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지자 그리는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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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한다]갈지자 그리는 환경부

지난 11월 7일 일회용품 정책이 또 뒤집혔다. 환경부는 과태료 부과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던 종이컵 매장 내 사용 금지와 플라스틱 빨대 금지 등의 규제를 소상공인과 시민들의 불편을 핑계로 사실상 철회했다. 정착돼 가던 비닐봉지 사용 단속도 중단했다. 5년 전인 2018년 수립한 일회용품 규제 정책이 현실성이 떨어졌다고 스스로 반성하는가 하면, 소상공인도 활짝 웃는 일회용품 정책을 모색하겠다며 소상공인들을 위로했다.

작년에도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한 거듭된 유예가 있었다. 이미 당초 계획된 시행일에서 6개월을 유예하더니, 지역 규모를 전국 단위에서 세종 및 제주로 축소했다. 전국 확대 논의는 쏙 들어갔다. 보다 못해, 감사원이 이를 지적했다. 감사원은 환경부가 제도를 현장에서 시행하는 데 필요한 고시를 제때 마련하지 않아 사업자들이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조속히 고시를 마련하고, 일회용컵 보증금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수립하라고 환경부에 통보했다. 이를 수용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준비하겠다던 환경부가 한 달 뒤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여부를 지자체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거듭 반복되고 있는 일회용품 규제 정책은 2018년 수립됐다. 당시 전 세계의 쓰레기 처리장 역할을 하던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금지함에 따라 쓰레기 대란이 큰 문제로 대두됐다. 이에 환경부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하에 획기적인 감축을 위해 일회용품 규제 등 정책을 수립하게 됐다. 온실가스와 폐기물을 동시에 감축하기 위한 일회용품 규제 정책은 전 세계적 흐름이다. 최근에는 국가별로 플라스틱 생산량을 감축하자는 취지의 ‘국제 플라스틱 협약’ 도 논의 중이다.

각 부처는 맡은 본분을 다해야 한다. 환경부는 환경보전에 관한 사무를 하는 부처인데, 최근 소상공인 보호를 핑계로 기존에 수립하고 준비한 정책을 계속 후퇴시키고 있다. 본분 태만을 넘어, 오히려 시장을 위해하고 있다. 정책 신호에 따라 종이 빨대를 생산 및 판매하는 업체나 다회용기 수거업 등을 하려고 창업한 소상공인들은 하루아침에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 정부는 이해관계자와 충분히 소통하면서 정책을 조율하되, 조율된 정책을 추진할 때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혼선이 없다. 기후와 관련해 가장 공신력 있는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도 이 점을 강조한다. 정부와 국제사회의 신뢰할 만한 강한 기후정책 신호가 재무 의사결정권자의 투자 불확실성과 전환 위험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후정책에 있어 신뢰할 만한 시스템, 정책, 법규를 갖추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모든 정책에 통용되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그러나 정체성을 잃고 대부분의 정책에서 갈지자를 그리고 있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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