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에 흔들리는 공매도 금지…‘바보야, 문제는 불공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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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8개월간 시행에 유동성공급자 등 예외

“기관·외인 전유물 만드는 담보비율 등 바꿔야”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1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금융위원회를 마친 뒤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1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금융위원회를 마친 뒤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남의 주식을 빌려서 우선 판 뒤, 주가가 하락하면 싼값에 다시 매수해 갚는다. 기대 수익은 주가가 하락한 만큼 얻는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는 이 방법이 선진 금융기법의 하나라고 소개되는 ‘공매도’다. 개별 기업의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믿는 투자와는 정확히 반대 입장이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를 활용하는 절대다수는 기관, 외국인 투자자다. 반대로 개인투자자의 절대다수는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믿고 투자하는 쪽에 있다.

이러한 공매도의 원리, 이용하는 집단의 차이는 주기적으로 논란을 만든다. 주가지수가 가파르게 하락하는 경우 불만이 터져 나오는 식이다.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과도하게 키운다고 주장한다. 회사에 별다른 악재가 없어도 대량의 공매도를 통해 주가를 횡보하게 하거나 하락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 2023년 이전, 한국에서는 모두 세 번의 공매도 금지 조치가 있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위기 때다. 당시 주가지수가 폭락하자 금융당국은 공매도를 서둘러 금지했다. 공매도와 주가 하락의 인과관계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상관관계는 있다는 방증이다.

공매도는 주식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고 유지됐다. 주가가 폭락했다가 제자리를 찾으면 관련 논의도 자연스레 흩어지는 식이었다. 주가 폭락→공매도에 대한 불만 제기→공매도 금지→주가 안정의 악순환만 거듭했다. 하지만 지난 11월 5일 마침내 연결고리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금융당국이 상장 종목 전체에 대해 2024년 6월 말까지 약 8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공매도 금지’를 결정했다. 지난 세 차례 때와는 분명히 다른 상황에서 결정된 네 번째 공매도 금지 조치였다.

공매도 금지 당위성에 대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무력분쟁 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욱 커지는 가운데 해외 주요국 대비 국내 증시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는 등 시장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며 “이러한 시장 불안 속에서 글로벌 IB(투자은행)의 대규모 불법 무차입 공매도 사례가 적발되며 공정한 가격형성을 저해하고 시장 신뢰를 저하하는 상황인 만큼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지금이 공매도를 금지했던 지난 세 차례처럼 세계적 금융위기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객관적 지표를 놓고 보면, 한국 주식시장이 하락 국면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난 8월, 2600포인트가 넘었던 코스피지수는 9~10월 두 달여 동안 2273포인트까지 내렸다. 900포인트를 넘었던 코스닥지수도 734포인트까지 밀렸다. 고점 대비 하락폭으로 계산하면 코스피는 15%, 코스닥은 20% 정도 하락이다. 공매도 금지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이는 ‘폭락’이 아닌 ‘단순 조정’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코로나19 발생 당시인 2020년 3월을 기준으로 직전 3개월 동안 지수 변동폭을 보면 코스피는 고점 대비 35%, 코스닥은 40% 각각 폭락했다.

지난 11월 6일 공매도 전면 금지가 시행된 가운데 코스피가 전장보다 5.66% 급등해 2502로 올라섰다. 코스닥지수 역시 전장보다 7.34% 폭등한 839.45로 장을 마쳤다./연합뉴스

지난 11월 6일 공매도 전면 금지가 시행된 가운데 코스피가 전장보다 5.66% 급등해 2502로 올라섰다. 코스닥지수 역시 전장보다 7.34% 폭등한 839.45로 장을 마쳤다./연합뉴스

문제는 한국 주식시장에는 주가지수가 어느 정도 하락하면 폭락으로 봐야 하는지, 언제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관한 합의가 없다는 점이다. 보기에 따라 15% 하락이 과도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공매도 금지에 관한 부정적 전망이 쏟아졌다. 장기적으로 주가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거나 외국 자본이 주식시장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공매도 금지 이후의 주가 변동성을 부각시켜 “공매도를 금지했지만 주가지수는 별로 안 올랐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어느새 ‘왜 공매도를 금지해야 하느냐’는 본질적 고민은 자취를 감췄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공매도가 특정 집단에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사실만 두드러졌다.

왜 공매도를 금지했나

효과는 확실한 것처럼 보였다. 지난 11월 5일 공매도 금지 발표 직후 네이버 주식 토론방은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공매도 금지로 주가가 폭등할 것’이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실제로 장이 열리자 환호성이 나왔다. 이날 하루 동안 코스피지수(종가 기준)는 ‘전장(직전 증시거래일인 11월 3일)’ 대비 5.66% 오른 2502.37로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는 더욱 치솟았다. 전장 대비 7.34% 오른 839.45로 마감했다. 특히 이날 코스닥 시가총액 1·2위인 에코프로비엠·에코프로는 모두 상한가(30%)를 기록했다. 이른바 ‘박스피’라고 불리며 횡보하던 주가지수가 전환점을 맞는 것처럼 보였다. 공매도 금지 효과가 확실히 나타났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분위기는 고작 하루 만에 뒤집혔다. 코스피는 한 달여 만에 간신히 회복한 2500포인트를 곧바로 내주고 2.33% 하락했다. 코스닥 역시 1.80% 하락 마감했다. 특히 전날 폭등했던 2차 전지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며 변동성 장세가 나타났다. ‘공매도 금지는 1일 천하’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전날 상승분을 감안하면 공매도 금지 이후 주가지수는 여전히 상승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주식시장에는 ‘공매도 금지로 외국인 자본이 모두 빠져나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반등했던 주가가 폭락하자 다시 불만도 터져 나왔다. 이는 다시 공매도를 향했다. 근거가 있었다. 금융당국이 발표한 공매도 중단 조치의 예외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일부 증권사로 구성된 시장조성자와 유동성공급자 등에 한해서는 차입 공매도를 허용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들의 역할은 거래 부진 종목에 대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헤지(위험회피) 거래를 통해 시장을 조성하는 일이다. 쉽게 말해, 매수와 매도 주문 호가가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경우 해당 종목은 거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이때 시장조성자가 개입해 매도와 매수 양방향으로 호가를 제시해 거래가 이뤄지도록 돕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시장조성자가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종목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차입을 통해서 공매도 주문을 낸다. 실제로 공매도가 중단된 지난 11월 6일부터 8일까지 3거래일 동안에도 이런 방식의 공매도는 여전히 진행됐다. 모두 기관이 낸 주문으로 코스피에서 1083억원, 코스닥에서는 2821억원 공매도가 이뤄졌다.

