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세상에 비밀은 없다 “미다스 왕 귀는 당나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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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의 판결’(17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벨기에 릴 미술관 소장)

‘미다스의 판결’(17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벨기에 릴 미술관 소장)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원하지 않아 가슴 깊은 곳에 숨기고 싶어한다. 그런데 자신만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약점은 주변 사람이 다 알고 있다. 단지 알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약점을 공개할 때까지 참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숨기고 싶은 약점을 엉뚱한 곳에서 들킨 왕이 미다스다. 미다스가 손으로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했다. 먹지도 못하는 황금 때문에 엄청난 고초를 겪은 그는 자연을 가까이하며 살았다.

어느 날 숲속을 거닐던 미다스 왕이 트몰로스산까지 갔다. 그곳에서 반인반양의 목신 판의 팬파이프와 아폴론의 리라 연주 시합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을 의심치 않았던 판은 아폴론에게 도전장을 내었고, 심판은 트몰로스 산신이 보기로 했다.

먼저 판의 아름다운 연주가 시작됐고, 뒤이어 아폴론의 리라가 연주됐다. 연주가 끝나자 심판인 트몰로스 신이 아폴론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자 누구도 의견을 묻지 않았음에도 미다스 왕이 나서서 아폴론보다 판의 연주가 더 훌륭했다고 생각한다고 판결에 이의를 제기했다.

심기가 불편한 아폴론 신이 미다스 왕에게 다가가 양손으로 두 귀를 잡아당겨 당나귀 귀처럼 기다랗게 만들어 버렸다. 음악의 신의 실력이 판보다 못하다고 평가한 자에게는 인간의 귀가 아닌 동물의 귀가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다스 왕은 당나귀 귀가 늘 부끄러워 감추려고 왕관으로 쓰고 다녔지만, 이발사에게만은 비밀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는 이발사에게 비밀을 발설하는 순간 엄한 벌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발사는 미다스 왕의 비밀을 말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어 결국 산속으로 들어가 구덩이를 파고 비밀을 발설한 다음 흙으로 덮었다. 이어 계절이 바뀌자 바람이 불어 갈대가 흔들릴 때마다 “우리 미다스 왕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쳤다.

아폴론에 의해 미다스 왕이 당나귀 귀로 변한 작품이 니콜라 미냐르(1606~1668)의 ‘미다스의 판결’이다.

화면 왼쪽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있는 아폴론은 리라는 옆구리에 끼고 중앙에 왕관을 쓰고 있는 미다스를 가리키고 있다. 미다스 왕은 반인반양의 모습을 한 판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미다스 왕의 왕관 위로 솟아오른 귀는 아폴론의 저주를 받아 당나귀 귀로 바뀌었다는 것을 나타내며 손이 판을 향해 있는 것은 자신은 판의 연주가 더 좋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냐르의 이 작품에서 아폴론과 판이 악기를 들고 있는 모습은 음악 경연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며 몸이 흰색인 이유는 그가 경연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나의 약점이 곧 다른 사람의 무기가 되는 세상이다.

<박희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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