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식 ‘3분 진료’ 막을 공적인 의료체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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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저자 김현아 교수가 본 의대 증원의 조건

11월 29일 김현아 한림대성심병원 교수가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11월 29일 김현아 한림대성심병원 교수가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김현아 지음·돌베개)는 철저히 자본의 논리로 운영되는 병원의 속살을 담은 책이다. 진료의 암묵적인 기준은 ‘진료는 짧게, 검사는 많이’다.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다. 병원은 은근슬쩍 접수 마감시간을 연장해 환자를 밀어넣는다. 교수가 환자가 너무 많아 연구와 교육 역량에 문제가 된다고 호소해도 그저 ‘진료를 더 보라’는 메시지만 되풀이한다. 정부나 정치인들은 ‘의료 공공성’에 대해 쉽게 말하지만, ‘실행 의지’를 뒷받침하는 재정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다. 실상은 공공병원마저 시장의 논리를 따른다. 책은 “지금도 서울 시내에 공공병원을 설립하려 하면 관료들에게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그 비싼 땅에 웬 병원?’이다”라고 지적한다. 그 결과 공공병원은 시민들이 대중교통으로 쉽게 찾아가기 어려운, 접근성이 떨어지는 변두리로 밀려났다. 지난 11월 29일 경향신문사에서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의 저자 김현아 한림대성심병원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비즈니스’로만 간주되는 현재 의료 현장에 대한 철저한 논의 없이 진행되는 증원 논의가 “의사들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현재 병원에서 불필요한 검사가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왜 그런가.

“의사의 진찰이 의료의 핵심이다. 진단부터 치료까지 모든 것이 결정된다. 여기에는 환자가 치료 방식을 안 받아들일 경우, 이유가 무엇이며 차선책은 또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도 포함된다. 의사가 환자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면하고 진단과 치료 결정 등을 대화를 통해 설명하는 프로세스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3분 진료’로 악명이 높다. 3분으로는 이 과정을 진행할 수가 없다. 이렇게 진찰시간이 짧아진 이유는 현행 수가체계에서 의료인력 인건비 대 검사비의 보상 수준이 비정상적이고 불균형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진찰료가 얼마나 낮은지 최저임금 대비 조사해본 적이 있다. OECD 유럽 국가들의 기본 진찰료는 최저임금의 4배 정도다. 우리나라 일반의 기준 기본 진찰료는 1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OECD 국가보다 확실히 적다. 다만 이를 진료시간에 대입해보면 비슷해진다. 유럽 국가들은 환자당 평균 15분 진찰하는데 우리나라는 4분의 1 수준이다. 짧은 진료에는 낮은 진찰료가 반영돼 있는 셈이다. 결국 부족한 진료 시간을 땜질하는 것은 검사들이다. 검사비는 상대적으로 보상이 잘된다. 자기공명영상(MRI)의 경우 유럽이나 미국이 진찰료의 5~6배 수준인데, 우리는 27배에 달한다. 우리나라 진찰료 대비 뇌 컴퓨터 단층 촬영(CT)검사 수가는 8.6배다. 미국의 경우 2.1배, 프랑스는 5.8배, 캐나다는 3.9배다. 우리나라의 CT 촬영 건수가 인구 대비 OECD 최고 수준인 이유다. 그 결과 불필요한 검사로 인한 의료 재원의 낭비는 천문학적 수준인데, 아직까지 정책적으로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 그나마 MRI 같은 고가 검사는 경제적 부담이 바로 체감되기 때문에 쉽게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건당 수가가 그다지 높지 않은 검사실 검사들은 가랑비에 옷이 다 젖듯, 보일 듯 말 듯 의료재정을 좀먹는다.”

‘3분 진료’에는 낮은 진찰료가 반영돼 있는 셈이다. 결국 부족한 진료시간을 땜질하는 것은 검사들이다. 지금 병원은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가고, 환자 수로만 모든 게 평가되는 시스템이다.

-병원은 의사들에게 ‘진료는 짧게, 검사는 많이 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한다고 했다.

“병원들이 성과급으로 교수들을 줄 세우는 관행은 이미 오래됐다. 진찰료가 낮다 보니 당연히 고가의 비급여 검사를 많이 해야 실적이 좋아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교수들 명단을 놓고 누가 MRI 처방을 많이 내는지 따지는 병원들도 있다. 돈 안 되는 행위 대신 돈 되는 행위를 우대하는 것이다. 이런 보상체계가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앞으로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진료해 환자를 보겠다고 하면 오히려 실적에 도움이 안 된다. 같은 시간 누군가는 100명의 환자를 보고 누군가는 50명의 환자를 봤다고 하면 100명 보는 사람에게 훨씬 많은 성과급이 돌아간다. 이렇게 환자를 보면 사실 정말 힘든데 과연 그걸 잘했다고 봐야 하는 건지 생각해볼 문제다. 지금 병원은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간다. 환자 수로만 모든 걸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병원의료질 평가를 하는데, 심평원의 평가기준도 결국 이 컨베이어벨트를 얼마나 잘 돌리느냐밖에 안 된다. 환자를 어떻게 진찰하고 이것이 환자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측정하기는 어렵다. 나는 심평원에 ‘의료질평가’를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의료진이 하루에 환자를 몇 명 보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환자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 발생하는 ‘3분 진료’로는 진료 본연의 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표지 /돌베개 제공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표지 /돌베개 제공

