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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펴낸 손정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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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펴낸 손정목씨

이런 측면에서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교수(75)의 역작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한울, 전5권)는 서울이 현대적인 거대 도시로 거듭나는 과정의 이면사를 생생하게 증언한 '서울공화국실록'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이러한 역사 기록이 당사자나 유족의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면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는 각오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손 전 교수는 1951년 제2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 서울시 개발이 한창이던 1970~77년 서울시 기획관리관-도시계획국장-내무국장을 지냈다. 1977년부터는 서울시립대 교수로 재직하다 94년 정년퇴임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경험과 방대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광복 이후 서울의 형성 과정을 저서에 담았다.

8월 21일 한 방송사 출연을 마치고 서울시립대 연구실로 향하는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시작됐다.

도시계획 전문가로서 서울의 지하철 구조나 운용에 대해 평가해주십시오.

"서울의 지하철은 한국 국력으로 봐서는 좀 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건설비가 엄청나게 들거든요. 지금 서울시 부채의 대부분이 지하철 공사 및 운영에서 파생된 것 아닙니까. 그렇다보니 모든 기자재나 부품을 싼 것 위주로 충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얼마 전에 빚어진 대구 지하철 참사는 우리에게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게 한 셈입니다."

지하철이 없다면 서울의 교통 문제 해결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땅은 좁고 사람은 엄청나게 많은 서울은 자동차가 쉽게 다닐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제가 재임 시절에 주차장 건설을 한 건도 추진하지 않았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주차장이 없으면 차도 못 다닐 것 아닙니까.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지하철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생각도 듭니다."

[화제]'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펴낸 손정목씨

"사실 책에 청계천 부분은 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청계고가가 현안으로 떠오르자 출판사에서 청계천 부분에 대한 내용을 삽입할 것을 요청하더군요. 전 고가 철거에 대한 반대도 찬성도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봅니다. 청계천은 애당초 하수도입니다. 서울의 모든 치부가 집결되는 곳이지요. 그 '뚜껑'을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청계고가는 이미 수명을 다한 건조물인 것도 사실입니다. 고가도로를 건설할 당시는 포항제철이 생기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철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런 탓에 철근 대신 시멘트가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많이 낡아 지금 상태로는 철거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사업 자체는 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통 문제가 반대의 이유로 지적되기도 하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어차피 교통 문제를 크게 염두에 둬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공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일을 많이 했는데 박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어떻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시장에 의식적으로 군 출신과 민간 출신 인사를 번갈아 기용했습니다. 윤태일-윤치영-김현옥-양택식-구자춘-정상천 시장, 이런 식이었지요. 이들의 임기도 군 출신과 민간 출신이 2년이면 2년, 4년이면 4년, 이런 식으로 일정했습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책에 실명으로 거론된 당사자나 유족으로부터 항의는 없었습니까.

"이 책은 '역사책'입니다. 역사는 사실로 남겨져야 하는 겁니다. 책의 서문에서도 말했지만 실명을 거론한 부분이 굳이 명예훼손이라면 기꺼이 형무소에 가겠습니다."

한 신문 독자가 '청계고가는 박 전 대통령의 행찻길' 등의 부분을 거론하며 '책에 얼마만큼의 진실이 담겨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처구니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저도 그 신문을 봤습니다. 저 역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수십 년간 준비한 책을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를 통해 몇 줄의 신문기사로 줄여 보도했습니다. 의식 있는 독자라면 기사를 읽고 책을 비판하기보다 먼저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손씨는 자신의 책에 담긴 비사의 신빙성 문제를 거론하자 "투철한 기록정신이 〈조선왕조실록〉을 남겼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일단 책에 대한 반응은 괜찮다. 지난 8월 18일 발행한 뒤 닷새 만에 초판 1,500질이 매진됐다. 손씨는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전전했지만 '출판 불황 시기에 한 권짜리도 아닌 5권짜리 학술-교양 서적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당했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600부만 나가도 일단 체면치레는 하겠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한울출판사의 최병현 기획실장은 "학술 서적의 경우 초판 1,000부가 소진되는 데 1년이 걸리는 관행에 비춰볼 때 닷새 만에 초판 1,500질이 모두 판매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손씨는 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여의도나 잠실 등 시가지 하나가 건설되는 데에도 2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는 "하물며 수도를 건설하는 것은 몇십 배의 노력과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필요하다"며 "결국 행정수도 이전은 독재정권만 해낼 수 있는 일일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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