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보복’의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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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군 투입 인도주의 문제 명분, 아랍권 똘똘 뭉쳐

중국이 중재자 자처할 때 미 바이든은 재선 악영향

지난 11월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이 폐허로 변했다. / AP연합뉴스

지난 11월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이 폐허로 변했다. / A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10월 2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가자지구에서 시작한 지상 군사작전으로 전쟁이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며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말한 두 번째 단계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점령을 뜻한다. 진격을 시작한 이스라엘군은 10월 31일 가자 북부 자발리야에 있던 하마스 근거지를 장악하고 50여명의 적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11월 1일 기준 지상전으로 인해 이스라엘군 역시 11명이 전사했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으로 가자지구에서 시가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민간인 사살 가능성도 커지며 상황은 점차 인도주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국제사회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밝히면서도 이스라엘군이 초래할 인도주의 문제에는 선을 그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0월 31일 “지금은 일반적 의미의 휴전을 할 때가 아니다”면서도 “가자지구 내 주민들이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전투 중단은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아랍권은 인도주의 문제를 명분으로 ‘반이스라엘’ 깃발 아래 뭉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요르단, 바레인, 카타르,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이집트, 모로코 등 주요 아랍 9개국은 10월 26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습을 규탄했다. 27일에는 유엔 총회에서 요르단 주도로 아랍 22개국 명의의 휴전 촉구 결의안도 채택됐다. 구속력은 없지만 휴전 요구가 민간인 보호, 지원 등을 근거로 하는 만큼 정치적 무게감을 갖는다.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이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을 구분하며 직접 개입을 망설인 국가들까지 결집시킨 셈이다.

분쟁 장기화가 인도주의 문제를 낳고, 이를 명분으로 한 대립구도도 확대되는 모양세다. 단순히 이스라엘 대 하마스가 아닌 이스라엘 대 아랍, 미국 대 중동으로의 확장이다. 이미 전쟁에 다양한 국가의 시각, 이해가 투영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하마스와 그 배후로 지목받은 이란과 접촉하며 밀접한 관계임을 재확인했다. 중국 역시 중재자를 자처하며 구두 개입을 시작했다. 반면 미국은 ‘탈중동’ 구상이 실패로 돌아가며 판을 새롭게 짜야 할 상황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연결해 이란과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자신은 ‘역외균형자’ 역할을 하려던 미국의 구상이 사실상 일그러졌다. 이스라엘의 ‘보복’이 국제질서에 나비효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피해자 이스라엘의 가해행위

우려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진격을 시작하자 막대한 민간인 살상이 발생했다.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지역에서 벌어진 작전이 문제였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기바티 보병여단이 주도하는 보병들과 탱크부대가 자발리야 서쪽에 있던 하마스 군사조직의 근거지를 장악했다”며 “이 과정에서 50여명의 테러범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자지구 최대 난민촌이 공습을 받았다는 점이다. 지역 병원 관계자들의 발언 등을 인용한 로이터통신, 뉴욕타임스, AFP 보도 등을 종합하면 이날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사망한 인원이 최소 50여명에 달한다. 하마스는 별도로 “자발리야에서 400명이 사망하고 부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난민촌 공습으로 외국인 3명을 포함해 인질 7명이 사망했다고도 주장했다. 지상 작전이 인질 구출에 유리하리라는 이스라엘 측 주장을 무색게 하는 결과다.

지난 11월 1일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에 나선 이스라엘군(IDF)이 탱크 위에 서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1월 1일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에 나선 이스라엘군(IDF)이 탱크 위에 서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이 각종 우려에도 지상작전에 돌입한 이유는 전략적 확신 때문으로 보인다. 가자지구를 점령하려면 이른바 ‘가자 메트로(Metro)’라 불리는 가자지구 내 지하터널을 효과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터널은 마치 지하철처럼 면적 360㎢에 달하는 가자지구 지하에 뻗어 있는데, 총길이만 300마일(약 483㎞)이고 깊이도 지하 30~40m로 추정된다. 하마스는 지도부의 은신처, 지휘 사령부뿐만 아니라 각종 로켓 등의 무기, 식량 등을 비축하는 데 지하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제3차 가자전쟁’ 당시에도 땅굴에 발목이 잡혔던 이스라엘은 이번에는 종전의 ‘빠른 대규모 공습’ 대신 새로운 전략을 들고나왔다. 이른바 ‘고사 작전’이다.

