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새해엔 어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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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1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의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앞을 한 관람객이 지나가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 12월 11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의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앞을 한 관람객이 지나가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전두환 개새끼!” 친구(40대 후반인)가 평일 이른 시간에 <서울의 봄>을 봤는데,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돌아보니 스무 살 남짓의 남자 청년이었다. 친구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단다. 청년(과 그의 세대)이 이런 역사를 몰랐구나, 이제라도 알게 돼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며칠 후 그 이야기를 전하는 친구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 후 40여 년 때문에요. 특히 그 개새끼들에 저항하던 세력이 새로운 기득권 세력이 돼 많은 걸 망가트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역사를 제대로 아는 걸 텐데, 미안하기도 하고 왠지 창피스럽기도 하고 그러네요.”, “86세대도 아닌데 창피할 것까지야 있나.” 둘은 한참 말을 멈추었다.

현재 한국 정치와 사회 기득권의 절반은 극장에서 청년이 개새끼들이라 욕한 놈들을 잇는 세력이, 나머지 절반은 그 개새끼들에 저항했던 세력이 점한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지났으니 두 세력이 옛 모습을 벗고 제도권에 들어오고 기득권을 가질 수도 있다. 친구가 불편해하는 이유는 현재 시점에서 두 세력이 의미 있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리라. 노동을 비롯해 청년과 다수 인민의 삶과 관련한 정책에서 둘은 얼굴만 다른 한 몸이다.

둘은 서로 보수니 진보니 우파니 좌파니 불러가며, 기득권 경쟁에 몰두한다. 이 기괴한 쇼가 가능한 건 시민의 지지와 참여 덕이다. 쇼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쇼에 열심인 건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그런데 권력이나 기득권과는 거리가 있는, 많은 사람이 남의 쇼를 제 현실로 받아들여 진지하게 참여하는 건 이상한 일이 분명하다. 쇼는 성공적으로 지속해왔고, 그에 따라 진보 정치나 다른 비전을 가진 정치는 쪼그라들고 사라져갔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라는 책에 내 글이 인용됐다며 허락을 구하는 연락이 왔다. 해당 부분을 확인하다가 매우 인상적인 구절을 읽었다.

“몇 년 전 나라를 두 동강 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관련 논란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던 것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온갖 스펙을 만들어서 자녀를 의과대학에 입학시켰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부모가 법정에 서야 할 정도의 무리수를 써서라도 자녀를 안정된 체제 안으로 넣으려는 이 사회 엘리트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그들에게 지금의 헬조선 현실을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이런 스펙 쌓기가 더욱 진화했다는 것을 우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자녀들을 보며 다시 알게 된다.”

저자 김현아씨의 견해가 인상적인 건 무엇보다 사회를 흔한 진영 논리가 아니라 엘리트와 다수 서민의 관계로 본다는 점이다. 조국 사태를 단순히 윤리 차원에서 비난하거나 지지하지 않고, 교육 문제에 관한 기득권 세력의 의지를 확인하는 일로 읽는다. 많은 사람이 조국 문제에 대한 견해로 한동훈 문제에 대한 견해를 결정하는데(조국을 비난하면 한동훈을 옹호하는 식으로), 둘을 다르지 않은 잣대로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이 견해에 어떤 특별한 사유나 통찰이 담겨 있는가. 그저 어른이라면 당연한 분별력과 양식이 담겨 있을 뿐이다. 특별한 건 이 견해가 아니라 이 정도의 견해가 특별해져 버린 사회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새해에는 우리 모두, 적어도 어른이 되자.

<김규항 ‘고래가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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