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걸작 비디오

'검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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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걸작 비디오]'검은 고양이'

감독:다리오 아르젠토(1부)-조지 로메로(2부)

주연:하비 케이틀-아드린느 바비유

제작:1990년 미국(우일비디오 배급)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와 [발데마르에게 생긴 일]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평생을 알코올 중독과 가난에 시달린 포의 작품은 '병적인 천재성이 창조한 무의식의 세계'로 평가받았다. 작가의 생가와 동상을 잡은 카메라가 묘비명까지 들려준다.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영원함을 꿈꾸며...."

[검은 고양이]를 만든 이탈리아 감독 다리오 아르젠토는 귀청을 때리는 공포의 힘을 확인시킨 [서스피리아](1977)로 유명해졌다. 폭력과 관음증에 시적 유머를 구사한 그에겐 '초현실주의 호러 시인'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아르젠토는 원작의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따르면서 트릭 몇 가지를 보탠다.

하비 케이틀이 연기하는 로드를 사진가로, 그의 동거녀를 바이올린 교사로 내세워 둘의 갈등 구조를 설정한다. 로드는 중세의 악마 추종자들에게 끌려가 사지가 찢기는 꿈을 꾸었는데, 그 광란을 이끈 마녀는 고양이를 기르는 카페 주인으로 나온다. 벽을 통해 살인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만 결말부에선 관객의 의표를 찌른다.

두 동강난 시신과 욕조를 가득 채운 붉은 피. '스파게티 호러'의 창시자답게 아르젠토는 잔인함 속에서 바로크적 이미지를 끌어낸다.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든 것은 음악과 촬영이다. 고전 음악과 재즈가 뒤섞이는 등 조화롭지 못한 선율이 묘하게 긴장을 고조시키고, 광각 렌즈의 카메라는 낮게 이동하면서 음산한 기운을 뿜어낸다.

[발데마르에게 생긴 일]의 감독 조지 로메로는 공포영화의 투시경으로 베트남전 시대의 미국 사회를 조망했다. 시체를 장의사보다 훨씬 잘 다룬 그는 '좀비들의 아버지'로 호러계 족보에 올라 있다. 본디 부두교 제사장들이 마약으로 살려낸 좀비들은 의식은 없지만 아무리 베고 찔러도 계속 움직인다.

제시카(아드린느 바비유)는 늙은 남편 발데마르의 재산을 뺏으려고 의사이자 정부인 로버트와 흉계를 꾸민다. 그에게 최면을 걸어 가짜 유언장을 쓰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최면술의 부작용으로 발데마르가 너무 일찍 죽어버린다. 지하실로 옮겨진 시체는 밤마다 이 앓는 소리를 낸다. "여기는 춥고 어두워. 날 도와줘...."

호기심이 발동한 의사와 불안해진 여자의 싸움이 격렬하다. 제시카가 총으로 쏴 죽인 발데마르는 로버트의 최면술로 깨어난다. 이때부터 화면은 죄어들고 얼어붙기 시작한다. 포 원작의 '최면에 걸린 영혼'이라는 대목에 주목했던 로메로는 저승에 가지 못하고 육체에 남은 그 영혼에 자신의 브랜드를 입힌다.

잔혹하거나 핏물이 흥건한 장면은 비치지 않는다. 로메로의 이전 작품에 견주면 플롯은 허술한 편이지만, 천천히 젖어드는 적갈색 영상이 그 약점을 메워준다. 썩어 문드러져 곰팡이 핀 표정의 좀비가 달려드는 장면은 무섭다. 로메로가 키운 자식들의 활약은 [살아난 시체들의 밤] [이블 헌터]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박평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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