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노력이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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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는’(1857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는’(1857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중추를 담당했던 ‘베이비붐 세대’, 그 막내 세대가 은퇴 시기를 맞이했다. 이중 집에서 쉬고 있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한다. 아직 역할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회는 능력보다 나이로 평가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제대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특히 인공지능(AI)이 모든 분야를 장악하면서 이들은 사회적으로 도태된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다. 빠르게 시대는 변하는데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필요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하고 싶어도 원활한 사회적 활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회적 활동에 제약을 받는 여성을 그린 작품이 에밀리 메리 오스본(1828~1925)의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는(Nameless and Friendless)’다.

상점 안에 초록색 체크무늬 코트를 입은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고, 옆에서 소년이 화구를 든 채 그림을 보고 있는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노인은 눈을 지그시 뜨고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벽에 걸려 있는 많은 그림은 화랑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그림을 보고 있는 노인이 화랑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노인 앞에 서 있는 여인은 그림을 팔기 위해 온 것 같다. 소년이 들고 있는 화구도 이런 추정에 신빙성을 더한다.

초록색 체크무늬 코트 안에 입은 검은색 옷은 여인이 상중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손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지 않은 것은 부모가 죽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인이 손으로 핸드백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절박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며 경직된 자세로 서서 상점 주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과 붉은색 머플러는 돈에 대한 욕망을 나타낸다.

왼쪽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들고 있는 그림은 에드가 드가의 ‘발레리나’다. 그도 그림을 팔기 위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랑 안에 있는 남자들은 여인을 곁눈질로 바라보고 있다. 당시만 해도 여자들이 혼자 상점을 드나드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창가에 기대 있는 남자들은 여인을 바라보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다.

화면 왼쪽 창가에 보이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하늘은 영국 날씨를 나타내면서 화랑 주인이 여인의 그림을 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오스본의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는’에는 작가의 자서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인을 통해 생계가 어려워 그림을 팔러 나올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심정을 담아냈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자기 암시다. 사회는 노력보다는 머니 게임을 더 좋아한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중년은 그래서 은퇴하면 열악한 노동시장에 다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처한 현실을 탓하기보다 조상을 탓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박희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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