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경제 안목과 아이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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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투자라 투기는 투기라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일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투자는 투자라 투기는 투기라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일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글에서 주식 투자도 시세 차익을 얻는 측면에선 투기라는 말은 확실히 지나친 데가 있다. 다만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달라질 순 있다. 오늘 일반적 경제 의식이나 정서를 기준으로 지나친 말이지만, 경제 교육이 기준이라면 그렇지 않다. 아이는 제대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는 투자라 투기는 투기라 가르쳐야 한다.

아이에게 주식 투자에 관한 부정적 의식을 심어주자는 말은 아니다. 그의 경제 의식은 그의 것이며, 주식 투자도 그가 판단하고 선택할 일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가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제 판단과 선택에 책임지는 성숙한 인간이 되고, 우리는 그의 판단과 선택이 무엇이든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걸 ‘교육’이라고 부른다.

모든 일이 그렇듯, 경제적 안목은 ‘경제란 무엇인가’라는 첫 질문으로 시작한다. 사전은 ‘경제’를 이렇게 적고 있다.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활동.”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는 ‘경제의 기본 문제’를 이렇게 말한다. 1)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 2)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3)누구에게 분배할 것인가? 세상일이 사전이나 교과서대로만 돌아가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의 경제 의식이 그 본디 의미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거나 축소돼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경제의 기본 문제가 생산과 분배인 이유는 뭘까. 만일 재화와 용역이 사회 성원의 생활에 필요에 턱없이 부족하게 생산된다면, 혹은 어떤 재화는 지나치게 많이 또 다른 어떤 재화는 지나치게 적게 생산된다면, 생산은 충분히 됐더라도 소수가 독차지하거나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사회 성원은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고, 사회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 제각각 자급자족하며 생활하지 않고 굳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보다 일을 나눠 생산하고, 그걸 사회적으로 분배하는 게 자급자족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는 노예제 사회니 봉건제 사회니 자본주의 사회니 사회주의 사회니 여러 사회 체제가 존재했는데, 그런 구분은 바로 경제의 기본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방식을 뼈대로 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경제적 안목의 기초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경제의 기본 문제를 해결하는 자본주의적 방식’이라 보는 것이다.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기후위기, 장기화한 경제 침체, 깊어지는 양극화, 사라지는 일자리…. 진지한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회피할 수 없게 하는 건 아이들은 이 모든 상황에 아무런 책임이 없지만, 그 속에서 온전히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세상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하고, 그중에서도 경제적 안목이 중요하다. 자신이 살아가는 경제 체제를 역사 속에 존재한(존재할) 여러 체제의 하나로 객관화해 보도록 돕는 건, 비로소 현재 체제를 정확하게 보도록 돕는 일이다.

현시점에서 가장 무책임하고 해로운 경제 교육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무작정 미화하고 절대화하는 교육, 기업들이 독점화하고 국가가 시장의 감독 노릇을 하게 된 지 100여 년인데도 여전히 19세기 자본주의가 지속하는 양 ‘보이지 않는 손’ 따위 주문이나 외우는 경제 교육일 것이다.

<김규항 ‘고래가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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