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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역사 알고 걸으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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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에서 가장 운치 있는 거리를 꼽으라면 덕수궁에서 경향신문사에 이르는 정동길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은행나뭇잎이 노랗게 물들 때면 정동길의 운치는 절정에 이른다. 이때 열리는 정동문화축제는 문화의 향취까지 더해준다. 올해 5회째를 맞는 정동문화축제는 10월 8일부터 12일까지 열린다.

낭만과 문화의 거리 정동길은 근대사의 비극을 담은 역사의 거리이기도 하다. 문화의 향기는 역사를 모르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 마지막 왕손 이석 황실보존국민연합회 총재, 사학자 한상권 교수(덕성여대)와 함께 정동길을 더듬어봤다.

[문화]정동길, 역사 알고 걸으면 슬프다

규모는 지금의 정동길을 모두 아우르는 크기였다. 지금의 덕수궁에서 정동극장을 지나 경향신문사, 옛 경기여고 자리와 조선일보사, 시청 옆에 있는 조선호텔까지 모두 경운궁이었다. 경향신문사와 구 러시아공사관 자리는 경운궁 뒤뜰이었다. 경운궁과 경희궁은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었다. 이때 정전(정사를 보던 곳)인 중화전과 침전인 함령전, 개인 업무를 보는 편전인 준명전 등 모든 건물이 회랑으로 연결돼 있었다.

덕수궁은 궁명 아니라 고종 칭호

이석 총재는 "어릴 적 궁에서 살 때 조금만 뛰어도 상궁들이 '마마, 뛰시면 안 됩니다'며 주의를 주었고 초등학교 때는 운동회가 되면 왕자는 뛰면 안 된다고 교장 선생이 대신 뛰었다"며 국왕이 이동하면서 땅을 밟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원래 주변 길은 T자형이었다. 서대문에서 세종로 사거리를 거쳐 종로를 지나는 길이 큰 길이었다. 여기에 지금의 종로2가에서 롯데백화점 가는 길이 연결돼 있었다. 이외에는 길이 없었다. 왕궁 앞에 길이 생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의 시청앞 광장은 국민이 모이는 일종의 '퍼블릭 파크'였다. 고종이 승하하자 많은 백성이 경운궁 앞으로 몰려든 것이 그 예다. 일제는 이 광장을 없애기 위해 태평로를 만들고 담장과 같은 위치에 있던 대한문을 뒤로 물렸다.

경운궁 터는 1880년대에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서양 여러 나라와 수교를 하면서 공사관 부지로 떼어줘 이리저리 잘려나갔다.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버리고 경운궁을 택해 들어온다. 이후 고종이 황제로 있던 10년 동안 경운궁은 대한제국 역사의 중심지가 됐다. 고종이 경운궁을 택한 것은 서양 세력과 근거리 외교를 펼치면서 그들의 힘으로 일본의 압박을 견제하고자 한 때문이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해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경운궁은 덕수궁이라는 궁호로 바뀌어 고종의 거처가 됐다.

일제에 의해 경운궁이 잠식당하고 부서졌다면 덕수궁은 우리 손으로 망가뜨렸다. 궁 안의 세종대왕상은 경운궁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한상권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문신과 무신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을 골라 동상을 만들라고 지시했는데 이때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세종로에 세종대왕 상을 세우고 충무로에 이순신 장군 상을 놓기로 했다"며 "그런데 군인 출신인 박 대통령이 무관인 이순신을 세종로에 놓으라고 지시하자 세종대왕이 갈 곳이 없어져 세종대왕 상이 덕수궁에 오게 됐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문화]정동길, 역사 알고 걸으면 슬프다

정동극장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미대사관저와 담 하나 사이에 서양식 건물이 나타난다. 중명전이다. 앞마당은 정동극장 주차장이다. 이 건물은 경운궁 내 최초의 서양식 2층 벽돌 건물로 고종 황제의 알현소나 연회장, 외국사절 접견소로 쓰이던 곳이다. 여기서 치욕적인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됐다. 이후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면서 이준과 이위종 등에게 밀서를 전한 곳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상 경운궁에 세워진 까닭은?

조금 더 올라가면 옛 러시아 공사관이 나온다.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면서 들어간 곳이다. 1890년 르네상스풍의 우아한 벽돌 건물 2층 구조로 돼 있었다. 지금은 탑 부분만 남아 있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돌아갈 때 정동길을 지나 인화문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 위로 올라오면 500년 된 나무가 서 있다. 그 옆이 하남호텔이었다. 이 총재에 의하면 "덕흥대원군파 이기용씨가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길 건너편으로는 손탁호텔이 있었다. 이 건물은 서울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었다. 서양인과 국내 정치인의 친목단체인 '정동구락부'의 근거지이기도 했던 이 건물은 이화학당에 팔려 프라이홀이 들어섰는데 화재가 난 뒤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화]정동길, 역사 알고 걸으면 슬프다

와, 정동문화축제 보러 가자

50여 종의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는 이번 정동문화축제에서 특히 주목되는 행사는 '와인 페스티벌'. 향긋한 풍미를 자랑하는 베린저 화이트 진판델을 시음하며 달콤하고 상큼한 기분을 한층 높일 수 있다. 무료 와인 테이스팅과 함께 지난 7월 22일 TV에서 방영된 '생로병사의 비밀-적포도주 편'에서 국내 최초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적포도주 효능 임상실험에 사용했던 콜롬비아 크레스토 와인 특별행사도 갖는다.

10월 8일 경찰악대와 정동극장 사물놀이패의 공연을 시작으로 의장대 시범, 각설이 마당극, 전통예술무대, 포크 공연과 전유성도 웃고간 연극시리즈 〈이〉가 공연된다. 다음 날에는 유리공예, 양초공예 시연이 있고 가야금-거문고-해금-아쟁 협주가 정동극장 쌈지마당에서 열린다. 드럼페스티벌과 공연도 이날의 주행사다. 3일째 되는 날에는 4인조 혼성 록그룹 밴드 공연과 미8군 군악대 공연 드럼페스티벌퍼포먼스가 이어진다. 다례 시연과 국악 퍼포먼스, 지진경 첼로연주회도 이날의 이벤트다.

토요일인 11일에는 애니메에션 캐릭터와 애니 코스 의상쇼 사진 촬영을 한다. '코스튬플레이 촬영회'이다. 젊은이에게 인기 있는 코스튬플레이는 어른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요들송을 들을 수 있는 요들단 공연과 태권무와 전통 춤을 가미한 공연도 열린다. 클래식과 록이 만나고 노래와 춤, 아카펠라를 결들인 정동 퓨전콘서트도 가을날의 정동길을 빛내게 된다. 마지막 날인 12일은 주석렬 포크공연과 노영심의 작은음악회가 가을 저녁의 낭만을 전달하게 된다.

강남삼성병원과 적십자간호대학, 한국건강관리협회에서 비만도 측정, 당뇨 및 혈액검사 두피검사 등도 계획하고 있다. 8~12일까지 이화여고 앞에서 계속된다.

이외에 독자에게 호평을 받은 우리나라 산-바다-육지를 촬영한 경향신문 매거진X 사진전이 상설 전시되고 추억의 놀이기구 체험과 먹거리를 찾을 수 있는 전통거리 재현도 계속된다.

황인원 기자 hi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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