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강약약강 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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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어느 새부턴가 나는 잘나가는 코미디언들이 하나도 재미가 없다. 우리 시대의 코미디는 사회현상이나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하는 것 안에 머물러 있고, 이는 차별적 시선이나 이데올로기를 심화할 뿐이다. 가령 지난달에 만난 한 베트남 이주민은 KBS <개그콘서트> ‘니퉁의 인간극장’이 동남아 출신 결혼이주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을 예를 들면서, “이렇게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시선만 가득한 개그를 보고 어떻게 웃을 수 있냐”고 강하게 반문했다.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최근 300만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제작한 경상북도 영양군 투어 영상이 구독자들로부터 크게 비판받았다. 출연진 3인은 “할머니 살을 뜯는 맛”, “여기 중국 아니냐?” 등 지역 비하로 여겨질 수 있는 농담을 내뱉었고, 이를 고스란히 게시했다. 당연히도 이 영상은 사람들의 역린을 건드렸다. 사람들이 ‘개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것이다.

풍자는 당대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사건이나 인물을 흉내 냄으로써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표현법이다. 풍자를 통해 우리는 당대에 벌어지는 사건들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고, ‘웃음’ 너머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응시할 기회를 갖는다. 흔히 풍자 개그의 대상은 권력자들인데, 이를 통해 관중은 일시적이나마 ‘전복’의 쾌감을 느낀다. 16세기 잉글랜드 튜더왕조의 폭군 헨리 8세를 향해 진실을 말할 수 있던 유일한 사람은 광대 윌 소머스뿐이었다.

어떤 코미디 연기가 억압으로 전달되는 권력이나 모순의 민낯을 까발린다면 우리에게 전복의 쾌감을 안겨줄 것이고, 단순히 현실을 모방해 유희거리로 삼는 것에 그친다면 그로 인한 균열은 불가피하다.

어떤 이들은 종종 ‘개그는 개그로만 보자’며, 코미디가 갖는 사회적 성격을 애써 부정한다. 그렇다면 <피식대학>의 영상은 왜 ‘개그로만’ 받아들여질 수 없었을까. 바로 ‘코미디’라는 장르가 갖는 사회적 성격 때문이다. 대중매체를 감상할 때 우리는 일시적이나마 일상의 피로와 억압을 잊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억압이 쉽게 잊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 모순은 대중매체 속에서도 쉴 새 없이 비집고 들어와 현실을 환기하고, 코미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코미디 연기가 억압으로 전달되는 권력이나 모순의 민낯을 까발린다면 우리에게 전복의 쾌감을 안겨줄 것이고, 단순히 현실을 모방해 유희거리로 삼는 것에 그친다면 그로 인한 균열은 불가피하다. <피식대학>의 영양군 투어 영상은 후자에 가까웠다. 불평등과 실업난으로 지역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오늘, <피식대학>이 유희거리로 삼았던 농촌 현실은 그리 가볍지 않다. 이는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다 못해 사회복지 시스템마저 붕괴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5월 12일, <피식대학> 채널엔 입시교육을 통해 1000억원대 자산가로 알려진 현우진이 출연했다. 영상 속 진행자들의 태도는 영양군 영상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현우진의 감동 없는 자기 자랑과 이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세 개그맨의 모습이 담겨 있을 뿐이다. 돈 많고 성공한 출연자에 대한 진행자들의 태도에서 어떤 풍자나 패러디를 감지하기란 어렵다. <피식대학>에 대해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강약약강’은 현우진에게도 있다. 5월 8일, 그는 ‘6월 모평 대비 킬링캠프’ 강의에서 수업 자료를 무단 복제해 공부하는 수험생들을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은 바 있다. “PDF를 쓰는 아주 싸가지 없는 집단이 있어요. (…) 이런 바퀴벌레 같은 사람도 당연히 있죠. (…) 쓰레기들이 있고 분리수거 안 되는 집단이 있고, 폐기물들이 있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긴 한데….” 족히 수십만 명의 청소년들이 이 영상을 봤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비정상적으로 커진 사교육 시장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사실, 입시 경쟁에 매달리는 청소년들의 상황을 인식할 염치는 구비하지 못한 모양이다. 코미디의 과녁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모순으로 가득한 엘리트 권력이어야 하지 않을까.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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