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 공든 탑 무너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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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동계올림픽 등 대규모 국제대회를 유치하려는 체육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2003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한국의 국제종합대회 개최 능력을 다시 한 번 세계에 알리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굵직굵직한 대형 이벤트들을 끌어오려는 계획이 어긋나고 있기 때문이다.

체육계의 우려는 우선 최근 발생한 민간단체와 북한 기자단의 충돌, 이로 인한 북한 선수단의 강력 반발한 사건부터 짚어볼 수 있다. 2010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실패 이후 불거진 '김운용 파문'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한국의 국제 스포츠계 위상과 이미지가 이번 사태를 통해 더욱 훼손된 것이다.

2003 대구U대회의 최대 화제는 북한 선수단과 '미녀응원단'의 참가였다. U대회가 세계대학생의 체육축전이기에 북한의 대회 참가 자체는 세계적인 주목을 끌 만한 뉴스가 아니었지만 최소한 우리 한민족에게는 '남북화합'을 상징하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기에 연일 언론의 주요 보도 대상이 됐다.

한국 스포츠 공든 탑 무너질라

그러나 8월 24일 오후 U대회의 메인프레스센터(MPC)로 활용되고 있는 대구전시컨벤션센터 앞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대회를 취재하던 북한 기자단과 국내 보수시민단체 회원들이 물리적으로 충돌했고, 이것이 발단이 돼 북한 선수단측이 철수를 전제로 당국의 사과를 요구하는 등 파행적인 사태가 이어졌다.

민주참여네티즌연대-북핵저지시민연대 등 민간보수단체 회원들이 '김정일이 죽어야 북한 동포가 산다'는 자극적인 플래카드를 내걸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고, 이를 본 북한 기자들이 극도로 흥분해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하는 등 폭력을 행사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경찰의 만류로 더 이상의 사태 악화는 없었지만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돌발 사태는 온 국민의 시선을 대구로 쏠리게 만들었다.

그동안 세계평화 정착 기여로 주목

북한 선수단은 즉각 민감하게 반응했다. 전극만 북한 선수단 총단장은 8월 25일 "관계당국의 사죄와 주동자 처벌, 사태 재발 방지 약속이 없으면 선수단 철수를 심각히 고려하겠다"는 성명을 냈고, 곧바로 조해녕 대구유니버시아드 조직위원장의 유감 표명이 이어졌다.

"손님을 모셔놓고 그들을 자극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한 북한 기자의 문제가 크다"는 의견이 서로 비등한 가운데 북한 선수단이 계속 경기에 임해 사태는 그대로 수그러드는 듯했다. 그러나 26일 방송차량을 동원한 보수단체의 시위가 북한 선수단의 훈련장소 옆에서 다시 발생하자 북한 선수단은 두번째 기자회견을 열고 사죄를 재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직접 나서 유감 표명을 함으로써 사태를 가까스로 무마시켰다. 이 장관은 8월 27일 오전 문광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니버시아드대회는 올림픽정신에 입각해 어떤 국가나 개인도 인종-종교-정치적인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고 전 세계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화합과 평화의 스포츠 축제"라며 "현재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분쟁 당사국까지도 대회기간 중에는 전쟁을 멈추고 스포츠 기량을 겨루는 것이 올림픽정신"이라고 말했다. "유니버시아드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일부 단체의 행동은 심히 우려스럽고 개탄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 장관은 이어 행정자치부와 협조해 이같은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확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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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직후 한국을 방문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자크 로게 위원장도 유감을 표명했듯 IOC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행사가 정치-종교-이념의 도구로 변질하는 것이다. 1972년 뮌헨올림픽이 검은 9월단의 테러로 붉게 물든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 이후 IOC는 올림픽정신이 변질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해왔다.

한국 스포츠계의 자랑은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 세계 평화의 흐름을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84년 LA올림픽은 모두 동-서 냉전의 논리에 휘말려 공산권과 자유 진영이 서로 대회를 보이콧하는 반쪽 대회가 됐지만 서울올림픽은 탈냉전의 무드 속에서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참가한 그야말로 평화의 제전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세계 역사의 변화를 주도하는 상징적인 대회를 우리가 치렀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며 이같은 이미지가 훼손되거나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광부-대한체육회 등 걱정 어린 시선

국제 스포츠계에서 한국의 이미지 손상은 지난 7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 이후부터 시작됐다.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제115차 IOC총회에서 평창이 캐나다 밴쿠버에 3표차로 아깝게 패한 이후 들끓기 시작한 "김운용 IOC 위원이 자신의 부위원장 당선을 위해 평창 유치를 방해했다"는 비난 여론은 사실 여부를 떠나 한국 스포츠계엔 크나큰 악재였다.

IOC의 관점에서 올림픽 유치 실패를 놓고 IOC 위원을 공격하는 한국 내부의 상황이 곱게 보였을 리는 만무하다. 사태는 김운용 위원이 평창을 찍지 말라는 말을 했다고 알려진 캐나다 딕 파운드 IOC 위원에게 한 방송이 전화 연결을 해 직접 사실 여부를 묻는 선까지 비화했고 그가 이를 부인, 결국 한국 스포츠계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김운용 파문'은 외신을 통해 '패자들의 지저분한 내분'으로 비쳐졌을 뿐이다.

쌓여가는 악재에 주무부서인 문광부와 재도전 의사를 비친 평창올림픽유치위원회, 2014년 유치를 목표로 뛰고 있는 전북, 각종 세계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대한체육회 및 산하단체는 그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낼 뿐이다.

김경호〈굿데이 종합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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