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 법안’보다 더 센 ‘패키지 법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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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병 민주당 의원 등 ‘양곡관리법 개정안+농안법 개정안’ 발의

쌀과 다른 농산물값 안정 도모…정부 “농업·농촌 발전 도움 안 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시민들이 과일과 채소 등을 구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시민들이 과일과 채소 등을 구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대 국회에서 좌절된 ‘양곡관리법 개정안’보다 더 강력한, 더 포괄적인, 더 촘촘한 대안이 22대 국회에 나타났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첫 거부권을 행사해 본회의에서 부결된 법안이 22대 국회에서는 ‘양곡관리법 개정안+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이라는 패키지 법안으로 발의됐다. 농안법 개정안은 양곡, 과일, 채소 등의 기준가격을 정해 하락하면 정부가 차액을 보전해주는 것이 골자다. 쌀값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농산물의 가격 안정도 도모할 수 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30일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두 개정안을 ‘의원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윤 의원은 “가격 폭락 시에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개별 농가가 떠안고 있다”며 법안 제안 이유를 밝혔다. 이원택 민주당 의원 역시 비슷한 내용의 ‘양곡관리법+농안법’ 패키지 법안을, 문금주 민주당 의원은 농안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민주당의 국회 농해수위 관계자는 “지금은 개별 의원들이 제각각 발의했지만, 당에서 농민 단체와 협의하고 당론을 모아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법안이 시행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22대 국회에서도 21대 국회처럼 ‘양곡관리법 대안’이 여야 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왜 쌀값만 지원” 정부 논리 역설적 뒤집어

이미 양곡관리법과 농안법 대안은 지난 4월 총선이 끝난 후 민주당 주도로 국회 농해수위에서 단독으로 본회의에 직회부된 바 있다. 하지만 5월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는 ‘농어업회의소법안’(회의소법)과 ‘지속가능한 한우산업을 위한 지원법안’(한우법)만 상정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이 줄곧 반대해온 법이라 당시 김진표 국회의장이 두 법안만 우선 상정했다”고 설명했다. 겨우 본회의를 통과한 두 법 역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자동폐기됐다. 결국 농업계가 기대해온 네 개의 법안이 정부의 반대로 21대 국회에서 모두 폐기됐다.

시행이 좌절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농안법 개정안과 함께 패키지 법안이 된 것은 농가의 현재 상황과 맞물려 있다. 기후위기로 온갖 작물의 작황이 들쭉날쭉해지면서 가격변동성이 너무 커져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이 위협받는다. 민주당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양파의 전년 대비 가격 증감률은 최대상승률 126.5%, 최대하락률이 -64.1%였다. 김장 관련 채소는 더욱 심해 가을무는 최대상승률이 255%, 최대하락률이 -73.1%였다. 가을배추는 최대상승률이 241.1%, 최대하락률이 -70.1%에 달했다. 여기에다 비료 가격, 면세유, 전기료 인상 등도 농가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됐다.

민주당이 양곡관리법 후속 입법을 위해 지난해 한농연 등 농민단체 관계자, 농업전문가들과 연 간담회에서는 쌀 뿐만 아니라 주요 농산물에 대한 가격안정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주로 제기됐다. “왜 쌀농사만 보전해주느냐”는 정부·여당의 논리도 농안법 개정안 추진에 한몫했다. 사과 농사를 주로 짓는 한 농민은 “많은 농산물 중에 쌀값만 정부가 보전해주는 것은 특정 농가에만 혜택을 주는 측면이 있다”며 양곡관리법을 반대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양곡관리법에다 농안법을 더하게 되면서 ‘쌀만 왜 지원해주느냐’는 정부 측 논리를 역설적으로 뒤집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농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농림축산식품부에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농산물가격안정심의위원회를 두고, 이곳에서 농산물가격안정제도를 시행하기 위한 대상 품목을 선정하고 기준 가격을 심의하게 된다. 여기에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농업 전문가, 생산자 단체 추천인 등이 참여하게 된다. 대상 품목에 지정된 주요 농산물이 기준 가격 미만으로 하락하면 정부가 농산물가격안정기금에서 생산자에게 그 차액을 지급해주게 된다. 이 제도는 미국·일본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또 7개 광역지자체와 62개 시군에서 비슷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특정 작물이 한 해 수확이 좋아 가격이 폭락하고, 그다음 해에 적게 심어 가격이 폭등하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일정 부분 정부에서 보전해주기 때문에 안심하고 특정 작물만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21대 국회의 과정 반복할 가능성도

정부는 지난 4월 19일 이 같은 패키지 법안을 반대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쌀 의무매입’ ‘농산물 가격안정제’는 과잉생산을 유발하고 미래 농업에 투자될 재원을 잠식하는 등 농업·농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일부 언론에서 농안법 시행은 ‘농정 포퓰리즘’이며 ‘농촌의 혁신’을 가로막는 법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몇몇 특정 품목만 선정하면 과잉생산이 유발될 수 있지만 주요 품목을 선정하면 몰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며 정부 논리를 반박했다. 또한 정부가 내세우는 연간 몇 조원 규모의 재원 역시 과장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자료에 의하면 “2005년에서 2015년까지 농산물 가격 추이를 토대로 시뮬레이션한 연구 결과 차액의 85%를 보전하는 방식을 16개 작물에 적용하면 연평균 7.7개의 작물에 발동돼 약 1조원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이 비용이 식량안보 차원에서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농안법 시행이 결국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을 민주당은 강조하고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는 가격이 폭등한 ‘금대파’와 ‘금사과’가 큰 쟁점이 됐다. 물가가 폭등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파를 들고 “한 단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이라는 발언으로 소비자들을 분노케 한 것이다. 민주당은 총선 과정에서 농산물 계약재배 대폭 확대로 ‘금사과’, ‘금대파’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농안법 개정안에 금사과와 같은 농산물 가격 폭등에 대한 대책 마련도 포함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도 거대 야당의 의지만으로는 농산물 관련 패키지 법안의 운명이 결정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여당의 반대로 ‘본회의 통과→대통령 거부권 행사→본회의 재의 부결’이라는 21대 국회의 과정을 반복할 가능성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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