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중산층 가족의 삶 떠받치는 투명인간들의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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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는 아니지만 기괴한 으스스함을 안긴다. 이즈음에서 떠오르는 게 고 노회찬 의원이 언급했던 ‘6411번 버스로 새벽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 이야기다. 그들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영화가 21세기의 현재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찬란

/찬란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볼 때 각오는 했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전작 <언더 더 스킨>(2013)은 난해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주요 등장인물 블랙 위도로 유명한 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전신 누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당시 홍보 포인트인 듯한데 그 또는 그의 희생자 ‘피부밑’에 뭐가 있었는지는 영화의 끝 무렵에 가서야 알 수 있다.

분명 영화는 자기 완결적 텍스트다. 그럼에도 난해한 이유는 그 존재의 의미가 모호하고 중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외계에서 온 포식자’라는 설정은 감독이 그렇다고 하니 ‘아 예, 그런가 봅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상도 받았다. 무려 지난해 칸 그랑프리와 사운드트랙 수상작이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장편 국제영화상, 음향상을 수상했다.

10년 만에 돌아온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신작

다행히도 영화를 두 번 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 영화를 본 뒤 며칠 동안 몇몇 장면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감독이 왜 그런 장면을 삽입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면 관객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 아닌가. ‘역시 불친절한 감독이군’, 그렇게 생각했는데 두 번째 보면서 장면들이 꽤 유기적으로 배치된 걸 발견했다. 역시 잘 만든 영화는 한 번만 보고 ‘땡’ 칠 일이 아니다. 정말이다.

영화의 시작. 암전이 너무 길다. 두 번째로 영화를 볼 때 시간을 재보니 첫 시퀀스인 가족 피크닉 장면이 나올 때까지 3분 39초 동안 그냥 검은 화면만 보여주고 있다. 끝 장면도 그렇다. 주인공이 불을 끄고 건물을 나서는 장면에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시간을 재보니 6분가량이다.

어느 강가로 피크닉을 나간 가족들. 독일어를 쓰고 있는데 그들이 걸치고 있는 수영복이 너무 구식이다. 아하, 이건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초중반에 찍힌 낡은 흑백사진 속에서나 볼 법한 차림이다.

남편 회스는 부인 헤트비히의 뒷말에 따르면 일 중독자다(회스의 이름과 중령이란 직위는 영화가 시작하고 38분이 지난 뒤에야 나온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령관이다. 부부는 수용소에 붙어 있는 관사에 산다. 헤트비히는 정원 가꾸기에 열심이다. 부인의 주장에 따르면 아이들은 ‘밝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 얼핏 보면 자기 생활에 충실한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다.

헤트비히 집으로 온 어머니, 그러니까 회스의 장모는 에스더 실버만이라는 여성의 집을 청소하던 사람이었다. 딸이 잘살게 된 것을 기뻐하던 어머니는 혹시 ‘에스더도 저 담벼락 너머에 있을지’ 묻는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녀로 일하던 집주인은 유대인이었고, 나치 집권 이후 처지가 달라진 것이다.

회스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수용소에서 발탁된 유대인 집사와 하녀들의 노동이다. 어머니가 일하는 사람들이 혹시 유대인이냐고 묻는다. 헤트비히는 “유대인은 저 담벼락 건너편에 있어요. 그들은 동네 여자예요”라고 답한다. 거짓말이다. 잠 못 이루던 어머니가 편지를 남기고 떠나자 아침을 먹던 헤트비히는 집에서 일하던 하녀에게 짜증을 내며 덧붙인다. “내가 남편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너는 재가 되는 거야.”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넘어 전체 유대인수용소를 총괄하는 자리를 맡는다. 성실한 회스는 자기에게 주어진 ‘보다 효율적으로 유대인 수용자들을 처리하는 일’에 골몰한다. 심지어 파티에 초대돼서도 천장이 너무 높아서 가스 주입으로 이 사람들을 처리하는 건 쉽지 않겠군,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 정원 가꾸기에 열심인 헤트비히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생활은 집사와 하녀로 빼돌린 유대인과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에게 강탈한 고급품으로 영위된다. 유대인은 유령 같은 존재다.

화면 밖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학살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잔악한 학살은 모두 스크린밖에서 벌어진 것으로 처리돼 있다. 회스는 아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가 아들에게 소리로 새를 구분하는 법을 알려준다. 영화엔 수용소 안에서 벌어지는 잔학행위를 암시하는 소리가 마치 ASMR(백색소음)처럼 깔려 있지만,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공포 영화는 아니지만, 기괴한 으스스함을 안긴다.

이즈음에서 떠오르는 게 고 노회찬 의원이 언급했던 ‘6411번 버스로 새벽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 이야기다. 그들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영화가 21세기의 현재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수작이다. 추천한다.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제작연도: 2024

제작국: 영국, 폴란드, 미국

상영시간: 105분

장르: 드라마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

출연: 크리스티안 프리델, 산드라 휠러, 랄프 헤르포트

개봉: 2024년 6월 5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수입: 찬란

배급: TCO㈜더콘텐츠온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의 마지막은

/waralbum.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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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약 실재 인물이나 사건, 역사적 사실들과 일치하는 것이 있다면 전적으로 우연입니다.”

엔딩크레딧 끝에 덧붙여 있는 흔한 설명 문구다. 법적 소송 등을 방지하기 위한 고지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실제로 루돌프 회스가 있었고,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헤트비히가 있었다는 사실을.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 인터뷰를 찾아보면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회스 가족의 관사가 붙어 있었고, 그곳을 수리해 영화를 찍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촬영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대신 수용소에서 70m쯤 떨어진 다른 건물을 개조해 회스의 집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회스의 집 지하실로부터 수용소에 이르는 비밀통로가 나오는데 이 통로는 실제로 존재했고, 지금도 그대로라고 한다. 이 장면은 실제 비밀통로에서 찍었다.

전쟁이 끝난 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회스는 어떻게 됐을까.

회스는 ‘최후의 나치’로 네오나치들이 숭배한 SS친위대장 루돌프 헤스와 다른 인물이다. 영화에서 아내와 통화하던 회스는 게슈타포 수장 힘러가 작전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고 기뻐한다. 그 ‘회스 작전’이 43만 명의 헝가리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내는 작전이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회스는 연합군이 아우슈비츠를 점령하기 전 독일해군 복장을 하고 탈출했고, 프란츠 랑이라는 가명으로 정원사가 됐다. 헤트비히를 체포한 영국정보부는 남편의 소재를 밝히지 않으면 아들을 소련 쪽에 포로로 넘기겠다고 협박해 1946년 회스 체포에 성공한다.

폴란드 최고국가법원은 그를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전범으로 기소해 1946년 4월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회부했다. 1947년 4월 16일 아우슈비츠 앞에 회스 처형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설 교수대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향년 45세. 결국 회스는 아우슈비츠 최후의 처형자가 됐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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