-보건복지부도 문제점을 인식했는지 ‘초진환자 15분 심층진료’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2017년에 시작했고, 현재 나도 하고 있다. 대학병원에서 신규환자를 볼 때 15분씩 볼 수 있게 했고, 진찰료를 4배 정도 높게 책정했다. 환자부담금은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6년째 시범사업이라는 건 정부가 할 의지가 없다는 거다. 게다가 심평원은 심층진료를 한 환자가 만약 경증이면 의사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대학병원에는 1차·2차 의료기관에 가야 할 경증 환자도 많이 온다. 하지만 환자를 보지도 않고 경증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나. 실제로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지만, 병원 측은 심층진료에 경증환자가 많으면 의사에게 지침을 따라 달라고 요청한다. 사실상 심층진료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신규환자뿐만 아니라 재진환자도 적어도 15분은 진료를 봐야 한다. 그래야 환자들에게 만성질환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고, 환자들도 관리가 되면서 병원도 덜 찾게 된다. 3분 진료로는 환자가 불편함을 호소하면 왜 그런지 고민하기보다 약 처방이 먼저 나갈 수밖에 없다.”

-책은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병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현대, 삼성 양대 재벌이 초대형 병원을 건립하고 병원 바닥을 대리석으로 장식한 이후 모든 병원은 이런 외형을 따라가야 했다. 어느 병원에서 번쩍거리는 기계를 들여오면 질세라 같은 기계를 들여와야 했고, 기계를 들여오면 당장 기곗값과 감가상각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기계를 돌려야 했다’와 같은….

“우리나라 의료의 가장 큰 모순은 교육과 똑같다. 의료와 교육, 모두 공공재지만 둘 다 민간시장에 완전히 내팽개쳐진 상태다. 사교육 시장에 맡긴 결과 공교육이 무너지지 않았나. 국가는 필수의료 수가를 낮게 유지하면서 국가가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사이 민간자본이 만든 병원은 사기업이니까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병원들의 영리 추구는 직원들에 대한 착취로 이어지기도 한다. 낮은 필수의료수가는 이럴 때 경영자에게 전가의 보도로 이용된다. ‘이 정도의 일을 하지 않으면, 이 정도 숫자의 환자를 안 보면 병원이 망한다.’ 의사들은 이런 말을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듣고 산다. 의료현장은 국민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의료와는 점점 거리가 먼 쪽으로 가게 됐다. 로봇수술이 많이 늘어나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복강경 수술의 수가는 2006년도에 23만9000원으로 책정돼 11년간 동결상태였다. 사실 수술장에 들어오는 의료인력의 인건비도 안 되는 수준이다. 로봇수술은 그보다 10배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고, 초기에는 실손보험으로 모두 커버가 됐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서 선호하게 됐다. 의사 중에는 로봇수술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병원에서 기계를 사서 돌리게 되면 압력에 저항하지 못하게 된다.”

-그동안 정치가 의료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국민이 의료에 대한 불만 사항은 많지만,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거나 너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이 아무 말이나 한다. 사실 의료정책이 정치인들이 생색내기에는 좋다. 예컨대 공공의대 설립은 자기 지역의 이권이 달린 문제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재정이나 운영계획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민주당에서 발의한 ‘공공의대법’에는 공공의대를 법인의 형태로 설립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일단 만들기만 하고 국가가 운영에 대해서는 손을 놓겠다는 의지가 여실히 보이는 대목이다. 재정지원도 임의조항으로만 돼 있다. 게다가 지금 공공의료원인 성남의료원도 민간위탁한다고 하지 않나. 의료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의료를 비즈니스라고만 생각하고 운영이 안 되면 직원들의 문제, 개인의 문제라고 떠넘긴다면 진전이 없다.”

-현재 정부는 의대 증원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문제는 의사들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불신은 비용을 유발한다. 큰 병원의 검사 위주로 의료가 돌아가는 것도 불신 때문이다. 의사를 못 믿으니까 일단 큰 병원은 조금 낫겠지라고 생각해 쏠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의료비가 급증하는 것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불신 비용이 크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프레임은 의사들이 가뜩이나 돈을 잘 버는데 밥그릇이 작아질까봐 이기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의사들 욕먹기 딱 좋은 불신을 조장하는 프레임이다. 개원의들은 사실상 다 자영업자다. 대한의사협회는 거의 개원의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곳이다. 개원의들은 당연히 의사가 늘어나면 경쟁이 심해지니 싫다고 할 수밖에 없다. 종합병원 봉직의도 지금 증원 논의가 편하지는 않다. 병원 자본이 더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을 조금 더 싼값에 부릴 수 있고, 힘도 세질 수밖에 없다. 만약에 공적인 의료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의사들도 성과급 같은 것 신경 안 쓰고 소신대로 진료를 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환자가 너무 많으니 의사 수를 늘려달라는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라는 공공영역을 어떻게 잘 키울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만 늘린다고 하면 의사들은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국민은 의사를 더 불신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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