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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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 우리 시야에 자주 출몰하고 있다. 숀 코너리 주연의 [젠틀맨리그]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소설 속 등장인물 7명이 한 군데 모여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뱀파이어-투명인간-지킬박사와 하이드 등 캐릭터가 한 공간에서 부딪칠 때 우리는 미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 중에는 머리에 터번을 쓴 전설의 해적 두목, 네모도 들어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오노 나나미의 [사랑의 풍경]에도 르네상스 시대의 해적이 등장한다. 사보이 공국의 피앙카리에리 백작 부인은 해적의 포로가 된 가신과 병사들의 몸값 교섭을 위해 해적의 우두머리 우르그 알리를 만난다. 그는 훗날 알제리 장관을 거쳐 투르크 연합함대의 총사령관이 되고, 백작 부인은 감기로 숨을 거둔다.

올해 13세의 평택여자중학교 2학년인 박연이 번역한 리사 사나한의 [해적들의 아기보기 대작전]은 사소한 일로 날마다 싸우는 뚱뚱이 선장과 홀쪽이 선장의 보물 이야기다. 해적들이 주고받는, 참기름 바른 바다뱀장어같이 생긴 놈, 이쑤시개에 붙은 밥알 같은 놈, 이런 욕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배 이름도 삐까뻔쩍호, 선장 이름은 왕쪼잔 선장이다. 우리를 저절로 낄낄거리게 만든다.

해골이 그려져 있고 사람 뼈가 X자 모양으로 교차하는 깃발을 본 적이 있는가. 해적의 상징기호는 이처럼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과시하고 있다. 해적을 만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암시할 정도로 옛날 사람들에게 해적은 무서운 존재였다. 그들은 사람을 납치 살인하고 보물을 강탈하는 무법자들이었다. 어떤 국가 권력으로부터도 독립되어 있었으며 바다를 무대로 신출귀몰, 기존 체제를 교란하였다.

우리는 해적을 생각하면, 북유럽의 바이킹족이나 통일신라시대 한국-중국-일본을 연결하는 해상의 해적을 소탕한 해상왕 장보고가 떠오르지만, 해적은 더 까마득한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도 있었다. 로마의 사학자 폴리비우스가 해적(Pirate)이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했을 때가 기원전 140년이었다.

각 국가의 해양경계선이 뚜렷하고 해군이나 해병대가 철통같이 바다를 지키는 지금도 해적은 있다. 오늘날의 국제법에서도 사적 목적을 위해 약탈과 폭행을 자행하며 항해를 위험하게 하는 집단을 해적이라  칭하고 있다. 그러나 공해상에서 활동하는 해적 이외에도 각 나라의 내해에서 활동하는 해적도 있다.

물론 치안이 엄격한 국내에서 해적이 출몰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치안상태가 안 좋은 섬나라에서는 해적이 아직도 활개치고 있다. 동남아의 악명 높은 해적은 필리핀 말라카해협 부근을 무대로 하고 있다. 해적은 이처럼 주요 해상무역로 부근에 출몰하여 약탈과 납치행위를 일삼으며, 활동 근거지는 수많은 섬으로 둘러싸인 도서 반도 지역, 약탈물을 처분하기 좋은 해협지역이다.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는 국제해사기구의 해적정보센터가 있다.

해적에 대한 가장 유서 깊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스티븐슨의 [보물섬]이다. 짐 호킨스가 보물지도에 나와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이야기 속에는 해적이 등장한다. 요리사로 위장 취업한 해적 롱 존 실버의 모습은 오랫동안 모든 해적의 원형이었다. 실제로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기간은 해적의 황금기였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식민지가 만들어지면서 유럽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해상 무역이 발달하던 그 시기에는 해적이 활동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그러나 조니 뎁이 연기한 [캐리비안의 해적] 속의 '캡틴 잭 스패로우'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는 눈에 힘주고 걸걸한 목소리로 호령하지도 않는다. 악한이라고 볼 수도 없다. 게으른 사기꾼이지만 오히려 낭만적이며 정의롭기까지 하다. 또 유머 넘치고 삶에 대한 낙관적 태도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조니 뎁이 창조한 새로운 캐릭터를 보는 것이다. 마치 요네하라 히데유키의 만화 [풀 어헤드 코코]에 등장하는 유쾌한 해적들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

이 영화는 전체가 픽션이지만 해적의 황금기인 172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다. 그때는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이후 유럽 대륙과 해상교역이 빈번해지면서 이름 없는 수많은 섬으로 둘러싸인 카리브해 지역을 무대로 해적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에 등장하는 갈등 요소는 크게 해적과 영국 해군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각각의 집단에도 갈등이 겹쳐지면서 사건이 전개되는데, 해적 내의 갈등은 해적선 블랙 펄의 선장이었던 잭 스패로우(조니 뎁 분)와 그를 몰아내고 현재 두목이 된 바르보사(제프리 러쉬 분) 사이에 있고, 영국 해군 내의 갈등은 총독의 딸 엘리자베스(카이라 나이틀리 분)를 둘러싸고 그녀에게 청혼한 제독과 그녀를 사랑하는 평민 신분의 대장장이 윌 터너(올란도 블룸 분) 사이에서 발생한다.

보물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돌려주어야 하는 해적의 운명이나, 당대의 록스타 같은 옷차림을 하고 등장한 조니 뎁의 연기는 장르 비틀기의 모범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가장 볼 만한 장면은 보물을 훔친 뒤 저주를 받고 죽지 못하는 해적들이 달빛을 받으면 해골로 변하는 모습이다. 그런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쾌감을 충분히 안겨준다. 영화 보는 동안만 유효한 효과이기는 하지만.

하재봉[문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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