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1,150원을 사수하라!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경제]1,150원을 사수하라!

지난 9월 23일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총회에 참석한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발언이다. 될 수 있으면 금융당국자가 외환 시장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하지만 이날 김 부총리는 무척 강도 높은 목소리를 냈다. 전날 엔화가 강세를 띠면서 원화가 하루 만에 16.8원이나 폭락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수출 차질 등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지난 9월 26일 기준 환율은 1,150.50원. 2002년 1월 2일 1,317.40원과 비교해 무려 12.7%나 절상된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목숨'을 걸고 1,150원을 사수하고 있다. 김 부총리, 박승 한은 총재 등 고위 당국자가 직접 나서 구두 개입을 하고 있는 것.

지난해부터 시작된 원-달러 환율 하락은 미국이 무역수지를 메우기 위해 달러 약세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로화는 2002년 초와 비교해 20% 이상, 엔화도 10% 이상 절상됐다. 다만 중국의 위안화는 페그제(고정환율제)여서 환율 변동이 거의 없었다.

절상압력은 엔화, 위안화, 유로화순  변동환율제 아래에서 환율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유사하다. 생명체와는 비교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자동조절 기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변동환율제에서 세계 각국의 무역수지는 환율의 변동에 의해 스스로 균형을 맞춘다. 현재와 같이 미국이 일본-유럽에 대해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다면 달러화가 절하돼 미국의 무역수지는 균형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개입이 없다면 엔화든 유로화든 자연스럽게 절상 추세를 보인다는 얘기다.

[경제]1,150원을 사수하라!

따라서 무역수지를 기준으로 볼 때 달러화에 대해 나머지 세 통화 모두 절상돼야 하고 유로화는 달러화에 대해서는 절상돼야 하나 위안화-엔화에 대해서는 절하돼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위안화는 달러화-유로화에 대해 절상돼야 하나 엔화에 대해서는 절하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엔화는 상대국 통화 모두에 대해 절상돼야 한다. 이는 무역수지로 볼 때 국제적인 통화절상 압력의 정도가 엔화, 위안화, 유로화의 순으로 클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환율 1,000원대로 하락할 수도  하지만 실제 환율의 움직임을 보면 이와 정반대로 엔화의 절상률은 유로화의 절상률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예컨대 유로화의 경우 올해 8월 말을 기준으로 2002년 1월보다 20%가 넘게 절상됐으나 엔화는 10% 초반대에 그쳤다. 결국 페그제(고정환율제)인 중국과 달리 변동환율제를 쓰는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결국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G7(선진 7개국) 재무장관 회담에서 아시아 각국의 유연한 환율정책을 촉구하는 선언서가 채택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에서 미국측은 원화의 대폭 절상을 요구했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대해 지난해를 기준으로 기껏해야 1백29억달러 정도의 무역수지 흑자를 보고 있다. 중국의 1천31억달러, 일본의 7백억달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 때문에 함께 덤터기를 쓰게 된 셈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다. 

전문가들은 원화 절상이 추세라는 데 이의가 없다. 미국의 파상공세로 엔-달러 환율이 110엔 밑으로 떨어진다면 원-달러도 1,100원 밑으로 추락할 것이 유력해지고 있다. 원화가 엔화의 움직임과 거의 동조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원화에 대해서도 절상 압력이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대기업에서는 내년 환율을 1,000원대로 보고 '가상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1,150원을 사수하라!

원화절상은 약인가, 독인가  1달러당 1,000원대의 환율은 한국 경제가 IMF 외환 위기 이전으로 돌아감을 뜻한다. 또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원화가치 강세로 1만달러를 훌쩍 넘을 수도 있다. GNI가 늘면 정부로서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왜 금융당국은 호들갑일까. 문제는 막대한 수출 차질 외에도 원화 강세가 시장논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원은 "연간 1천1백억달러가 넘는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의 엔화가 강세를 띠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우리나라는 50억달러 전후의 경상수지 흑자를 거두고 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박사도 "지난해부터 시작된 원화절상은 펀더멘탈(기초체력)에 의한 원화절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반대의 경우인 원화절하가 급격히 찾아와 더 큰 혼란이 올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원화절상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독으로 생각하지 말고 약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상환 박사는 "원화 강세가 경쟁력 배양에 도움이 되는 약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무역협회 신승관 박사는 "수출 기업은 환리스크 관리강화, 원가절감 등을 통해 채산성 보전에 힘쓰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경영 합리화, 제품의 고부가가치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신민영 연구원도 "기업은 생산성 제고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여 웬만한 환율변동은 감내할 수 있는 강한 체질을 다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