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 정부 경제정책 실패 감추는 변명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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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사진/성동훈 기자

사진/성동훈 기자

“22대 국회에 들어온 초선 중 이 당선인의 활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총선이 끝난 후 열린 한 포럼 행사장에서 들은 말이다. 22대 국회에서 두각을 나타낼 여야 정치신인을 전망하면서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순위로 거론됐다. 안 의원은 1989년 제33회 행정고시 재정·경제직에 합격한 뒤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34년을 관직에서 보냈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2차관을 거쳤다. 국민의힘에서는 송언석 의원, 21대 의원이었던 류성걸 의원이 같은 코스를 거친 후 정계에 입문했다. 궁금했다. 기재부 출신 재정전문가라는 경력과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정치적 선택이라는 조합은 어떤 색깔을 보여줄까. 지난 6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 의원을 만났다.

-안 의원의 페이스북을 보면 주로 지역구(광주광역시 동남을) 관련 활동 이야기만 올라와 있다. 물론 지역민의 민심을 대변하고 지역발전을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국회의원은 각자가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입법 활동에 대한 기대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안 의원을 공천한 것은 재정전문가로서 전문성을 기대한 것으로 본다.

“그렇다. 야당의 역할은 정부·여당 정책에 대한 대안 제시라고 본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대패한 데는 경제 실정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라는 의미도 있다. 나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자유 방임주의적인 신자유주의적 접근이라고 본다. 시장과 민간기업이 알아서 경제를 운용하면 정부는 뒤로 빠져 있겠다는 기조다. 경제 여건과 정책 기조가 맞지 않는다. 대내외적인 경제적인 위기 상황에서 저성장 기조는 당분간 심화할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간의 기술 패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래혁신전략 산업을 두고 국가 대항전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나서야 하고 정부투자도 더 과감하게 해야 한다. 경제 하강국면에서 벗어나려면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지난 1~2년간 경제가 침체하면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경제적 상황이 매우 어렵다. 민생회복을 위한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나는 문재인 정부 때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경제를 빠르게 회복시킨 경험도 있다. 코로나19 극복 이후에는 뉴딜 투자계획이라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국가투자계획도 내놨다.”

-만들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다 엎어버렸다.

“그렇다. 당시 주도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아쉬운 대목이다. 불황에서 벗어난 새로운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국가의 역할,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재정투자에 대한 나름의 경험과 소신이 있어서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냐는 기대 덕분에 당선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라 살림을 하는 데 건전한 재정을 꾸려야 한다는 건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는 교조화됐다. 재정정책의 발을 묶는 걸 재정건전성이라고 하고 있다.”

-지난 총선 때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여당은 정책을 실행하고 야당은 비판하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야당이다. 역할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사실이다. 그런데 경제정책의 수단도 여럿이다. 국회가 입법권이 있어서 제도적인 틀을 만드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조세정책은 조세법률주의가 중요하고 의사결정은 국회가 내린다. 재정지출에서는 예산편성권은 정부에 있지만 심사는 국회 기능이다.”

-삭감은 할 수 있지만 늘릴 수는 없지 않나.

“증액은 행정부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 맞지만 야당 역시 민의를 반영하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고 관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3일 갑자기 포항 앞바다에 석유 매장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시추공 하나를 뚫는 데 1000억원이 든다. 최소 5개는 뚫는다는데, 그러면 5000억원이다. 대통령이 하겠다고 하면 국회가 통제할 수 있는가.

“정확한 내용은 봐야 하지만 어떤 재원으로 추진되는지는 들여다봐야 한다. 현재 정부가 가지고 있는 예산 재량 범위 내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재량범위에서 벗어난다면 국회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난해 출간한 책(<안도걸의 삶과 도전>)에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선제 대응이라는 말을 통해 재정정책을 지켜왔다는 자부심도 엿보인다. 그런데 기재부 관료들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집착은 병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IMF 환란 경험이 남긴 트라우마가 아닐까.

“재정건전성은 기본원리다. 나라 살림을 하는 데서 건전한 재정을 꾸려야 한다는 건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는 교조화됐다. 재정정책의 발을 묶는 걸 재정건전성이라고 하고 있다. 재정건전성이라는 게 어려운 것 아니다. 나라 곳간의 수입과 지출을 균형을 맞추고 재정적자도 적정한 수준에서 유지해 나랏빚이 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재정건전성을 가장 빠르게 이루는 것은 경제성장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세수가 늘고 곳간이 든든해지는 이런 것이 제일 좋은 재정건전성이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가 전체적으로 안 좋고 경기 하강기다. 재정건전성을 내세우며 재정지출을 줄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내수가 위축되고 경기가 꺼져 있는데 정부 지출마저 줄이며 경기가 더 꺼져 세수 기반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지금은 재정의 경기 대응 기능을 적극적으로 발휘해야 하는 시점인데 거꾸로 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감세 정책을 펴고 있다. 경기가 안 좋아 세수결손이 생겨 곳간이 마를 때는 감세는 지양해야 하는데 엇박자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연구개발(R&D) 예산까지 깎아버렸다.

“맞다. 정부 정책이 잘못됐는데 그것을 두고 재정건전성이라고 미화하고 있다. 재정건전성은 정책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관이다. 정책 수단은 세금과 지출인데 통상적인 대응과 정반대로 하는 것이다.”

-세수 결손이 2년 연속 일어나다 보니 깎지 말아야 할 예산까지 깎고 있다. 전 정부에서 예산실장과 재정담당 2차관을 지냈다. 같이 일했던 동료·후배들이 아직 관료로 남아 있지 않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들을 기회는 없었나.

“세금이 안 들어오니 지출구조 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건 맞다. 통상적으로는 세수가 안 들어오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 지출 구조조정은 불요불급한 예산을 깎는 방식인데 주로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줄인다. SOC는 조금 공기를 늦춰도 되니까.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금년도 예산을 보니까 SOC는 더 늘렸다. 늘리면서 R&D 예산은 5.2조원을 깎아버렸다. 말하자면 비정상적인 예산구조다. 결국 대통령실에서 내려보낸 것 아니겠는가.”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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