이스라엘군의 전략은 하마스의 거점 지역을 포위하고, 정예 병력을 활용해 땅굴을 파괴하며 조금씩 전진하는 방식이다. 한 공간에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다. 문제는 적을 작은 부분으로 쪼개서 격파하는 살라미(salami) 방식이 민간인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해당 전략의 한계는 이스라엘군 관계자들 입에서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이스라엘 공군 총장 이얄 그린바움 준장은 영국 더타임스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땅굴 위에 민간 건물들이 지어져 있다고 말했다. 즉 땅굴 장악은 민간 건물에 대한 폭격과 지상군의 진격이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폭격과 시가전이 함께 벌어지면 민간인 목숨은 담보할 수 없다. 이를 실제로 입증한 것이 자발리야 공습이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문제는 하마스가 거기(민간 건물 아래)에 땅굴을 만들고 병력을 운용했다는 점”이라며 땅굴 공략 과정에서 주변 건물들이 무너져 민간인들이 사망한 것을 정당화했다. 결국 이스라엘군의 지상작전은 민간인을 계속해서 죽여 나가며 수행될 전망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전쟁 명분을 약하게 한다.

민간인 공습이 불러온 나비효과

이스라엘군이 밝힌 자발리야 공습의 주요 명분은 이브라힘 비아리 자발리야여단 지휘관의 사살이다. 그는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도운 인물이다. 하마스는 그러나 “우리 지휘관 중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뤄진 시간대에 자발리야에 있었던 이는 없다”며 “이스라엘군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정당화하려는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무엇을 위한 공습인가’는 불분명한 반면, 민간인이 다수 살상됐다는 결과만 분명히 나타났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는 다양한 파생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먼저 이스라엘을 향한 직접적 성토가 커지고 있다. 민간인 희생에 가장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은 아랍권이다. 특히 이번 사태 전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을 벌였던 사우디는 11월 1일 외무부 명의의 성명을 내고 “사우디 왕국은 가자지구 자발리야 난민촌에 대한 이스라엘 점령군의 비인도적인 표적 공격으로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이 사망하고 부상한 것을 가능한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며 “이스라엘 점령군은 민간인 밀집 지역을 계속 표적으로 삼고 국제법과 국제인도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르단 역시 “이번 폭격의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다”며 “모든 인간적·도덕적 가치와 국제 인도주의법에 어긋나는 공격을 요르단은 강력하게 거부하고 규탄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남미 국가들 역시 이스라엘 규탄에 나섰다. 볼리비아는 이스라엘과 단교를 선언했고, 칠레와 콜롬비아는 주이스라엘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지난 11월 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자발리야 난민촌 주택가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에 따른 사상자 수색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1월 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자발리야 난민촌 주택가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에 따른 사상자 수색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민간인 살상은 단순 비난을 넘어 국제사회의 리더십 경쟁에도 불을 붙였다. 분쟁이 격화되면 국제사회는 개입을 기대한다. 이러한 역할은 주로 지역 혹은 국제사회의 패권국들이 맡는다. 문제는 중동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의 중재자 역할을 미국이 아닌 중국이 자임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국은 올해 초 중동 지역 내 양대 국가인 사우디와 이란의 데탕트(화해)를 이끌어내며 영향력을 입증한 바 있다. 중국은 이란의 가장 큰 교역국이면서 이스라엘과도 경제, 기술 등에서 협력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모든 이해관계자와 대화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이 실제로 중재에 나설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동 지역의 안정은 중국의 원유 수급 측면에서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일대일로 정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중국이 굳이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아랍국가들과 불편한 상황을 만들며 중재를 할 이유도 없다. 이로 인해 중국은 선전 효과만 노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중국은 미국이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아랍권 양측 모두와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해 대내외적으로 영향력을 과시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평판 상승만 노릴 수 있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이제 실질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입장이다. 특히 인도주의적 문제가 커질수록 이스라엘을 지지한 미국의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반미로 돌아서는 중동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번 사태 초기부터 미국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이번 사태에서 최고의 딜레마 상황에 빠진 것은 미국이다”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중재하려다 실패했는데 뾰족한 수습방안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미국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짧은 시간 안에 하마스를 ‘궤멸시켰다’고 선언하고 빠져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민간인 사살은 내년 치러질 미국 대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스라엘 지지를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이 빠르게 아랍계 미국인의 지지를 잃고 있다. 아랍아메리칸연구소(AAI)가 아랍계 미국인 500명을 대상으로 10월 23~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17.4%만 바이든 지지 의사를 밝혔다. 2020년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아랍계 미국인의 지지율이 59%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 42%포인트나 급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폭력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대응’ 평가를 묻는 질문에도 전체 응답자의 67%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인도주의적 문제가 불거질수록 미국 내 이러한 추세는 더욱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 가자지구에서 불어온 바람이 국제질서를 변화시키는 태풍으로 덩치를 키워나가고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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