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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반찬 시장도 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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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한국 신흥 부촌의 대명사로 떠오른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인근에 문을 연 한 반찬전문점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유는 '한국 최고의 상류층은 과연 어떤 반찬을 즐겨 먹을까' 하는 호사가들의 궁금증(?) 때문이었다

당시 화제를 모았던 주인공은 종가집김치로 유명한 대기업 계열사인 (주)두산식품BG의 '데이즈'. 15평 크기인 이 가게는 반찬 장사가 사업성이 있는지 알아보는 일종의 '안테나숍'인 동시에 최고의 입맛을 공략할 수 있는 체크 포인트인 셈이다.

'데이즈'에서는 김치-젓갈-조림-튀김-전-나물 등 70종의 반찬을 판다. 가격은 재래시장의 반찬가게에 비교해 10~15% 비싸지만, 나물 1일, 조림 2~3일 등으로 유통기한을 지켜 철저한 위생관리를 하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반찬류 브랜드 개발 젊은 주부 공략

[경제]대기업 "반찬 시장도 내거야!"

이 관계자는 "일각에서 대기업의 반찬 시장 진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글로벌 시대에서 고품질의 고객 서비스는 불가피한 일"이라면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철저한 위생관리와 품질 향상 등 긍정적인 면도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재래시장이나 할인점, 백화점 매장 안에 반찬 판매 코너가 있기는 했지만 대기업이 반찬전문점 시장에 뛰어들기는 두산이 처음이다.

두산은 또 반찬가게 진출과 함께 새로운 반찬류 브랜드 '찬품'을 개발, 식품 부문 사업을 확대했다. '찬품'은 '제대로 만들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반찬'이라는 제품 컨셉트를 갖고 있다. 가족 건강에 대한 관여도가 높은 30~40대 초반의 주부를 주요 고객으로 설정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두산 종가집김치 장석문 마케팅팀장은 "그동안 국내 반찬류 시장은 영세업체 위주의 산업으로 인식되어 제조 과정과 위생에 대해 소비자가 신뢰를 가질 만한 브랜드가 없었다"면서 "최근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행태의 변화로 김치와 마찬가지로 반찬을 필요한 만큼 매일, 혹은 자주 사먹는 고객이 증가함에 따라 시장의 성장 잠재성이 매우 높아 이 시장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두산의 반찬 시장 진출은 국내 반찬 시장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은 방증하는 동시에 중소업체의 고유 영역으로 여겼던 먹을거리 시장에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의미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이같은 대기업의 반찬 시장 진출에 대해 상당수 영세상인은 당혹해하고 있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7년째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ㅅ씨(40)는 "백화점 등 대형 업체의 공세로 최근 들어 20~30대 손님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반찬 시장 진출은 가뜩이나 힘겨운 영세상인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꼴"이라며 "대형 반찬가게에 맞서려니 조미료도 안 쓰고 고급 재료만 넣는데도 돈벌이가 시원치 않다"고 토로했다.

업계는 올해 국내 반찬 시장이 5천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직 공식적인 통계자료는 나와 있지 않지만 매년 1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대기업 "반찬 시장도 내거야!"

선택과 집중이라는 대기업의 변화 바람이 예전의 문어발식 경영으로 회귀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란 비판도 일지만 매출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자들 영역까지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내놓고 있다. 선진 시스템 도입으로 보다 위생적이고 과학적인 제품 생산과 유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폐지되면 더 늘 듯

중견기업인 삼양사는 최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입구에 카페형 빵집 '믹스&베이크' 1호점을 열었다. 매장에서는 케이크-샌드위치-빵-샐러드-수프 등 식사 대용 먹을거리와 커피-생과일 주스-스무디 아이스크림 등을 만들어 판매한다. 특히 무농약-저농약 야채로 만든 샐러드, 각종 곡물이 추가된 빵, 녹차가 들어간 푸딩, 유기농 완제품 등 건강식품을 중점적으로 판매한다.

대한제당도 최근 두산의 카페네스카페를 인수하고 커피전문점 사업을 시작했다. 일찌감치 외식업체 베니건스를 연 오리온그룹은 올 연말쯤 강남에 3층 규모의 최고급 중국식당도 개설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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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그룹도 63빌딩 외식사업부를 인수한 뒤 밥장사를 개시했고 최근엔 커피숍, 건강보조식품 사업에 진출했다. 동원그룹은 밥장사를 통해 연간 3백50억원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신천역 인근에서 빵집을 하고 있는 ㄱ씨(56)도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주요 산업에 역량을 모아야 할 대기업이 앞다퉈 동네 골목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진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막강한 자금력과 마케팅 기법을 동원할 경우 영세업체의 도산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오는 9월 중소기업 고유업종 규제 법안이 폐지될 경우 대기업의 중소업종을 향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산업자원부는 중소기업만 생산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제도를 단계적으로 해제키로 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제도가 글로벌 경쟁시대에 경쟁을 통한 제품 생산성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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