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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2년 1월 30일 국민의힘 공식 유튜브 채널 등에 올라온 영상 썸네일 / 유튜브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2년 1월 30일 국민의힘 공식 유튜브 채널 등에 올라온 영상 썸네일 / 유튜브 갈무리

연애 예능 <나는 솔로>를 즐겨본다. ‘레전드’로 불리는 16기(돌싱편)를 기점으로 국민 예능이 된 프로그램이다. 1기부터 빠지지 않고 챙겨봤으니 ‘찐’ 애청자라 자부한다. 1기의 성악가 영호가 첫인상 선택부터 마음을 표현한 무용강사 정숙에게 차이고 숙소로 돌아와 포효하며 우는 장면을 우연히 본 뒤 매료됐다. 한때는 대놓고 시청자임을 밝히지 못하는 ‘길티 플레저’ 프로그램이었지만, 이제는 “명실상부한 인류학 사료”라고 말하며 당당히 보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18기 출연자 가운데선 옥순의 말과 행동이 시선을 끌었다. 옥순은 성격유형 검사 MBTI를 신봉하는데, 그중에서도 F(공감형)와 T(사고형)성향에 유독 집착한다. 자칭 F성향인 그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는 상대인 영식을 향해 “F가 아닌 T 남자라서 고민이 된다”고 말한다. 옥순이 T형 남자를 꺼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식은 “새벽에 가위에 눌려 잠을 잘 못 잤다”는 옥순에게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라고 답해 원성을 샀다.

한때 18기 옥순처럼 MBTI를 맹신했지만, 신뢰도가 예전 같지는 않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구는 ‘F·T 논쟁’을 보고 있자면 특히 김이 새는 기분이 든다. ‘T발 C야?’ 같은 유행어가 대표적이다. T성향에 해당하는 이들을 욕설하듯 조롱하는 말인데, 단순히 유행어라 치부하기엔 폭력적이다. ‘나’의 아픔에 만족할 만큼 공감을 표하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리거나, ‘이성적인 나’에 취해 상대의 아픔을 ‘F라서 그렇다’며 무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공감 능력을 여느 때보다 강조하지만, SNS와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약자 혐오는 날로 심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30일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9번째 거부권 행사였다. 거부권 행사 소식에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인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정권”이라며 절규했다. 경찰은 “이게 나라고 대통령이냐”고 외치는 유가족을 막아섰다. 길바닥엔 ‘거부권을 거부한다’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이 나뒹굴었다.

정부는 국무총리 소속 ‘10·29 참사 피해지원 위원회’를 설치해 생활안정지원금 등 참사 피해자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한 유족은 이에 “참사 초기 ‘가족 팔아 돈 벌려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으며 가슴을 움켜잡았다. 정부는 또다시 참사의 프레임을 진상규명에서 배·보상으로 바꾸려 한다”고 반발했다. 진상규명 없는 유가족 지원만으로는 이태원 참사의 본질을 덮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MBTI는 ENFJ입니다. 찾아보니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고 하네요. 카리스마와 충만한 열정을 지닌 타고난 리더형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어려움에 맞서 싸운다고도 하네요. 역시 타고난 대통령감인가요? 같은 MBTI에 버락 오바마님도 있네요.”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공약위키’ 홈페이지에 게시된 동영상은 윤 대통령의 MBTI를 이렇게 소개했다. 다시 보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지금의 윤 대통령은 사회정의 구현은커녕 정권의 안녕만을 위한 거부권 행사로 국민에 맞서고 있다. 윤 대통령의 F는 공감이 아닌 ‘낙제(Fail)’를 뜻하는 게 틀림없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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