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장범준의 발칙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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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가수 장범준은 지난 1월 3일부터 서울의 한 소극장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2년 만에 열리는 콘서트 티켓은 예매 10분 만에 매진됐다. 그런데 티켓팅 직후 중고거래사이트에 정상가격보다 2~3배 비싼 암표가 올라왔다. 이를 본 장범준은 자신의 유튜브 커뮤니티에 “암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일단 공연 티켓 예매를 전부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는 공지를 올렸다. 공연계의 암표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매크로(자동클릭프로그램)’ 사용으로 인해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콘텐츠진흥회에 신고된 암표 건수는 2020년 359건에서 2022년에는 4224건으로 2년 새 10배 넘게 폭증했다. 기업화되고 있는 암표상에 맞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는 가수들이 있다. 아이유는 부정거래를 제보한 팬에게 해당 티켓을 포상으로 주는 ‘암행어사’ 제도를 운영했고, 성시경은 매니저와 함께 직접 암표상을 유인해 잡아낸 다음 표를 취소했다. 이소라는 공연 중 “매진이 그댈 암표를 원하게 해도 짜증 내지 마세요”라고 자신의 노래를 개사해 부르며 팬들에게 암표 구매 자제를 호소했다. 예매된 티켓을 일괄 취소했던 장범준은 본인확인을 거친 희망자 중 무작위 추첨을 통해 좌석을 배정했다. 저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공연이라는 재화를 가장 공정하게 나누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은 모두가 동일해 보인다.

2년 만의 콘서트 티켓이 암표로 둔갑하자 예매를 일괄 취소하고 본인 확인을 거친 희망자를 무작 추첨해 좌석을 배정했다. 팬클럽 선예매 관행도 무시했다. 자본 논리의 첨단을 달리는 K팝 한구석에서 평등의 윤리를 주장한 것이다.

무엇이 가수들을 암표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게 했을까? 팬들의 상심이나 암표상의 부당이득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공연의 가치 훼손이다. 마이클 샌델은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공연에는 음악을 향한 나의 열정과 노력, 팬들을 향한 진심이 담겨 있으므로 암표상에 의해 임의로 가격이 매겨질 경우 본연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생각, 이것이 그들을 움직이게 한 동기가 아닐까. 다른 가수들이 반칙의 제거에 초점을 두었다면 장범준은 좌석 배정방식 자체를 바꿈으로써 반칙의 발생 가능성을 원천차단했다. 장범준의 방식은 고대 그리스의 추첨제 민주주의를 연상케 한다. 이는 K팝 공연에서 일반화된 팬클럽 선예매라는 관행도 무시한 방식이다.

지난해 놀이공원의 ‘매직패스(줄서기가 면제되는 입장권)’가 적절한지 논란이 벌어졌을 때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원하는 재화를 돈 주고 사는 건 당연하다”며 찬성 의견을 밝혔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마음보다는 구매의사(구매력)를 우위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같은 원리인데도 불구하고 매직패스는 허용되고 공연장 암표는 불법인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이 여기까지 이르면 암표의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매직패스가 시장논리를 주장한다면 장범준의 실험은 평등의 윤리를 주장한다. 사회 곳곳에서 줄서기의 윤리가 ‘돈을 낸 만큼 먼저’라는 논리로 대체되고 있는 요즘, 소극장에서 벌어진 작은 실험은 우리가 정말 원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자본논리의 첨단을 달리는 K팝 시장 한구석에서 튀어나온 도발적인 질문이다.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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