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의 ‘금빛’으로 ‘국방색’을 덮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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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야구·골프에 바둑까지…금메달로 병역 혜택 기대하는 선수들

한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2018년 9월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2018년 9월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병역 혜택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시안게임, 올림픽에 출전하는 병역 의무 미필 선수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뻔한’ 거짓말이다. 병역 의무에 대한 민감한 여론을 의식해 병역 혜택을 직접 거론하기를 꺼리지만,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말할 때마다 입술에 드리워지는 옅은 미소는 진심임을 말한다.

지금은 아시안게임 1위, 올림픽 동메달 이상, 병무청장이 인정하는 국내외 대회 2위 이상 입상자만 병역 특례를 받는다. 2015년부터 적용 중인 병역법에 따르면, 병역 혜택을 받는 사람은 한 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34개월 이내에 544시간 봉사활동도 해야 한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월드컵축구대회에 걸린 특례는 사라졌다.

금메달엔 연금도 포상금도 있지만…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미필 남자 선수들은 누구나 금메달을 꿈꾼다. 금메달을 따면 월급이 올라가고 연금 포인트가 쌓이며 포상금도 나온다. 그런데 그보다 남자 선수들 마음을 더 사로잡는 것은 병역 특례일 수밖에 없다.

남자 축구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다. 2014년에는 김승규, 김진수, 손준호, 이재성, 김신욱, 장현수 등이 병역 혜택을 받았다. 4년 후에는 김민재, 손흥민, 황희찬, 황인범, 나상호, 황의조, 조현우 등이 같은 혜택을 누렸다. 운동선수가 군복무를 면제받으면 엄청난 이득이 생긴다. 소속팀과 재계약하든, 팀을 옮기든 본인이 받는 연봉이나 팀이 챙기는 이적료가 오르게 마련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해외로 진출하거나 명문구단으로 이적하는 데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다.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파리 생제르맹(PSG) 이강인(22)이 출전한다. 아시안게임은 월드컵과 달리, 소속팀이 선수 차출에 의무적으로 응해야 하는 대회는 아니다. PSG는 이강인의 의지가 강한 데다, 이강인이 병역 혜택을 받을 경우 구단도 이득을 볼 수 있다고 판단해 차출을 허용했다. 이강인은 미드필더, 측면 공격수를 소화하는 전천후 공격요원이다.

국군체육부대 27세까지 입대

일반적으로 국군체육부대 입대의 마지노선은 27세다. 이강인은 앞으로 2024년 파리올림픽,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2028년 LA올림픽까지에서도 기회가 있을 수 있지만, 병역 혜택은 이르면 이를수록 이강인에게 유리하다.

황선홍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은 와일드카드(25세 이상 선수)로 백승호(26), 박진섭(28·이상 전북), 설영우(25·울산)를 뽑았다. 카타르월드컵 16강 브라질전에서 중거리골을 넣은 미드필더 백승호는 주장 완장까지 달았다. 올해를 끝으로 전북과 계약이 끝나는 백승호는 예정대로라면 올해 말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한다. 수비수 박진섭은 나이가 꽉 차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설영우는 한국이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8강에 머무는 바람에 병역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올해 말 상무 입대가 예정돼 있다. K리그 최고 측면 공격수로 꼽히는 엄원상(울산)도 원만한 해외 진출을 위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절실하다.

남자 야구는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대회까지 3회 연속 금메달을 땄다. 선수들 면면을 보면 항저우 대회에서도 우승에 가장 가까운 나라다. 일본은 실업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꾸린다. 대만은 미국프로야구 마이너리거, 자국 프로·실업리그를 망라해 최고 선수들이 나온다. 그렇더라도 대만 프로선수는 한국 프로선수에 비하면 실력이 다소 처짐을 부인하기 어렵다.

류중일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감독은 전반적으로 젊은 선수들을 뽑았다. 한국이 도쿄올림픽에서 졸전 끝에 4위에 머문 걸 회복하기 위한 결단이다. 대표 선수들은 25세 이하 또는 프로 입단 4년차 이하 선수가 대부분이다. 와일드카드도 박세웅(28·롯데) 등 29세 이하로만 채웠다.

박세웅은 소속팀에서 최초로 다년 계약을 한 대들보 선발 투수다. 도쿄올림픽,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한화 에이스 문동주(20)는 유망주로 관심을 끄는 선수다. 야수로서는 노시환(23·한화), 강백호(24·KT) 등이 있다. 국가대표 24명 중 19명이 병역 미필이다. 이들도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을 통해 병역문제를 해결한 박찬호, 김병현, 추신수, 김하성처럼 되기를 꿈꾼다.

한국은 역대 아시안게임 골프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13개, 동메달 9개로 가장 많은 메달을 따낸 국가다.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는 남녀 개인·단체전 금메달 4개를 싹쓸이했다. 그런데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대회에서는 20년 만의 ‘노 골드’를 기록했다.

항저우선 사상 첫 프로골퍼들 출전 항저우

대회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프로선수 출전이 가능해졌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듀오 임성재(25)와 김시우(28)가 도전장을 냈다. 임성재는 세계랭킹 27위로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남자 선수 최고 랭커다. 김시우도 40위로 임성재 다음으로 높다. 임성재와 김시우가 출전하면서 남자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모두 따리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아마추어 조우영(22)과 장유빈(21)도 올해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우승한 무서운 신예들이다. 임성재와 김시우는 도쿄올림픽에서도 동메달 이상 성적을 기대했지만, 임성재는 공동 22위에, 김시우는 32위에 각각 머물렀다.

항저우아시안게임 골프 금메달의 최대 변수는 코스 적응이다. 대회는 항저우 서호 국제 골프 코스에서 열린다. 중국은 대회 직전까지도 코스를 개방하지 않았다.

바둑 신진서 9단(23)도 이번에 금메달을 따면 병역 혜택을 받는다. 신진서는 지난 8월 ‘바둑 올림픽’으로 불리는 응씨배에서 한국 선수로는 14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신진서는 응씨배 준비 과정에 대해 “국가대표팀에서 많이 배려해줬다”며 “진천선수촌에서 동료들과 대국을 많이 했고 공동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신진서는 “응씨배 우승으로 큰 짐을 덜었으니 아시안게임을 좀더 편안하게 준비했다”며 “아시안게임에서는 전승을 거둬 남자 개인전, 남자 단체전에 걸린 금메달 2개를 모두 따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김세훈 스포츠부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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