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메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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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두 번째 시집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

이재연 시인

이재연 시인

한 모임에서 “어릴 적, 한겨울에 거의 영하 30도까지 내려갔다”고 하자, 믿지 않더군요. 강원도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경기도 안성은 그럴 수 없다면서요. 억울한 마음에 휴대전화로 검색해 안성 옆 여주의 ‘영하 27도’까지 내려간 기록을 보여줬습니다. 그래도 쉽게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기후위기도 그렇지 않을까요. 인류가 전혀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환경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사람들은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태어나는 시

이재연 시인(1963~ )의 두 번째 시집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는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재앙과 희망 없는 미래, 그런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 어른들의 무책임, 그리고 신(神)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은유와 통찰을 통해 빼어난 솜씨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평범한 일상과 회상을 시간(경험)을 통해 재구성하면서도 적절하게 성경 구절과 신화를 시에 녹여냅니다. 신은 오만한 인간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인류는 공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시인이 절망하는 지점이면서 시적 순간입니다.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 표지 | 파란 제공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 표지 | 파란 제공

시인은 여는 시 ‘진화’부터 닫는 시 ‘대지의 춤’까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하 ‘아름다운 미래’)과 “그 밖의 모든 것들”을 비판하면서도 어루만지려 합니다. ‘진화’에서 “개가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친구가 울었다”고 합니다. 무언가 불길한 이 상황은 현재입니다. “불꽃같은 너는 어둠 속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배가 홀쭉해져 깊은 풀숲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과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이를 낳고 자연으로 돌아가지요. “언덕이 무너질 때까지/ 뒤는 돌아보지 않을 생각”이라 건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참겠다는 의지입니다. “우리는 익명”이 되어 “더 멀어지고 점점 아프지 않게 될 것이고/ 영영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익명’은 새로운 시작이나 영원한 이별을 의미합니다. 소중한 사람과 헤어진 친구의 오랜 슬픔이 감지됩니다.

‘대지의 춤’에서는 “천천히 식기를 씻”고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곳에 내려” “덤불 속에서/ 방금 식은 태양의 한숨”을 찾습니다. 지구의 종말을 떠올리는 이 상황은 현재이면서 미래입니다. “들판의 작은 씨앗들”이 빠르게 춤을 추고, “이 오래된 춤을 짊어”지는 대지의 어머니는 과거이면서 신화입니다. 만물은 땅에서 태어나기에 대지는 당연히 가이아 같은 여신을 상징하지요. 지모신(地母神)이기도 합니다. 생명으로 꿈틀대던 들판은 더 이상 씨앗을 틔우지 않습니다. 식사 장면에 대한 묘사 없이 식기를 씻는 행위는 쓸쓸하고 고독합니다. “해수면이/ 높아지기까지 오십 년이면 충분”(이하 ‘아름다운 미래’)하고, “태양은 섬을 가라앉”히겠지요. 기후재앙 수준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구

시 ‘눈의 나라에서’는 이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구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을 드러냅니다. 눈으로 뒤덮인 하얀 대지는 순결합니다. “죄가 없으면 끝없이 따라가고 싶은 흰 길”입니다. 그러나 이는 흰 눈마저 오염됐거나 눈 아래 “우리들의 잔해가 조용히 묻”혀 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만 순결할 뿐이지요. ‘지구를 살리자’는 소리를 “더 크게 지를 수도 없고”, 그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태초의 언덕은 “침묵에 휩싸”입니다. 할 수 있는 건 “텅 빈 손을 허공에 뻗어/ 상처 없는 눈을 손바닥에 받아/ 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메모”하는 것뿐입니다. 그나마 “눈밭에 떨어져 있”는 “짐승의 발자국 하나”가 희망입니다.

시인은 “밤 열두 시 이후를 사랑하십니까”(이하 ‘아무도 없습니다’) 묻습니다. 밤 열두 시라 표현했지만, ‘환경위기시계’의 12시는 인류 멸망을 뜻합니다. 시 제목처럼 아무도 없는 세상이겠지요.

지구에서 살 수 없다면, 인류는 우주로 눈을 돌리겠지요. 시인은 “그때의 화두는 단연 우주”(이하 ‘모르는 마음’)가 될 것이라 합니다. 먼저 “고양이 한 마리를 우주에 보내”지만, 예측했던 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시인은 “그것이 (인류의) 미래”라 단정합니다.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어둠인 줄” 모르는 우리는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고, “이미 너무 무거워 우회가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회할 줄 모르고 직진만 하다가, “하나가 전체”(이하 ‘거울’)이고 “전체가 하나”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공멸의 길로 접어든 것이지요.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기댈 곳은 신(神)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신은 그러나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아무 말 하지 못하고 평범한 나의 신은 버스를 타고”(‘평범한 나의 신’) 떠나거나 아이와 함께 “도망가 버”(‘신과 아이’)립니다. 도마복음에도 “세상을 발견하고 풍요로워진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단념하게 하라”(‘사랑의 책’)고 기록돼 있습니다.

시 ‘아이들이 지나간다’에서 시인은 “이제 어디에도/ 지난날은 없다”고 선언합니다. “술맛을 알고 생활을 이기려 했지만”, 얻은 것은 “허망한 것들”이고 “잃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술을 마신다고 해결되진 않습니다. 그래도 “한번은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영원히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영원을 발명 중”이라네요. “신을 죽이는 것보다/ 신을 꿈꾸는 것이 낫다”고도 합니다. “목줄을 길게 풀어놓은 아이들이 지나”가자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목줄’은 ‘목숨’의 다른 말일 것입니다. “허투루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아이”가 떠나자, “소수의 소수”가 됩니다. 자주 새벽에 잠을 깨 불을 밝힙니다. 떠난 아이를 기다리는 것만이 “겨우 사는 이유”입니다. 환경위기와 절대 고독을 경험한 시인은 단순하게 살기로 합니다. “노력도/ 그만두”(이하 ‘단순한 미래’)고, “아보카도 씨앗”에 물을 주고, “좀 더 많이 걷고”, “많이 웃어” 줍니다. 그것만이 절망을 극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말

[김정수의 시톡](28)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메모하다

저 무수한 빛 가운데 빛으로

배동욱 지음·작가마을·1만원

두 번째 시집을 펴내며 내가 나를 비워내고 비워낸 나의 뒷모습이 멀어져 가는 것을 오래 지켜본다.

[김정수의 시톡](28)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메모하다

간수의 산통은 진행형이다

송시월 지음·시산맥·1만원

주변을 떠돌다 보면 가끔은 유폐되었던 시간들이 침묵을 깨고 들려주는 사물들의 이야기를 서툴게나마 받아적을 수 있었다.

[김정수의 시톡](28)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메모하다

어찌 재가 되고 싶지 않았으리

한상호·책만드는집·1만원

체념(諦念)하지 못해 체념(滯念)이 된 것들을 써봅니다. 재가 되지 못한 불꽃이라 불러도 무방하겠습니다.

[김정수의 시톡](28)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메모하다

읽기 쉬운 마음

박병란·푸른사상·1만2000원

무엇무엇이 서로에게 서로를 내주는 일. 한 가지 색의 고유함보다 무엇과 무엇이 함께 만들어내는 고유함에는 힘이 있었다.

[김정수의 시톡](28)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메모하다

붉음을 쥐고 있는 뜨거운 손끝

유성임 지음·북인·1만1000원

깊지도 얕지도 않은, 뜨겁거나 차갑지도 않게, 잔을 들 때는 공손하게, 과유불급을 마음에 새기며.

<김정수 시인 sujungi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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