주가에 흔들리는 공매도 금지…‘바보야, 문제는 불공정이야’

문제는 거래량이 100만 주가 넘는 종목에 대해서도 공매도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공매도 금지 첫날이었던 지난 11월 6일, 공매도 최대 거래금액 1·2위가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였다. 이날 이들 종목 주식 거래량은 각각 396만 주, 115만 주였다. 100만 주가 넘는 거래량에 시장조성이나 유동성 공급이 왜 필요하냐는 불만이 쏟아졌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지난 11월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유동성공급, 시장조성 행위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들 종목에 대한 공매도는 시장조성자가 아닌 유동성공급자 쪽에서 나왔다. 거래소 관계자는 “현재 시장조성자의 공매도는 없다”며 “유동성공급자 쪽에서 나왔거나 이전에는 공매도 잔고가 10억원 미만으로 신고대상이 아니었던 물량이 주가 상승으로 10억원 이상이 되면서 공매도로 신고돼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 유동성공급자의 공매도는 이차전지 종목들로 구성된 ETF(상장지수펀드)에 대한 위험회피 성격의 공매도일 확률이 높다. 유동성공급자는 거래량이 적은 ETF에서 나온 매도 주문을 받아 매수하게 되는데 이때 가격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 ETF를 구성하는 기초자산 종목을 매도하는데 만약 보유 중인 기초자산이 없는 경우 차입 공매도가 불가피해진다. 이 논리대로라면 에코프로비엠·에코프로의 공매도는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성격이 된다.

어떤 이유로든 공매도가 여전히 발생 중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는 여전히 불만족스럽다. 주가지수가 오르면 공매도 금지로 인한 거품이 형성돼 문제, 내리면 공매도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문제라는 식이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인 상황은 정치 상황과 엮이며 정점을 찍었다.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을 의식해 ‘포퓰리즘’ 차원에서 공매도를 금지시켰다는 논리다. 이처럼 오직 가격 측면에서만 공매도 금지의 의의를 분석하면 본질과는 자꾸 멀어질 수밖에 없다. 애초에 왜 공매도를 개선하려 했느냐를 들여다봐야 한다.

공매도 제도 근본적 수술 가능할까

‘공매도’를 둘러싼 논란의 역사를 살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주장이다. 이는 공매도를 시행할 때 기관·외국인과 개인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지금까지 제기된 핵심사안은 두 가지다. 공매도를 시행할 때의 담보비율과 상환기한이다.

현행 제도에서 공매도를 합법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식을 대차해야 한다. 공매도의 기본 원리가 남에게 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을 빌릴 때는 담보가 필요하다. 이때 개인투자자에게 적용되는 담보비율은 120%다. 1억2000만원을 담보로 1억원어치의 주식을 빌려 공매도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마저도 지난해 140%였던 담보비율을 개선한 것이다. 반면 기관·외국인의 공매도 담보비율은 105%다. 한 차례 개선하면서도 키 맞추기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대차 상환기한에서 발생하는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일단 빌려서 판 주식은 반드시 매입해서 상환해야 한다. 한국에서 개인투자자의 상환 기한은 90일이다. 대차 계약을 갱신해서 연장할 수 있지만, 증권사마다 최대 갱신 가능 기한을 1년으로 두는 등 제한이 있다. 반면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상환기한은 1년이다. 이마저도 상호 협의하에 무제한 연장이 가능하다. 공매도를 하고 주식이 내릴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11월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와 회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11월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와 회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실행 조건이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정보 불균형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는 기관·외국인의 전유물이 된다. 우민철·김명애의 논문 <투자자 유형과 공매도 성과 간의 관계: 개인투자자의 공매도를 중심으로>(2023)는 개인투자자의 단독실행 공매도 거래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단독실행은 주가 상승률이 높았던 종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간에서 손실로 나타났다. 반면 기관·외국인 등의 공매도 단독실행은 과거에 주가가 상승한 종목일 뿐 아니라 다소 하락한 종목에서도 이익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관과 외국인이 개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정보력을 갖춘 상태에서 공매도를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공매도가 공정한 투자 기법이자 위험분산 기능을 한다면 기관·외국인만 공매도를 전유할 수 있는 상황은 그 자체로 불공정이 된다. 적어도 이들이 공매도 한 종목을 뒤늦게라도 따라갈 수 있도록 실행조건을 공정하게 둬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여당은 공매도 금지에 이어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의 공매도 상환기간을 개인투자자와 같이 90일로 제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개인과 기관·외국인 간의 공매도 담보비율 차이를 줄이는 안 역시 검토 중이라고 전해졌다. 궁극적으로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해 ‘한국형 공매도 규제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어렵게 내디딘 첫발, 단기 지수 변동에 흔들리지 않고 개혁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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