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의 약탈과 공유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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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rooke Lar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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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개방과 공유, 협업의 철학 위에서 번성했다. 이 가운데 으뜸은 공유였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와 예술의 풍성한 바다는 창의적 개인들의 자발적 공유 덕에 형성될 수 있었다. 인쇄시대부터 내려온 낡은 저작권 프레임워크에 저항하면서 개방적이고 공유-협업지향적인 라이선스도 개발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reative Commons)를 비롯해 수많은 오픈소스 라이선스가 이를 증명한다.

인터넷을 살찌운 공유가 위기에 빠졌다. 아니 딜레마에 빠졌다. 혁신적인 리믹스 문화를 배태했던 ‘선의의 공유’가 몇몇 기술 기업의 상업적 목적에 약탈당하는 대상물로 전락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을 거부하며 더 나은 창작을 위해 지식과 콘텐츠, 예술작품을 나누었지만 돌아온 결과는 존재의 위협이었다. 협업하면 더 나은 창작의 생태계가 도래할 것으로 낙관했던 공유주의자들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환경이다. Dall-E가, 스테이블 디퓨전이 그리고 미드저니가 이를 부추기고 있다.

애초 크리에이티브 커먼스와 같은 개방형 공유 라이선스는 더 풍성한 공유지의 구축을 목표로 했다. CC0라 일컬어지는 라이선스 유형은 그 가운데 백미다. 내가 창작한 이미지, 영상물, 음악, 사진에 이르기까지 어떤 조건도 부여하지 않고 마음껏 사용하고 변형하고 뒤섞을 수 있도록 허락한다. 열정적인 창작자들과 예술가, 연구자들을 향한 호혜적이고 이타적인 선물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렇게 조성된 공유지를 기계가 ‘약탈’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공유지의 약탈은 두 가지 문제를 불러온다. 인간 창작자들의 공유 회피와 기계제작 공유지의 범람이다. AI 플랫폼들은 디지털 공유지에 축적된 창작자들의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인간의 창작 스타일을 복제한다. 창작물이 더 많이 공유될수록 스타일 따라하기는 더욱 정교해진다. 이를테면 ‘커먼 크롤’이라는 디지털 공유지에 쌓여 있는 수 페타바이트 용량의 데이터를 학습에 동원함으로써 결과물의 품질을 높인다. 커먼 크롤은 지금 창작자들과 예술가들에게 부메랑이 돼 공유 의욕을 꺾고, 공유 회피 행동을 유발하는 진원지로 변모하고 있다. 혁신 스타트업과 연구자를 위한 디지털 공유지가 지금은 부자 기술 기업들이 가장 손쉽게 대규모 데이터를 취득할 수 있는 데이터 창고가 됐다. 때문인지 커먼 크롤의 데이터 수집 기계를 차단하는 웹사이트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을 지탱시켜온 공유정신은 서서히 퇴색하는 중이다. 그 빈자리를 채워 넣는 건 기계가 생성한 합성물들이다.

‘안전한 공유’는 디지털 생태계의 절박한 과제가 됐다. 공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창작자의 데이터 통제권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워크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이미지, 비디오 등 1차 창작물과 기계학습이 가능한 데이터를 분리해 별도의 라이선스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공유와 모방, 창작의 연결고리가 끊기지 않도록 창의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책임이 창작자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필요하다면 규제의 칼을 AI 플랫폼에 들이대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창작 없이는 그들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그들도 이해할 것이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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