 맡고부터 지긋지긋한 감기와 군복색 속에 묻혀 겨울을 난다는 이나영씨에게 통일은 실직의 위기인가, 겨울로부터의 해방인가. 농담이고, 철의 삼각지 여행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두루미-독수리 등 겨울 철새를 만나보는 일인데, 하루 두 차례 버스를 대절해오는 탐조 관광객(100명 이내)들에 한하여 가이드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피안은 아직도 멀기만 한가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샘통을 지나 제5통제소에 이르면, 2시간여 동안 빼앗겼던 신분(사실은 신분증이지만)을 되돌려받는다. 여기서부터는 개별관광이 가능한 것이다. 우회전으로 잠시 빠져 백마고지 전적비를 둘러볼 수도 있고, 좌회전하자마자 모습을 드러내는 노동당사에 들러 폐허의 미학을 한껏 즐겨볼 수도 있다.

[길에게서 길에게로]고석정에서 도피안사까지

국보 제63호로 지정된 철불은 당시 중앙 귀족들에게 대항해 새로운 변혁 의지를 꿈꾸던 지방 호족들의 자화상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그 자화상이 지방 호족들의 지배를 받던 민초들의 얼굴과는 또 얼마나 닮아 있는지 자못 의문스러운 일이다.

이 절에서는 절 마당에 세워진 삼층석탑 때문에 재작년 가을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석탑의 틈 사이로 개구리 한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면서 금와보살의 출현으로 TV에까지 소개되었다는 것인데, 지금도 가끔 부처님의 존안을 뵙기도 하고, 속인들의 소원을 성취하여 주시기도 하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절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해우소 가는 길 옆에 뜻모를 기념물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물어보니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 병사들의 원혼을 달래는 기념비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생긴 것이 이슬람 사원을 닮았다. 잠시 섞갈리는 마음을 누르려 산밑을 바라보는데, 눈앞으로 아스라이 해저무는 철원평야가 펼쳐졌다. 그 어느 구석에선가 자꾸만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구슬피 외치는데, 진정 우리에게 피안은 아직도 멀기만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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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철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철원이지만, 지금은 철원평야에서 나는 기름진 쌀과 함께 삼지구엽초를 특산물로 내세우고 있다. 흔히 '음양곽'으로 알려진 삼지구엽초는 꾸준히 복용하면 정력과 원기를 왕성하게 하고, 근골을 단단하게 하며, 기억력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고석정 농특산물 판매장이나 철의 삼각전망대에서 구입이 가능한데, 간혹 북한산(産)을 팔기도 한다.

글-사진/유성문〈여행작가-편집회사 투레 대표〉rotac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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