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와 실리콘밸리의 이데올로기 쟁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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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영어 약자가 노트북 화면에 비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공지능의 영어 약자가 노트북 화면에 비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실리콘밸리는 이념의 쟁투장이다. 시장경제의 규율과 히피적 자유주의가 오묘하게 배합되면서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가 탄생한 이래 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이념화하려는 집착을 버린 적이 없다. 이들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는 ‘기술결정론’에 기초한다. 기술이 개인들에게 힘을 부여하고, 기술이 개인들의 자유를 고양하며, 기술이 국가 권력을 근본적으로 축소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는다. 이들에게 기술 개발과 자유를 제약하는 모든 요소는 ‘적’으로 규정된다. 이 과정에서 서서히 우경화하는 흐름도 감지된다,

2000년대 들어 이들의 이념 투쟁은 더 격렬해졌다. 자본주의와 자유지상주의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분화도 본격화하고 있다. 한쪽에선 가속주의가 페달을 밟고 있고 다른 쪽에선 효율적 이타주의가 세 과시를 하고 있다. 로저 젤라즈니의 1967년 SF소설 <신들의 사회>(Lord of Light)에서 움튼 가속주의는 “가장 공격적이고 글로벌한 자본주의가 인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념이다. ‘지속가능성’, ‘ESG’, ‘사회적 책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신뢰와 안전’, ‘기술 윤리’, ‘위험 관리’ 등을 적으로 규정한다. 기술 개발을 늦추는 “좀비적 사고”라는 이유에서다.

가속주의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인 마크 앤드리슨은 이 이념을 더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인물이다. 앤드리슨호르비츠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그는 지난 10월 공개한 ‘기술낙관주의 선언문’에서 “우리의 적은 조지 오웰의 <1984>를 지침서로 삼아 언어 통제와 사고 통제를 일삼는 사람들”이라며 기술에 의한 감시 우려를 ‘좀비 사상’으로 깎아내렸다. 기술의 위험을 경계하기 위한 사전예방원칙도 “지극히 부도덕하다”며 버려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다. 윤리적 기술 개발 또한 가속화를 가로막는 ‘적’으로 규정했다. 범용인공지능(AGI) 개발을 막는 모든 장애를 걷어내야 한다는 신념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효율적 이타주의는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의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가속주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철학이자 지적 프로젝트다. “세상을 개선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이성과 실증을 통해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실천강령으로 자신들이 벌어들인 소득의 10% 이상을 가장 비용 효율적인 단체 등에 기부한다. 이렇게 모인 막대한 기금이 실리콘밸리의 Y콤비네이터 같은 벤처캐피털이나 기술 스타트업으로 흘러들어간다. 가속주의에 비해 공동체 지향적이면서 공동의 선을 옹호하는 특징을 보이기는 한다. 일론 머스크, 피터 틸 등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그룹에 포함된 샘 뱅크먼 프리드처럼 암호화폐 사기 사건에 연루되거나, 위험한 인공지능 개발을 방치하는 등 위선적이라는 뒷말도 끊이지 않는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 사태는 가속주의와 이를 견제하려는 효율적 이타주의 간의 암투가 드러난 사례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속주의가 우위를 점해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사태는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는 철학과 이념이 더욱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기술 숭배로 흘러갈 것을 암시한다. 부와 권력을 거머쥔 가속주의자들로부터 ‘인공지능 개발’의 속도를 통제하기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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