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한류가 만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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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BTS(방탄소년단)가 광고한 콜드 브루 커피 홍보물/유영국 제공

베트남에서 BTS(방탄소년단)가 광고한 콜드 브루 커피 홍보물/유영국 제공

2018년 12월 아세안 월드컵이라 불리는 스즈키컵에서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했다. 베트남 전체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승승장구했고, 스즈키컵 우승으로 명실상부 아세안 최고 축구팀이 됐다. 마침 스즈키컵 결승전이 있던 날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기획한 한국 소비재 판촉전이 성황리에 진행됐다. 그런데 국내 한 언론사가 ‘베트남 K뷰티에도 ‘박항서 매직’’이라는 제목으로 코트라 행사 소식을 보도했다.

보도 내용은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박항서 감독 덕분에 코트라 행사장에 사람들이 몰렸고, 특히 ‘한국산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이 인기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화장품 기업의 법인장으로서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에 쓴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베트남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으나 당시 기획전은 스즈키컵의 우승과 상관없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박항서 감독의 인기와 K뷰티는 전혀 무관했다. 그래도 혹시 ‘박항서 매직’이 K뷰티 인기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베트남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황당해하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한류 만능’ 맹신과 현실은 달라

아세안 한류 열풍에 한국 제품이라면 무조건 잘 팔릴 것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뿐 아니라 대기업마저 그런 생각을 한다. 이따금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한국에서 판매가 부진한 제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면 ‘베트남에서 팔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문의하는 업체들도 있다. 이들의 질문에는 ‘동남아는 못사는 나라이니까 하자가 있더라도 한국 제품이라면 잘 팔릴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아세안 시장 상황을 잘 몰라서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류를 해외사업의 만능’이라고 맹신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22년 hy(옛 한국야쿠르트)가 세계적인 한류 스타 BTS 멤버들의 사진을 넣어 판매한 콜드브루 커피는 세계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서 반응이 좋지 못했다. 베트남에서 BTS 커피를 독점 유통한 업체의 대표는 베트남에서 유명하고 영향력이 상당한 사람이었다. BTS 커피 출시 당시 베트남 주요 언론에 광고하고, 베트남 연예인들을 불러 BTS 커피 출시 토크쇼까지 진행했지만, 베트남에서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베트남은 2019년 전 세계에서 BTS 팬이 2번째로 많은 나라였다. 팬덤연구소 블립(Blip)의 유튜브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한 ‘2019년 K팝 세계지도’에 따르면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BTS 인기가 높았다. 당시 전 세계에서 BTS 인기가 3번째로 많은 나라인 인도네시아에서도 BTS 커피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언론 매체 모조크(Mojok)는 ‘가격은 비싸고 맛은 평범하다’는 혹평을 내놓았다. 그래서 업계 관계자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서 판매하기에는 BTS 커피의 가격이 높아서 반응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모두 270㎖ 용량의 BTS 커피를 현지 한 끼 식사가격인 2800원가량에 판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오판이다.

베트남에서 블랙핑크를 광고 모델로 내세운 펩시콜라/유영국 제공

베트남에서 블랙핑크를 광고 모델로 내세운 펩시콜라/유영국 제공

K팝 열풍의 중심에 있는 베트남 10대와 20대 초반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직장인들은 졸음을 방지하고 일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카페인을 섭취한다. 특히 야외 노동자들은 카페인 함량이 높고 단기적인 에너지 보충을 해주는 연유가 듬뿍 들어간 커피를 선호한다. 당시 베트남에 판매된 BTS 커피는 모카라떼, 바닐라라떼로 베트남 소비자들 취향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주요 타깃인 10대와 20대는 커피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류 앞세운 ‘문화 식민화’ 경계해야

또 다른 사례도 있다. BTS 커피 출시에 앞서 세계적인 음료 기업 펩시는 2021년 블랙핑크 멤버들 사진이 들어간 펩시콜라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했다. 해당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베트남에서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다. 블랙핑크 스페셜 에디션 펩시콜라의 가격은 기존 펩시와 차이가 없는 9000동(450원)이었다. 가격도, 한류 스타도 판매에 절대적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한 펩시 입장에서는 블랙핑크 팬 한 명이 각 멤버 얼굴이 인쇄된 펩시 4개를 모두 구매해 집에 보관하길 원했겠지만, 베트남 팬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펩시콜라 자체가 베트남 10대들에게 인기 음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음악 시장을 뒤흔들던 BTS와 블랙핑크였지만, 베트남에서는 안 팔리는 제품을 잘 팔리게 하는 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물론 한류의 영향으로 물건 판매가 잘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판매가 잘되는 것을 더욱 잘되게 하는 것이지 안 팔리는 제품을 팔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한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입장을 바꿔 설명해 보려 한다.

한국에 피자와 스파게티를 판매하는 식당이 수천 곳이라는 걸 확인한 이탈리아 기업이 ‘한국은 이탈리아 문화 열풍이라 이탈리아 상품을 수출하면 대박이 날 것이다’라고 분석한다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까? 또한 대한민국 베이커리 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1·2위 기업의 이름을 모두 프랑스어로 돼 있고, 프랑스풍 베이커리를 추구하고 있으니 프랑스 제품이면 무조건 팔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 프랑스 명품은 한국에서 엄청나게 팔리지만 그 외의 제품이나 두 나라 문화 상품은 인기가 없다. 이 사례를 한국 기업들이 생각해 본다면 한류가 해외 사업의 만능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사업을 할 때 ‘한류 만능’도 경계해야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아세안에서 한류를 앞세운 ‘문화 식민화’다.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에서 ‘한류’를 이용해 한국 제품을 잘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세안을 한류의 문화 식민지’로 보는 오만이다.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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