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시간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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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실험을 해보자. 모든 감각, 즉 시각·후각·미각·청각·촉각 모두가 제거된 상황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시간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을까. 심리학의 ‘내부시계모델(internal clock model)’은 그렇다고 말한다. 우리 두뇌에는 내부시계가 존재하고, 그 시계는 외부의 자극과 상관없이 어느 정도 일정하게 시간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엔 눈·코·혀·귀·피부처럼 따로 시간을 측정하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시간은 따로 측정할 만큼 중요한 자극이 아니거나, 너무나 중요해서 모든 감각을 동원해 측정해야 하는 요소라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기념품 1호로 제작된 손목시계. 뒷면에는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기념품 1호로 제작된 손목시계. 뒷면에는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대통령실 제공

시간의 종류

시간에 대한 화두는 물리학이 독점해왔다. 고전역학에서 상대성이론을 거쳐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에서 시간은 하나의 변수이자 주인공이었다. 시간여행이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된 것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지되지 않는 시간은 무의미하다. 바로 그곳에서 시간은 심리학과 생물학의 주제가 된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인지신경과학자인 에른스트 팝펠(Ernst Pöppel)은 우리가 인지하는 시간을 네 종류로 구분했다. 첫째는 ‘지속(duration)’ 혹은 ‘시간 간격(time interval)’이다. 우리는 하나의 사건이 지속하는 시간을 측정하고 인지할 수 있다. 둘째는 ‘시간의 차례(time order)’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시간상으로 먼저 혹은 나중에 벌어졌는지 인지할 수 있다. 셋째는 ‘과거와 현재’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인간은 현재 일어나는 사건과 과거의 사건을 구분할 수 있다. 마지막은 ‘변화’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를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은 이처럼 네 종류의 시간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 이외의 동물들도 그럴지는 아직 모른다.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은 아주 드물게 초파리 유전학자들에게 돌아갔다. 1970년대 행동유전학을 창시한 시모어 벤저와 그의 첫 박사과정 학생 로널드 코노프카가 발견했던 24시간 일주기성을 관장하는 유전자들과 그 핵심 기제 덕분이었다. 놀랍게도 초파리에서 발견된 일주기성 유전자들은 생쥐와 인간에도 보존돼 있었고, 지구의 자전 속도에 맞춰 진화한 이 생체리듬은 우리가 시간의 변화를 인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생물학적 기저로 밝혀졌다.

시간의 간격을 측정하는 일

일주기성 유전자의 발견으로 진화의 과정에서 시간 측정의 도구가 우리 유전체에 각인됐다는 사실은 분명해졌지만, 과연 이런 도구들이 시간 간격의 측정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답은 분명하지 않았다. 시간 간격의 측정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몇 마이크로초 단위에서 몇 시간까지의 시간 간격을 측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물 중 하나다. 인간의 이 능력 덕분에 음악이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다. 특히 시간 간격의 측정은 인간의 의식 및 의사결정 능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잘 생각해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시간에 대한 인지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의식할 수 없고, 거의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하고 몇 분이 지난 후에,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 같냐고 물어보면 된다. 시계나 휴대전화를 보지 않은 채 말이다. 다양한 답이 나오게 되는데, 아마 정확한 답을 맞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간 간격 측정치는 원래 그다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 가능한지 가늠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몇 시간이 지난 것인지, 혹은 몇 초가 지난 것인지 물어보면 된다. 1분인지 2분인지는 정확히 말하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게 몇 시간은 아니었고, 몇 초 단위도 아니었다는 걸 확실히 안다. 즉 우리의 시간 간격 측정 능력은 몇 초에서 몇 분 단위 내에서 꽤 정확하다.

시간 간격을 정확히 측정하는 일은 인간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생존에도 꽤 중요하다. 특히 사냥이나 채집을 하는 종 대부분에겐 사냥감의 이동과 흔적을 추적하거나, 열매나 꽃을 채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아는 일이 중요해진다. 하지만 이 일이 아주 정밀한 시간의 측정을 요구할 정도는 아니다. 그건 24시간 주기도 마찬가지다.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고 시간의 간격을 측정하는 일은 분명 생존과 연관돼 있지만, 따로 떼어 감각기관을 만들 정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해 시간을 측정할 정도로는 중요했던 것 같다. 우리의 모든 감각기관은 따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측정치는 미묘하게 다르다.

당신과 나의 시간은 다르다

1980년대 심리학자들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똑같은 지속시간의 시각 자극과 청각 자극을 피험자가 어떻게 구분하는지 시험해본 것이다. 흥미롭게도 대부분 사람은 청각에 주어지는 시간 간격을 시각에 주어지는 시간 간격보다 길게 느꼈다. 즉 같은 1초가 주어지더라도 소리로 주어진 1초가 빛으로 주어진 1초보다 길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쩌면 인류의 생존에 청각이 시각보다 더 중요했는지 모를 일이다.

시간 간격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는 거의 전무하지만, 심리학자들은 마약 중독자나 신경퇴행성 질환자들을 대상으로 시간 간격의 인지를 연구해왔다. 그중 하나가 게임중독이나 도박중독과 시간 간격 인지의 상관관계다. 대부분의 마약 중독자들은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환상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즉 대부분 마약은 우리의 시간인지 능력을 훼손한다.

게임에 심각하게 몰입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의 뇌가 어떤 중요한 사건에 집중하게 될 경우, 뇌의 내부시계는 작동을 멈춘다. 내부시계가 멈추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신호도 사라진다. 어떤 일에 미친 듯이 집중했을 때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경험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몰입은 시간의 측정을 방해한다. 지루하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 이유도 바로 이와 관련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간다고 느끼는 이유도 비슷하다. 시간 간격의 측정에는 내부시계의 정교함과 기억회로와의 연동이 중요한데, 나이가 들수록 그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의 대통령과 국민의 시간 감각은 어떨까. 대통령은 시간이 빠르다고, 국민은 시간이 느리다고 느낄 듯싶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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