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시대, 퇴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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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기자

김은성 기자

“모두가 가난해지는 것 같네요.” 자영업자 부채를 취재하면서 만난 사장님은 “물가가 월급보다 더 올라 직장인들이 지갑을 닫는 게 체감된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각지대 없는 보상을 내걸고 피해를 본 중소상공인에게 1인당 최대 1000만원씩 50조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소급 보상은 없던 일이 됐다. 보상액은 600만원으로 줄었고 사각지대 또한 속출했다. 반면 주요 선진국들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1인당 1억원가량을 지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전기요금 지원과 대출이자 환급, 연체 기록 삭제 등의 대책을 쏟아냈지만 ‘임기응변식 단기대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자영업자 부채를 일부 탕감해주는 새출발기금은 신용점수 하락 등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이 커 이용률이 저조하다.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금리로 갈아타는 대환대출은 은행의 협조가 잘 안 되고 있다. 정부의 무관심 속 ‘창구 컷’(창구 직원들이 탈락시키는 것) 은행과 본사에 심사를 넣어주는 은행 리스트들이 떠돌고 있다. 폐업은 돈이 있어야 한다. 대출 일시 상환에 자영업에 대한 정책 지원이 끊기는 걸 감수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빚으로 연명하며 버티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자영업 시장에는 한국사회의 고용 문제가 녹아 있다. 현재 자영업자의 67%는 50~60대다. 자영업자의 연 소득은 2022년 기준 평균 1938만원 수준이다. 노후 대책 없이 직장에서 밀려난 이들이 생계형 창업에 나선 결과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중장년이 주된 직장에서 퇴직할 때 연령은 평균 50.5세였다. 퇴직한 이들은 구직활동 시 어려운 점으로 ‘나이를 중시하는 사회풍토’(32.1%)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 외 채용 수요부족(17%)과 경력 활용 가능한 일자리 없음(14%) 이 뒤를 이었다. 이들이 자영업 시장에 뛰어들어 사회가 만들지 못한 일자리와 안전망을 메우고 있는 형국이다. 자영업자가 취약계층으로 밀려나 더 큰 사회 문제로 비화하기 전에, 정부는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채무를 해결 할 수 있도록 대출의 거치 상환 기간을 연장하거나, 폐업 문턱을 낮춰주는 등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자영업은) 재취업이 안 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밖에선 쉽게 때려치우라고 하는데, 우리가 나가면 받아줄 곳이 있긴 한가요?” 50세에 희망퇴직 후 7년째 한식당을 운영 중인 한 가장의 질문이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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