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명훈은 파스타 요리사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고문 자격으로 도쿄필과 첫 내한공연, 음악 거장의 이탈리아 음식 예찬론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50)이 도쿄필하모닉과 내한공연을 한다. 그는 매년 한두 번씩 한국 무대에 서고 있지만 이번 내한의 의미는 각별하다. 자신이 예술고문으로 있는 도쿄필과 처음 한국을 찾는다는 감동과 함께 자신의 요리 경험과 음악관 등을  담은 책 〈요리는 지휘처럼-Dinner for 8〉을 펴내기 때문이다.

[문화]정명훈은 파스타 요리사

정명훈는 기자회견 때마다 자신의 취미는 요리이고 시간 날 때마다 스파게티를 해먹는다고 밝힐 만큼 이탈리아 음식에 심취해 있다. 예순 살까지만 일하고 그 후에는 요리를 즐기고 싶다고 누누이 말해왔는데, 연주 일정 때문에 호텔에 머물 때는 호텔에서 시켜 먹지만 집에 있을 때는 하루종일 '무얼 먹나' 생각하고 쉬지 않고 짬짬이 이것저것 해 먹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연주 무대에서의 긴장을 풀기 위해 먹는 것에 심취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요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뜻밖이 아니다. 어린 시절 미국 시애틀에서 살 때는 어머니 이원숙 여사가 한국음식점을 경영했는데, 형 명근씨가 웨이터를 했고 열 살이던 그는 주방에서 음식 재료 다듬기, 요리, 설거지등을 했다. 그때 손님의 주문에 따라 음식을 빨리 만들어야 했는데 그 습관이 남아 요즘도 음식을 순식간에 만들어낸다고.

어린 시절 어머니 식당 주방서 일해

정명훈이 음식을 좋아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이탈리아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이탈리아 식당에 함께 다니면서이다. 그는 당시 LA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 지휘자였고 줄리니는 상임지휘자였기 때문에 자주 어울려 다녔다. 파스타의 맛에 빠진 그는 파스타 만드는 기계까지 구입해 직접 만들어 먹었고, 이후 유럽으로 활동 근거지를 옮길 때도 최우선 염두에 둔 곳이 이탈리아였을 만큼 이탈리아 음식을 사랑했다. 프랑스 음식은 배우기가 까다로워 요리하기를 포기하고 먹으러 다니기만 한다.

"쫄깃쫄깃한 맛을 즐기려면 갓 뽑아낸 파스타를 사용하지 말고 말린 파스타를 사용해야 합니다. 삶을 때도 국수 단면의 한가운데 하얀 심이 살아 있도록 8분 정도만 끓여야 하지요. 집에선 이렇게 만든 이탈리아 국수와 한국 음식을 골고루 먹습니다. 특히 한국 음식에서 빠지지 않는 게 국물인데, 저는 국물이 있어야 먹는 맛이 배가되더군요."

매운 맛을 좋아하는 그는 빨간 고추와 올리브 기름을 넣은 고추기름도 사용한다. 음식마다 고추를 넣어 먹는 편이다.

이번에 출간하는 책 제목 〈요리는 지휘처럼-Dinner for 8〉에서 '8'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가 차리는 식탁의 주인공, 즉 그와 아내, 세 아들과 그들이 만나게 될 배우자까지 모두 8명이 모여 식탁에 둘러 앉았을 때가 바로 자신의 인생이 하나의 완성점을 맞는 시점이라는 뜻에서 붙인 것이다.

정명훈의 이번 내한공연은 8월 31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대미를 장식한다. 8월 26~27일 싱가포르에 이어 29일 부산 문화회관, 30일 대구 경북대 대강당, 31일 서울로 이어지는 일정이다.

[문화]정명훈은 파스타 요리사

일본에서 지휘자 정명훈의 인기는 어느 정도일까. 일본 최고 발행부수 음악잡지 〈모스틀리 클래식(Mostly Classic)〉을 비롯한 일본 음악전문지의 설문조사 결과로는 '일본 지휘계의 자존심'으로 꼽히는 오지와 세이지(빈국립오페라극장 예술감독)를 앞선다고 한다. 일본 음악계도 경제 불황의 악영향을 받기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콘서트 티켓은 불황을 모른다. 도쿄필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이번 콘서트가 포함된 패키지 한국여행 상품까지 내놓은 상태이다.

2001년 4월 도쿄필 예술고문을 맡은 정명훈은 같은 해 6월 도쿄 산토리홀에서 도쿄필의 첫 지휘봉을 잡으며 일본 음악팬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일본 교향악의 대표주자였던 NHK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인기를 능가하는 찬사를 받았다. 당시 도쿄필은 1911년 나고야에서 창단 후 90년 만에 처음으로 변신을 모색하며 신세이니혼오케스트라와 합병을 시도하는 등 일본 제1의 교향악단으로 발돋움하려는 과정에서 정명훈을 예술고문으로 추대했는데, 도쿄-신세이니혼 교향악단의 합병 후 첫 연주를 그가 맡음으로써 완전한 음악적 합일을 이룬 것이다.

일본 최고의 교향악단 이끌어

교향악단 합병 후 일본 최대 규모의 교향악단이 된 도쿄필은 단 한 명의 단원도 해고하지 않은 채 166명의 단원을 무기로 연주-음반-교육 프로그램 등 청중 확보를 위한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고야에서 출범한 후 1938년 도쿄로 이주한 도쿄필은 89년 도쿄오페라시티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며 산토리홀-오차드홀과도 제휴했다. 1997년부터는 도쿄 신국립극장 교향악단으로 지정돼 신국립극장 소속 발레-오페라 프로덕션 공연을 도맡아 연주하고 방송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또 도쿄필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는 소니의 오가 전 회장이 재정적인 지원을 펼치며 악단의 도약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현재 프랑스 국립라디오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로마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겸하고 있는 정명훈은 도쿄필의 아시아 투어 때문에 7월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냈다. 지난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프랑스 국립라디오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윤이상의 '예악'을 연주했던 그는 이번에 일본 도쿄필과 말러의 〈교향곡 제1번 라장조-거인〉과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제1번 라단조〉를 연주한다. 피아노 협연은 차이코프스키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1위 없는 3등을 차지한 백혜선 서울대 교수. 이미 지난해 3월 정명훈이 지휘하는 프랑스 국립라디오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제4번〉을 협연하며 호흡을 맞춘 터라 편안한 무대를 펼칠 것이다.

브람스 협주곡 1번과 2번은 피아니스트라면 기본적으로 거쳐야 하는 걸작품이자 그 시대 작곡가의 작품 중 가장 긴 곡으로 알려져 있다. 백 교수는 "브람스 협주곡 1번은 어릴 때부터 친숙하고 국제콩쿠르 참가곡으로 연주했던 곡인데, 브람스의 낭만과 정열, 거대함이 녹아 있는 따뜻한 곡"이라며 "정 선생님과 꼭 한 번 같이 연주해보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이번 연주를 기대하고 있다.

말러의 〈교향곡 제1번-거인〉은 1부 '젊은 날로부터', 2부 '인간희극'으로 구성된 4악장의 작품인데, '거인'이라는 제목은 장 파울의 동명소설에서 따왔다. 처음은 서정적으로 시작해 2악장은 힘차게, 3악장은 장엄하고 침착하게, 마지막은 폭풍처럼 격렬한 풍경으로 끝나는데,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 악장마다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

유인화〈문화부 기자〉 rhew@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