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부동산과 정치’ 출간한 김수현 전 실장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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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안녕하세요. 저는 정책연구를 하는 윤형중이라고 합니다. 최근 무척 반가운 책을 만났습니다. 바로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총 설계자로 불리는 당신께서 최근에 출간한 <부동산과 정치>입니다.

저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복기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부동산 정책과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한 분들이 회고록을 꼭 써야 한다는 얘기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곤 했습니다. 촛불 민심으로 집권하고, 집권당에 사상 최대의 국회 의석수를 몰아줄 만큼 국민이 기대를 걸고 힘도 실어줬던 문재인 정부가 왜 우리 사회의 중요 문제들을 다루는 정책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가를 처절하게 복기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의문을 다룬 여러 보고서와 논문, 저서 등이 적지 않지만, 당시 정책 컨트롤타워에 있던 핵심 책임자의 기록은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정책결정자들의 복기는 정확한 진단을 위한 재료입니다. 저는 모든 실패가 성공의 기반이 되진 않는다고 봅니다. 정확한 복기가 있어야 제대로 된 진단이 가능하고, 그래야 비로소 과거의 실패와 성과가 온전히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책이 반가웠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보다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은 당신께서 회고록을 내기가 참 어렵겠다는 예상을 하곤 있었으나,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복기하는 <부동산은 끝났다>(2011)를 펴낸 당신이기에 한편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부동산과 정치> 서문에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왜 좌절했는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것은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모두에게 비난을 받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먼저 말문을 열 필요가 있다. ‘반성’, ‘고백’, ‘성찰’ 그 어떤 표현을 써도 좋지만, 당시 깊게 관여하고 고민했던 사람의 생각을 밝혀두는 것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책을 읽으며 모든 내용에 공감하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도 적지 않고, 항변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고민을 자세히 적은,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정책 복기’의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주도한 홍장표 부경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수석), 장하성 고려대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께서도 회고록을 내주길 요청합니다.

임대주택 활성화 대책이 왜 나왔을까

당신의 표현을 빌리면 문재인 정부는 5년간 모두 28번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세간에는 그렇게 자주 대책을 발표했으면서 집값을 잡지 못하고 도대체 무얼 했느냐는 비판이 파다하지만, 과열된 시장을 진정시키는 노력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이해합니다. 2017년 8·2 대책과 12월의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 2018년 9·13 대책, 2019년 12·16 대책, 2020년 6·17 대책 등 굵직한 발표도 많았죠. 대책마다 나온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복잡해 부동산 정책은 점점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만의 영역이 됐고, 심지어 세무사들도 부동산 세금 이해를 포기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저는 국민이 정책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논의에 참여한 만큼, 다시 말해 정책이 국민 사이에서 숙의된 만큼 효과를 발휘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28번의 부동산 대책은 얼마나 친절했는가를 되묻게 됩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에 참여정부 때처럼 부동산 대책의 발표 일자가 정책의 제목이 됐는데요. 이젠 너무 많은 날짜 제목의 정책이 난무해 각 정책의 특징을 기억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박근혜 정부 시절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주도한 9·1 대책처럼 ‘빚내서 집 사라’는 명확한 제목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닐지요.

아무튼 부동산 대책이 복잡다단하고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결국 정책 수단은 세 가지 정도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세 가지는 대출 규제, 세금, 주택 공급입니다. 이 세 가지 분야의 세부 정책을 잘 조합해야 시장 상황에 대응할 수 있고, 장기적인 정책 방향도 일관되게 가져갈 수 있죠. 집권 초기인 2017년 8·2 대책을 통해 대출 규제를 강화해 집값 상승세를 차단했을 때만 해도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랑 다를 것이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해해보려 해도 2017년 12월에 발표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정책은 임대사업자들에게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취득세를 대폭 감면하거나 면제하면서 다주택자를 양산했습니다. 다주택자들의 주택 매수 수요도 자극했죠. 등록 임대주택의 숫자가 2017년 말 98만 호에서 2018년 말 136만 호로 늘었습니다. 원래 신규 등록한 임대주택의 숫자가 한 달에 평균 1만 건 남짓이었으나, 2018년 1월 2만7000호, 2월 1만9000호, 3월 8만 호로 급격히 늘었죠.

