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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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이뻐하는 사람들 많잖아요. 사랑하니까." 영화 [뽀삐] (김지현 감독) 첫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개들은 사람에게 상처를 안 주는 것 같아요. 전혀 요구도 안하고, 마치 해바라기처럼." 같은 영화에 나오는 극중 여배우의 이야기다. 애완견 인구 4백80만 명 시대의 집안 개들은 인간의 일방적 사랑이 투사된 '꼬리치는 노예'라고 빗대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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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과 명가를 자랑하며 고비용과 과보호로 사는 애완견과 달리 똥개는 괄시와 따돌림 끝에 종내는 손쉬운 복날 먹이감이 되어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똥개가 애완견과 달리 누리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릴없는 자유다. '어슬렁거림'과 '두리번거림'은 자유를 구가하는 똥개 특유의 '자태'인데,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는 똥개 근성은 그 자유가 침해받을 때 나타나는 것일까. 문제는 똥개가 언제 물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양아치 철민(정우성)과 경찰 아버지(김갑수)의 '밀양스러운'(시골스러운) 애환을 다룬 개봉작 [똥개](곽경택 감독)는 대도시에서 품위 있게 사는 애완견 삶과 달리 시골 촌구석에서 '똥개스럽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다. 아버지가 묻는다. "똥개야, 니 그리 살래?" 계속 똥개처럼 살겠냐고 묻는 것이다. 아들이 대답한다. "걱정마라 내는 깨져도 괘안타!" 똥개처럼 살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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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이 중요하다. 최근 국내 드라마나 영화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백수들과 '똥개'의 철민이 구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에 등장한 주인공 백수들을 잠깐 보자. 아마도 〈라이터를 켜라〉의 봉구(김승우)가 백수 전성 시대의 서막을 연 대표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그는 300원짜리 라이터에 목숨을 거는 어이없으면서도 끈질긴 똥고집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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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백수가 많다는 것이다. 올해 대기업 취업 경쟁률이 120 대 1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졸업은 곧 실업이다'는 대학 괴담은 이제 괴담축에도 들지 못한다.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정책과 공약을 바라보는 그들의 심드렁한 눈길엔 피곤함만 깊어진다. 그들에게 그 모든 대책은 공허할 뿐이다.  '한동안 백수로서 맘 편하게 살아라' 또는 '백수도 인간답게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위안이라도 담겨 있으면 다행스럽겠다. 백수의 자포자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한 토막 소식이 있다. 그 많은 백수들이 백수 이야기를 다룬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를 찾는다는 게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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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유머. 백수가 정말 화날 때는? 나보다 먼저 비디오 신프로 빌려간 사람 있을 때, 새우깡 가격이 올랐을 때, 많이 자고 일어났는데 컴컴한 새벽일 때 등등. 백수의 자리에 서보지 않으면 이 세계가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알 수 없는 법. 애완견의 길과 똥개의 길이 어디에서 갈라지는지도 마찬가지다.

김종휘[문화평론가-하자작업장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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