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받는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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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받는 대법원

항명의 사전적 의미는 상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대항한다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첫 대법관 인선을 둘러싸고 빚어진 '대법관 제청 파문'은 분명한 항명이다. 최종영 대법원장의 고유권한인 인사 문제에 대해 부하인 일부 소장판사들이 '트집'을 잡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이 과정에서 집단행동 양상마저 표출되고 있다. 서울지법의 박시환 부장판사가 8월 13일 대법원 결정에 반발, 사표를 제출했다. 이튿날엔 소장판사 159명이 대법원장에 대법관 인사 재고를 요청하는 건의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항명은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문제다. 항명의 결과가 '혁명'이나 '반역' 혹은 '쿠데타'로 바뀌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명이 꼭 역사 발전에 부합한 것도 아님은 물론이다. 종종 조직에 대한 배신이나 소영웅주의적 행동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그 평가는 대체로 역사에 의해 이뤄진다.

반면 항명이 역사를 바꾼 사례도 많다. 격변기일수록 항명은 정국의 방향을 바꾸는 분수령 구실을 한다. 그렇다면 '8월의 사법 파문'은 어떤 의미로 역사에 평가될 것인가.

일단 현재로서는 최근의 사태에 '항명'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은 성급한 측면이 있다. 이번 파문이 다소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소장판사의 의견수렴 차원에서 대법관 제청에 앞서 헌법재판관을 개혁적 인사로 임명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소장판사도 8월 15일 긴급모임을 갖고 "최 원장의 대법관 제청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정리했다. 일부 판사의 집단행동이 사법부의 개혁과 변화에 대한 요구로 해석되기에 앞서 사법부 수장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것에 대한 우려도 감안한 결정이다.

"칼집을 거두는 일은 없을 것"

그렇지만 아직 법원 내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 소장판사는 "칼집을 거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일련의 사태 진행과정에서 청와대, 강금실 법무장관, 시민단체와 재야법조단체의 지지를 얻고 있음을 확인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대법원도 물러설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8월 파문'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면 사법 수뇌부나 조직 자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외침을 억압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법부 내부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권력의 명령에 항거하거나 자기 개혁의 목소리를 낸 사례는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성공한 항명'의 의미로 세 차례의 사법 파동이 회자되고 있다. 물론 이들 사건에 대한 성격을 놓고 여러 해석이 있긴 하지만, 사법 개혁을 위한 도정이었음은 분명했다. 한 대법원 자료연구관은 "아직도 사법 파동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법권 독립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사법 파동이 부당한 외부 권력으로부터 사법부를 온전히 지켜내기 위한 목소리였다면, 이번에는 '소장법관'과 대법원 즉 사법부 내부의 개혁-보수 세력간의 대결구도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여기에 대한변호사협회를 비롯한 재야와 시민단체는 물론 법무부 장관, 심지어 청와대까지 직-간접적으로 개혁 성향의 소장법관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대법원은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도전받는 대법원

감정이 상한 서울지검 공안부는 1971년 7월 28일 당시 서울형사지법 이범렬 부장판사와 최공웅 판사, 이남영 서기, 3명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당시 이 부장판사 등의 혐의는 피고인의 변호사로부터 여비와 식대 등 9만6천원어치의 향응과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것.

비록 당시 이 부장판사 등에 대한 영장은 기각됐지만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 등 전국 415명의 판사 가운데 153명의 법관은 검찰 수사를 "잇따른 무죄판결 등에 대한 보복행위"로 규정하고 일제히 사표를 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신직수 법무장관을 불러 사건을 백지화할 것을 지시하고 영장청구검사를 문책했다. 이에 판사들도 한 달 만에 사표를 철회하면서 초유의 '사법 파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1988년의 2차 사법 파동은 사법권 독립 문제와 함께 유신체제와 제5공화국의 비정상적인 정치 상황 아래 누적된 문제가 곪아터진 법관성명 파동으로 결국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이 도중하차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해 정부와 여당이 제9대 김 대법원장을 재임명하려 하자 야당이 반대했고 그후 정부 여당과 야당이 김 대법원장의 유임에 합의하고 '대법관 임명에 야당 의사 존중'이라는 타협을 이뤄냈다. 이에 서울가정법원 김종훈 판사 등 전국의 소장판사는 정치권에 사법부가 종속될 수 없다며 집단반발했다. 결국 김 대법원장은 "판사들이 반대하는 이상 자리에 있을 수 없으며 사법부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사퇴하고 말았다.

3차 사법 파동은 1993년 5월 신평 당시 대구지법 판사가 모 주간지에 "지금 우리나라에는 개혁의 시기가 도래했다"며 "이 기회에 사법부에 내재한 병폐를 스스로 시정하자"고 제안한 데서 비롯했다. 당시 대법원은 신 판사의 기고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판사의 행위"라고 비난했다.

법원 내 개혁-보수 세력 대결구도

이 일로 신 판사는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지만 사태는 같은해 6월 강금실-박시환 판사 등 서울지법 민사단독판사 28인의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 제출로 이어졌다. 이들은 건의문에서 과거 군사정권 아래에서 보여주었던 사법부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다.

여기에 변호사와 사법연수원생까지 동참하면서 사태는 3차 사법 파동으로 확산됐고, 결국 김덕주 당시 대법원장이 퇴진하는 결과로 마무리됐다.

이처럼 그동안 벌어진 세 차례 사법 파동은 외부 세력과 사법부의 갈등 구도로 전개됐다. 바로 이 부분이 최근의 '대법관 제청 파문'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인사의 타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최근 파문은 소장판사-대법원, 법원 내 개혁 세력-보수 세력의 대결 구도로 정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3차 사법 파동의 주역이었던 신평 변호사는 "과거 사법 파동의 원인은 정치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맞선 사법부의 저항이었다"면서 "지금은 외부 권력의 부당한 행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결국 사법부 내부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또 "현재 한국의 사법부는 일부의 사법권력 소유자가 국민의 참여를 봉쇄한 채 사법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사법부 개혁 세력은) 대법관 제청이라는 미시적 문제에 매몰되지 말고 서열화-계급화가 고착돼가고 있는 사법부의 고질적 병폐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사법 파동의 주역 그 이후

1971년 1차 사법 파동의 주역이었던 이범렬 부장판사는 자신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직후 사법부 독립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법복을 벗었다. 당시 파동의 또다른 주역이었던 최공웅 판사는 특허법원장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우방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1988년 2차 사법 파동의 주역으로 활동할 당시 임관 3년차 판사였던 김종훈 변호사는 1993년 3차 사법 파동에서도 주역으로 등장해 줄기차게 사법 개혁을 요구했다. 1996년 11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사표를 내고 변호사로 나선 김 변호사는 지난 4월 대북 송금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팀에서 특검보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1993년 사법 파동의 주인공은 신평 변호사와 강금실  법무장관,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 등 낯익은 얼굴들이다. 이 가운데 신평 변호사는 대구가톨릭대학교 법학과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강 장관과 박 부장판사는 이번 파문에서도 단연 주역으로 나서는 묘한 인연을 맺고 있다.

신 변호사는 1993년 사법 파동 당시를 회상하며 "최근 대법관 물망에 오른 김동건 서울지방법원장이 1993년 대구로 직접 술 한 병을 들고 내려와 '용기를 잃지 말고 꿋꿋이 버텨달라'고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난다"며 "대법원장의 오만에서 비롯된 추천 과정이 문제였을 뿐, 현재 대법관 물망에 오른 세 분은 모두 훌륭한 분"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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