저는 임대주택을 등록해 양성화하는 것이 당신의 소신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전작인 <부동산은 끝났다>에서도 “등록된 임대주택에 혜택을 주고 대신 임대료를 통제하고 임대소득세를 제대로 걷는 대타협을 하자”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궁금한 것은 왜 그 타이밍이었는가, 그 결정을 할 당시에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부동산시장에 대해 어떤 판단을 했는가입니다. 각각의 세제 혜택을 어떻게 결정했는지도 궁금합니다. 특히 8년 장기보유하면 특별한 공제 혜택을 주는 파격적인 정책이 어떻게 포함됐는지 의문입니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출간한 <부동산과 정치>의 표지 / 오월의봄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출간한 <부동산과 정치>의 표지 / 오월의봄

저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가 아예 잘못된 정책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정책은 때론 내용보다 타이밍이 더 중요합니다. 필요한 정책이어도 타이밍이 나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옵니다.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정책은 역효과가 극대화된 경우였습니다. 그런데도 당신께서는 책에 “임대시장 투명화를 위해 등록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 옳았다 하더라도 급등기라면 미뤘어야 할 일이었다. 당시 시장 상황과 정책적 관리 능력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했던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내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는 정도로 적었습니다. 이 정도로는 가장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 타이밍에 대한 보다 자세한 복기가 절실합니다. 정책을 도입한 이후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입 초기에 임대주택 등록이 급증하고 부동산 거래 추이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는지, 그랬다면 그때 정책을 바로 조정하고 보완할 생각을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이후 대응은 너무 늦었고 미진했습니다. 그 과정이 무척 궁금합니다.

책 175쪽을 보면 당신의 장탄식이 나옵니다. 주로 당신이 청와대를 떠난 2019년 하반기 이후 금융 부문의 미진한 대처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다 의미 있는 내용이니 옮겨봅니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원래 계획대로 좀더 일찍, 좀더 과감하게 도입했더라면, 전세대출도 인상분만 적용하고, 주택 구입 시에는 즉시 회수하고, 더 적극적으로 고가주택 구입 시에는 대출을 금지하거나 비율을 대폭 낮췄더라면, 개인사업자 등의 변칙 주택 투기와 매집을 막았더라면, 더 나아가 금융기관의 일일 대출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총량 관리 차원에서 관리했더라면, 욕먹더라도 청년층들의 ‘영끌’을 더 강하게 억제했더라면, 정치권의 돈줄을 막지 말라는 압박에 더 강하게 대처했더라면, 금융기관의 안전보다 가계의 안전과 집값 안정에 좀더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은 2020년 이전 상황에도 어느 정도는 적용된다고 봅니다. 특히 DSR의 도입을 주저한 부분과 전세대출의 확대를 방조한 시기는 당신의 청와대 재임기간과도 겹칩니다. 무엇보다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대책에 대한 뼈아픈 탄식이 나오지 않은 점은 아쉽습니다. 하나 더 지적하자면 임대주택 등록의 취지 가운데 하나는 임대주택에 대한 예외 없는 과세입니다. 과연 등록 활성화를 통해 임대주택 과세가 제대로 되고 있을까요. 잘 아시겠지만, 등록되지 않은 임대주택의 과세는 여전히 대부분 사각지대로 남아 있습니다. 당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집요하게 챙기셨다면 이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문재인 정부에서 미진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정책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네 가지 방법

당신께 드리고 싶은 질문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아 두 번에 나눠 서한을 보내려 합니다. 다음 서한에선 주로 보유세와 전세대출에 대해 여쭈려 합니다. 이번 글은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제시한 ‘정책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하며 마치려 합니다. 정책은 대부분 딜레마의 상황 속에 있고, 그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네 가지가 필요한데요. 첫째는 정책은 단건이기보다는 조합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어야 합니다. 대출 규제를 강화한 2017년 8·2 대책과 같은해 12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대책은 서로 엇박자였습니다. 둘째는 정책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의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발언을 책에 “주택 공급의 현실적 어려움을 가장 정확히 담아낸 표현”이라고 평가한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주택 공급의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당시 김현미 전 장관의 발언은 국민에게 확실한 믿음을 드려도 모자란 상황에 나온 실언이었습니다. 셋째는 타이밍입니다.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뿐 아니라 당신께서 청와대를 떠난 이후에 나온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도 타이밍이 잘못된 정책이었죠. 넷째는 중간 점검과 보완입니다. 이처럼 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세심한 접근이 필요한데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선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당신께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윤형중 LAB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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