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몸을 낮춰 시선을 맞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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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민 시인 첫 시집 <묵은지에 대한 묵상>

한 행사장에서 만난 사람을 다른 사람과 착각한 적이 있습니다. 자주 본 사이가 아닌지라 얼굴과 이름이 헷갈렸지요. 떨떠름한 그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알아차렸습니다. 그의 이름을 잘못 말했다는 것을요. 행사가 끝난 뒤 찾아가 사과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오래 남았습니다. 비슷한 얼굴과 이름 그리고 오랜 시간이 착각을 불러오지요. 어디 사람만 그런가요. 식물도 모양이 비슷한 게 많아 헷갈리긴 마찬가지입니다.

연규민 시인(왼쪽)과 <묵은지에 대한 묵상> 표지 / 유리창

연규민 시인(왼쪽)과 <묵은지에 대한 묵상> 표지 / 유리창

다른 듯 닮은 것들

첫 시집 <묵은지에 대한 묵상>을 낸 연규민(1962~ ) 시인은 농사를 짓다 보면 벼와 피, 밀과 독보리, 들깨와 개쑥갓의 구별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중 “먹지도 못하는 개쑥갓”(이하 ‘털별꽃아재비’)은 쑥갓 흉내로도 모자라 “들깨인 척하고 있”으면 “눈곱만한 별꽃 달기 전에는/ 영락없는 들깨”라네요. “두메고추나물이란 고상한 별호”를 가졌는데, 들깨를 쏙 빼닮았다고 합니다. 맥문아재비, 억새아재비, 미나리아재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식물에서 ‘아재비’는 비슷하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쓰레기꽃이란 이름조차 마다 않는” 털별꽃아재비가 들꽃 흉내 좀 낸 것이 무에 문제냐 합니다. “세상 만물 제 살 방도 하나씩은 있는 법”이기 때문이지요.

서로 다른데 하나로 묶인 것도 있습니다. 들깨와 참깨입니다. 들깨는 꿀풀과, 참깨는 참깨과로 잎이나 열매가 서로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시 ‘터주깨’에서 “나는 참깨의 아류”가 아닌데 “어쩌자고/ 이 땅에서 더 오래 살아온 나를 들깨”라 부르고 “뒤늦게 이사 온 세사미를 참깨”라 하느냐며 들깨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꿈에서 들깨를 보거나 수확하는 꿈을 꾸면 “부자가” 된다거나 “아이를 낳고” 깨를 볶으면 얼굴에 부스럼이 난다는 금기도 빼놓지 않습니다. 또 “목화를 함께 심지 못”하고, “학문의 길에서 세상 욕심과 동행하지 못한다”는 말은 들깨를 업신여기는 것이라 지적합니다. “나는 참깨보다 이 땅에서 먼저 향그런 기름을 내던” 한국 땅의 주인 깨이니, “들깨가 아니라 터주깨”라고 불러달라 당당히 요구합니다.

농사를 수행이라 여긴다는 시인은 동식물과 이야기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그걸 시로 씁니다. 고난을 견디는 풀꽃의 강인함을 보고 힘든 시절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이지요. “밭고랑 풀 뽑을 때마다”(이하 ‘너는 너의 길을 가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바랭이는 퇴비와 쇠꼴로 적격일 뿐 아니라 땅 마름과 토사 유출을 막는 데 좋다며 “너는 바랭이의 삶을 살고/ 나는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또 도꼬마리는 “손등에 달라붙”(이하 ‘도씨삼형제’)고, 도깨비바늘은 “바짓단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도둑놈의갈고리는 “멋모르고 만지면/ 온통 잔가시를 묻혀놓”지만 이것을 보고 지퍼와 찍찍이를 만들고 마음 수행도 하는 등 “이쁜 구석”도 있다고 이내 수긍합니다.

우리는 우주 속의 한 구성원

시집에는 식물뿐 아니라 동물도 등장합니다. 시인의 시선은 강하거나 높은 곳이 아닌 약하거나 낮은 데를 향합니다. 몸을 낮춰 사물과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내어주지요. 하지만 연민이나 동정보다 “우주 속의 한 구성원”(‘시인의 말’)이라는 동등한 자세를 견지합니다. 이는 우편함에 둥지를 튼 곤줄박이를 대상으로 쓴 시 ‘월세는 얼마예요’에서 여실히 드러나지요. “딱딱딱 딱딱딱” 의성어를 맛깔스럽게 구사한 이 시는 곤줄박이가 부탁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 댁 우편함에 세 들어 살려는데/ 월세는 얼마예요” 묻고는 바로 “곤줄박이 식구가 시끄러워 월세를 못 주신다고요”,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항의합니다. 허락하지 않더라도 딱 “달포만 살고 나갈 거”라 당당하게 통보하지요. 대신 “시끄럽게 안” 하고, “평생 해로”를 “배달하는 걸로/ 월세를 대신”하겠다고 합니다.

