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영장 대면심리제 도입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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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 시절 필요성 언급…수사기관은 반대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휴대전화에는 개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화 내역은 물론 타인과 주고받은 각종 메시지 내용, 카드 결제 내역, 사진·동영상 등을 바탕으로 개인의 일상을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어떤 단어를 검색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 초기에 피의자 등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려는 건 이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휴대전화에 담긴 ‘정보’가 압수수색 대상이다. 수사기관은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핵심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와 무관한, 광범위한 사생활 정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실제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압수수색영장의 청구 대비 발부율은 90%가 넘는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의 발부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대면심리를 진행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기록만 검토한다. 법원이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할 때 반드시 심문을 진행해야 하는 절차와는 대조적이다. 또 검찰이 영장에 압수수색 집행계획을 적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이 제도가 시민의 기본권 보장과 수사기관의 실체적 진실 사이에서 조화를 도모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본다. 반면 수사기관은 사전에 수사 정보가 새어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모든 정보 볼 수 있어

조희대 대법원장은 후보자 시절인 지난 12월 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압수수색영장 대면심리제도의 도입을 두고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최근 압수수색 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외국에서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며 취임하면 공론화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다소 주춤했던 제도 추진 움직임이 탄력을 받으리란 관측이 나왔다.

앞서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 2월 압수수색영장 대면심리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형사소송규칙(대법원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법원행정처는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은 그 특성으로 인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할 우려가 높아 특별히 규율할 필요가 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판사가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과 관련해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심문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의무는 아니고 판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심문기일을 지정해 진행토록 한다. 판사가 압수수색 필요성 등에 의문이 생기면 담당 검사와 통화를 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법령상 근거가 없다.

법원행정처 측은 대면심리제도가 시행되면 판사가 보다 신중한 판단을 내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수사기관 또한 대면심리에 대비하기 위해 엄격하게 압수수색의 방법·대상 등을 선택해 압수수색의 남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압수수색영장 대면심리제 도입될까

압수수색 과정에서의 기본권 침해는 그간 꾸준히 제기된 문제다. 수사기관은 원칙적으로 휴대전화나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에 저장된 정보를 현장에서 작업을 통해 압수해야 한다. 다만 수색해야 할 정보의 방대함과 기술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예외적으로 휴대전화 등 자체를 압수해 수사기관의 사무실로 반출할 수 있다. 이런 예외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등 압수물을 봉인해서 보관하지만,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을 원천 배제할 순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수사기관에서 휴대전화 등에 저장된 정보를 추출할 때, 피압수자와 그 변호인의 입회하에 협의도 가능하다. 하지만 시간과 비용 등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피압수자가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이창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선별을 위해 수사기관에 며칠씩 출석해야 할 때도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기 때문에 피압수자가 입회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그러면 수사기관은 휴대전화 등에 담긴, 피의 사실과 무관한 정보까지 모두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한지형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는 “사실상 ‘모든 것’을 압수할 수 있는 영장이 발부되고 있다”라며 “사실상 철저한 선별은 어렵고, 일단 수사기관이 정보를 입수하는 것을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이어 “전자정보 압수수색처럼 압수 대상이 광범위하고 범죄와 무관한 자료의 선별이 필요한 경우에는 추가심리를 할 필요성이 특히 크다”라고 했다.

법원행정처의 통계를 보면, 압수수색영장 청구 건수는 2011년 10만8992건에서 줄곧 증가 추이를 보이다가 2022년에는 39만6671건에 달했다. 발부율은 2011년 87.3%에서 2022년 91.1%로 집계됐다. 압수수색영장은 수사 초기라는 점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이 비해 범죄 소명 정도를 낮게 본다고 한다. 영장전담 판사들이 사안이 애매하면 영장을 내주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도 발부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미심쩍더라도 실체적 진실이 묻힐 것을 우려해 발부를 선택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대면심리를 통하면 보다 꼼꼼하게 압수수색의 필요성을 짚을 수 있게 된다.

개정안은 또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할 때 집행계획도 적시토록 했다. 휴대전화 등에서 증거로 쓸 자료를 빼낼 때 사용할 ‘검색어’(인물 및 대상 등)와 ‘검색 대상 기간’ 등도 영장에 담도록 규정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피의사실과 무관한 정보의 압수를 방지한다는 취지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수사기관은 굉장히 광범위한 검색어를 사용하려 한다”라며 “법원에서 검색어를 어느 정도 제한한다면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면심리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측은 이 제도는 복잡한 사건 등 일부에서만 활용하면 되고, 심문 직후 결론이 나기 때문에 수사가 지연될 우려는 없다는 입장이다. 대면심리를 통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창민 변호사는 “법관이 의문점 등을 수사기관이나 제보자에게 질의해 그와 관련된 의문을 즉시 해소할 수 있다”라며 “외려 대면심리를 통해 수사의 효율성이 증대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체적 진실 발견 저해”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수사기관은 그러나 일제히 반대한다. 피의자를 심문한다면, 수사 상황이 그대로 유출돼 증거 인멸 등의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든다. 담당 검사나 참고인(제보자) 등으로 심문 대상을 한정한다고 해도 문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차동호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지난 4월 토론회에서 “통상 제보자는 피의자 주변 인물일 가능성이 커 피의자에게 압수수색 예정 사실이 노출될 우려가 농후하다”라며 “실체적 진실 발견을 크게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영장을 발부받기 위한 절차가 추가되면서 수사의 신속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거론한다.

반대 측은 대면심리가 법원의 필요에 따라 운영되는 부분을 두고 “예측 가능성을 전혀 담보할 수 없다”라며 “국민의 권리의무와 관련한 중요한 절차가 선택적으로 운용되는 것 자체가 형평성에 반할 우려도 있다”고 했다. 또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있는 이들만 득을 볼 수 있다는 논리도 제시한다.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이 높은 점을 두고도 “무죄 선고율이 1%대에 불과한데, 이를 두고 과잉 형사처벌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처럼 법원은 청구된 영장을 검토해 발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발부율이 높다고 해서 과도한 압수수색이 이뤄진다고 해석할 순 없다”고 맞섰다. 또 과거 진술에 의존하던 수사나 재판에서 물적 증거가 중요시되는 현실에 따라 영장 발부율이 높아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뒤 압수물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뒤 압수물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검색어 등 압수수색 집행계획을 영장에 명시토록 한 개정안 내용도 수사 실무를 모르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향후 수사 계획이나 기법 등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차 검사는 검색기간을 두고 “3년 전 작성한 문서라 해도 최근 다른 기기로 옮기거나 파일을 열어 새로 작성하면 파일의 생성 시점은 수시로 변동한다”라고 했다. 또 향후 피의자 등이 파일명과 파일 내용을 조작해 압수수색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들었다. 은어나 암호, 고의적 오탈자 등을 사용했을 때는 검색어를 사전에 특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규칙? 법률?

압수수색영장 대면심리제도의 근거를 어디에 둘지를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입법예고한 대로 형사소송규칙에 넣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헌법에 따라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법률에 근거해야 하는데 대면심리제도는 사건 관계인 등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형사소송법에 근거를 둬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검찰 측은 사건 관계인 등에게 구속력을 가지는 압수수색영장 심문 권한을 규칙 개정을 통해 신설한다면 법률의 근거나 위임이 없어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김정현 전북대 일반사회교육과(헌법) 교수도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는 방법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 교수는 “대면심리 범위의 불명확성, 재벌 및 정치인 등에게 유리한 방식의 개편 등 비판적인 입장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입법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통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에 근거 조항을 두되, 형사소송규칙에 대면심리의 범위 및 절차를 싣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안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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