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을까, 이런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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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칠드런 오브 맨> 공식 포스터 /네이버 영화 갈무리

영화 <칠드런 오브 맨> 공식 포스터 /네이버 영화 갈무리

얼마 전 한 친구가 정관수술을 했다고 알려왔다.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지 못할 것 같다’며 내린 결론이다. 대학 시절엔 셋 이상 낳겠다고 말했던 친구라 충격이 컸다. 둘이 벌어 집 하나 살 자신도 없다는 그의 표정이 어쩐지 쓸쓸했다.

설 명절에 만난 가족은 슬며시 아기 얘기를 꺼냈다. 둘은 있어야 집안이 북적북적 덜 심심하다는 조언이었다. 영화에는 두 아이 중 하나만 똑똑하면 나머지가 힘드니 ‘행복한 두 멍청이’를 만들자는 아내도 나온다(<어바웃 타임>). ‘과연 그런가’ 싶다가도 결혼도 안 한 처지에 먼일이라며 덮어뒀다. 친구 아이는 귀엽지만, 솔직히 내 아이를 기를 자신은 없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출산은) 매력 없는 선택지가 되었다”는 문화평론가 정지우씨의 글이 화제였다. “아파트 (대출) 빚에 30년씩 시달리며 아이를 사교육 경쟁 지옥에 밀어넣는 것보다, 발트 3국 여행하고, 발리랑 다낭에서 한 달 살기 하는 게 (사람들에게) 훨씬 근사해 보인다”는 논리였다. 돈 있는 사람이 아이를 더 낳는다는 통계를 보면 출산이 꼭 ‘선택’의 문제인가 의문이지만, 저출산을 ‘고스펙 여성’ 탓으로 돌리고 ‘대한민국 출산 지도’를 내미는 나라에서 이만하면 사려 깊은 관점이다 싶었다. 진실은 ‘못 낳는 가정’과 고민하는 친구, 다른 선택을 말하는 정씨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더 이상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근미래 세계 영국을 다룬다.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가 흑인 이민자 출신이란 게 영화의 핵심 갈등 요소다. 저출생 심화로 인구 감소가 현실화하면 이민을 적극 환영하는 게 (윤리를 떠나) 합리적 선택일 텐데 이상하게도 영화 속 영국은 이민자를 철창에 가둔 채 게토(ghetto)화하고 있다. 국경에서는 무장봉기한 이민자와 정부군이 혈전을 벌이고, 이민자 해방을 주장하는 이들은 아이를 정치적 상징화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주인공 테오의 임무는 그 아이를 이 지옥 같은 나라에서 탈출시키는 것이다.

테오와 산모, 아이가 가는 길은 차별과 폭력의 연속이다. 정부군이고 반군이고 가장 어린아이의 생멸은 숫자까지 세 기념하면서 특별히 어리지 않은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 테오가 아이를 데리고 지나갈 때 양측 모두가 감격하며 총격을 멈추지만 잠시뿐, 또다시 총알과 대포를 서로에게 겨눈다. 이들의 행로를 따라가는 카메라는 총격에 죽은 아들딸을 끌어안은 채 울부짖는 어머니들을 여러 차례 비춘다. 자라난 아이를 죽여 없애는 마당에 새로 태어난 아이만 끌어안은들 무슨 소용인가. 신의 저주인지 질병인지 출생률 0의 원인이 따로 나오지는 않지만 어쩐지 알 것도 같았다. 소중한 아이가 ‘이런 세상’에 살기를 바랄 부모는 없다.

정부고 기업이고, 아기를 낳으면 이런저런 혜택을 준다고 홍보하지만 잠시 지원받는다고 부모와 아이 모두가 살 만한 세상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영화 원제가 ‘인류의 아이’가 아닌 ‘아이들(children)’이란 데 주목해 본다. 지금의 부모도 한때는 아이였다. 영화의 배경은 2027년, 가상이지만 3년 남았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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