시 ‘굼벵이 호의’에서는 굼벵이가 파먹은 고구마가 나옵니다. 굼벵이는 ‘밭작물의 적’이라 할 만큼 피해를 줍니다. 굼벵이가 “고구마에 입자국을 내놓”은 걸 “못난이 고구마만 손질해 드시는 바깥주인 드시라”는 호의랍니다. 입자국만 도려내면 “제대로 된 고구마”라면서요. 구르는 재주는 없어도 쓴 커피에 질긴 빵 한 조각 먹고는 새벽 밭일하는 바깥주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고 합니다. 그런 고구마는 “밥에 찌거나 물 붓고 삶는 것보다”(이하 ‘고구마는 구워야 제맛이다’) 불에 구워야 “입에 감긴”답니다. “구울 때 싸줘야 촉촉”해지고, “타지 않을 만큼 노릇해지면 뒤집어” 줘야 고구마가 달큰하다네요.

“안방까지 들어와 붕붕”(이하 ‘죽기 살기’)거리는 쉬파리 두 마리에도 시인의 시선이 머뭅니다. “쓰다가 장롱 위에 얹어둔 파리채”를 들자 순간 “사위가 고요”해집니다. 파리가 알아채고 숨은 것이지요. 파리채를 책상 옆에 내려놓자 다시 “머리 위로 밥상 위로” 날아다닙니다. 심지어 “아내의 어깨 위”에서도 활개를 칩니다. 참지 못하고 “다시 파리채를 들어/ 공기를 가르고/ 탁” 치자 날쌔게 피한 파리가 “걸어둔 옷 틈새로 머리”를 처박습니다. “나는 살기를 띠고” 파리는 살기 위해 기를 씁니다. 파리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돌솥집에 신혼살림을 차”(‘신혼살림’)린 흰쌀과 완두콩처럼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아내의 “잠꼬대에 놀라”(‘오늘도 숙면은 글렀다’) 잠을 설치고, “식구들 곤히 잠든 새벽/ 개수대 수북하게 쌓인 설거지”(‘허공에 수북한 거짓말’)를 하고, 모처럼 휴일에 늦잠을 자는데 “비닐장갑을 낀 아내”(‘기대 수명’)가 주먹밥을 가져와 먹으라 하고, “팔순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 육십 고개 넘어선 아들 끼니 걱정”(‘밥보자기나물’)에 바리바리 싼 반찬 보자기를 대문 앞에 두고 간 이야기가 낱알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화려함을/ 깨끗하게 씻어버린 날”(‘묵은지에 대한 묵상’)에 맵고 짠 성정도 함께 씻어냅니다.

◆시인의 말

[김정수의 시톡](26)몸을 낮춰 시선을 맞추다

▲파리가 돌아왔다 | 박미라 지음·달을쏘다·1만원
다시, 간절을 발굴하고 언 땅에 묵은 씨앗을 파종하겠다. 나중에 나중에 발아의 기록을 더듬어 네게 가겠다. 기어이 네게 닿겠다.

[김정수의 시톡](26)몸을 낮춰 시선을 맞추다

▲사랑의 시차 | 박일만 지음·서정시학·1만3000원
수없이 달려서 지금 이곳에 당도했습니다. 섬과 뭍 사이에는 선천적 그리움이 잠겨 있습니다. 섬에서 바라보면 모두가 그리움입니다.

[김정수의 시톡](26)몸을 낮춰 시선을 맞추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 김미성·북인·1만2000원
첫 번째 시집이 내가 나에게 보내는 반성의 속삭임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형제들, 이웃들, 친구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동승(同乘)이다.

[김정수의 시톡](26)몸을 낮춰 시선을 맞추다

▲별들의 구릉 어디쯤 낙타는 나를 기다리고 | 윤선 지음·걷는사람·1만2000원
몇 번의 봄이 지나갔지만 문고리만 잡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이 열렸습니다. 혼자 춤추다 들킨 것처럼 온몸이 발갛습니다.

[김정수의 시톡](26)몸을 낮춰 시선을 맞추다

▲돌멩이 국 | 송은영 지음·달아실·1만원
외로움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반려감정. 시를 쓴다는 건 고립무원이 된 나를 누군가 발견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김정수 시인 sujungi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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