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R&D 예산 GDP 4%까지 확대…파괴적 혁신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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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이넨 핀란드 교육부 차관·에롤라 연구위원회장 인터뷰

핀란드는 전자·통신 등 첨단산업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좋은 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09년 GDP의 3.73%에 달하던 R&D 지출은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감소해 2019년 2.8%로 줄었다. 2013년 노키아의 몰락이라는 위기도 있었다. 부침을 겪고 다시금 혁신국가 대열에 오른 핀란드는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R&D 지출을 늘리고 있다. 2021년 12월 R&D 지출 비중을 2030년까지 GDP의 4%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힌 후 예산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국가 R&D 예산을 2023년 24억유로(약 3조3600억원)에서 2030년 43억유로 늘리는 연구개발 자금에 관한 법안은 올해 초 발효됐다.

지난 10월 31일 핀란드가 연구개발 지출을 늘리기로 한 배경을 방한한 아니타 레이코이넨 핀란드 교육문화부 차관과 파올라 에롤라 핀란드 연구위원회 회장을 만나 들었다. 레이코이넨 차관은 핀란드대학 개혁 과제를 추진 중이며, 동시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유럽의 고등교육·연구 분야 업무를 맡아왔다. 에롤라 회장은 헬싱키대학의 입자물리학 교수이자 핀란드 고등과학 분야 연구비 지원을 담당하는 기관인 연구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아니타 레이코이넨 핀란드 교육문화부 차관이 지난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디지털휴매니티센터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아니타 레이코이넨 핀란드 교육문화부 차관이 지난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디지털휴매니티센터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핀란드 교육·과학 분야에서 최근 성과는.

레이코이넨 “핀란드는 초등부터 고등 교육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선두 위치에 있다. 핀란드 교육 정책은 기본적으로 동등과 공평 두 가지를 기반으로 한다. 아동교육에서부터 초등·중등 교육에 이르기까지 이를 바탕에 깔고 있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중등 교육과정을 마치면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 직업 교육을 택하든,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하든 스스로 진로를 결정한다.”

에롤라 “과학의 경우 거의 모든 연구 분야에서 전 세계 평균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 무선통신, 컴퓨터 사이언스 같은 핵심 기술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 혹은 최고 수준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다.”

-R&D 예산을 증액하려는 이유는.

레이코이넨 “내년부터 연구개발과 혁신에 투입하는 재정을 늘리기로 했다. 장기적인 과정의 일부로 현재 의회에 예산 관련 실무 그룹이 있다. 9개 정당이 소속돼 있는데 모두 핀란드의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R&D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핀란드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해서 느리게 회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 정책을 의회에서 만들 때 2030년까지 최소한 GDP의 4%를 할당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의대 쏠림 현상이 핀란드에서도 있는지.

레이코이넨 “의약 분야 같은 경우 임금이 높고 안정적이라 여학생들이 쏠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남녀가 동등하게, 균형 있게 참여하길 원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위기라고 보지도 않는다. 여학생이 이 분야를 선호하는 건 일종의 현상이다. 그대로 두지는 않고 기술과 과학 분야에 더 많은 학생이 관심을 갖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에롤라 “우리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의 영문 첫 글자의 조합)의 중간에 A(예술·ART)를 넣어서 스팀(STEAM)이라고 부른다. 과학·기술·엔지니어링의 발전에는 창의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학생이 기초과학·이공계 쪽에 오도록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여학생들만의 STEAM 관련 모임을 만들도록 돕는 식으로 독려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파울라 에롤라 핀란드 연구위원회 의장이 지난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디지털휴매니티센터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파울라 에롤라 핀란드 연구위원회 의장이 지난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디지털휴매니티센터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R&D 투자를 위한 법안도 마련했다.

레이코이넨 “GDP의 4% 중 3분의 1은 공적 세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민간기업에서 제공한다. 산업계와 의회가 동의하는 부분은 기초연구 분야와 혁신연구 분야의 균형을 잘 맞춰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기초연구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혁신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이 둘 사이의 균형이 굉장히 중요하다. 둘 사이 균형에서 고등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 기초연구나 혁신을 이끄는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에롤라 “국가 R&D 계획의 핵심은 기초연구를 통해 파괴적인 혁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파괴적인 혁신이 있어야 민간 분야에서 생산성을 계속 개선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인재를 만드는 게 과학의 역할이다. 특히 단순히 핀란드 인재만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의 인재들도 핀란드 안으로 끌어들여 이들이 과학 발전과 혁신에 기여하도록 하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R&D 예산을 배정하나.

에롤라 “연구회는 매년 약 5억유로 예산을 경쟁 지원 제도를 통해 지원한다. 지원자의 15% 정도가 선정을 받는데 전체적으로 80%가 고등교육기관에 속한 연구기관이나 연구자에게 돌아간다. 나머지 20%는 대학을 비롯한 다른 연구기관에 가는 데 응용 분야가 지원을 받기도 한다. 지원자가 핀란드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연구하고자 하는 연구소나 대학은 핀란드 안에 있어야 한다. 실제 작년만 하더라도 우리가 지원한 금액의 50% 정도가 핀란드 국적이 아닌 하지만 핀란드대학이나 기관에 속한 연구자들에게 지급됐다.”

레이코이넨 “교육 연구지표를 활용해 각각의 대학에 어느 정도의 지원을 할지 결정하고, 연구자 개인이 아닌 해당 대학에 블록 형태로 지원한다. 연구위원회가 주는 5억유로의 경우 교육부의 관할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정말 능력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에 한해 지원한다.”

-연구개발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은.

에롤라 “현재의 국제적 흐름은 ‘책임 있는 연구혁신(responsible research and innovation)’이라는 평가방법이다. 관련한 국제 연합체도 있다.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연구를 했는지를 중점에 두고 평가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고, 우리도 이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평가할 때 중점에 두는 것은 수치나 정량적인 평가가 아니다. 연구한 내용에 중심을 두기 때문에 정량적인 지표를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재 핀란드에서 연구성과를 평가할 때 평가지표로 논문 게재 수를 쓰는 것은 금지됐다. 연구제안서를 쓸 때 연구자의 이력서에 논문을 몇 건 썼다가 아니라 본인이 연구한 내용을 상세하게 적는 방식으로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연구자의 자율성이 중요한 이유는.

에롤라 “교육부는 교육지표와 연구지표를 바탕으로 해서 블록으로 금액을 할당한다. 대학이 원한다면 하나의 분야나 혹은 10개 분야에 얼마든지 재량권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금액을 할당해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연구 분야는 균형 잡힌 연구가 이뤄지도록 최소한의 쿼터를 두고 있긴 하지만, 연구자의 재량권이나 자율권을 부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10년 후 어떤 분야가 더 유망할지 현재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자율성은 더 중요하게 보장해야 한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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