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RE100 1년’ 성적표는 ‘기대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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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설비·전력 구매 대신 기존 전기료에 추가비용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LNG발전소 건설 계획도 도마에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IFA 2023’을 찾은 관람객들이 9월 4일 삼성전자 부스 앞에 모여 있다. / 삼성전자 제공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IFA 2023’을 찾은 관람객들이 9월 4일 삼성전자 부스 앞에 모여 있다.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15일, RE100(전력 사용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한다는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 캠페인) 가입을 선언하는 신환경전략을 발표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의 RE100 이행을 평가하자면,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표면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늘었지만, 재생에너지 확대 효과가 큰 자체건설이나 재생에너지 전력 구매 계약 대신, 일반 전기요금에 추가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주로 채웠기 때문이다.

국내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정부에 명시적인 요구를 한 흔적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국내 전력 소비 1위, 온실가스 배출량 국내 8위(발전·에너지 기업 제외 시 3위) 기업이다. 그린피스와 국내외 기후변화 대응 단체, 글로벌 투자자들은 삼성전자가 책임감과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재생전력 조달, 질적 개선해야

삼성전자는 지난 6월 30일 발표한 ‘2023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RE100 달성률이 2021년 20%에서 2022년 31%로 올랐다고 밝혔다. 글로벌 차원에서 사용 전력의 31%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RE100 이행을 질적으로 평가하면 재생에너지 확대에 기여하는 정도가 낮다는 분석이 나왔다.

RE100을 이행하는 수단은 재생에너지 설비를 신규로 늘리는 추가성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직접 설치하는 ‘자체건설’과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 지분을 투자하고 해당 발전사와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는 방식이 추가성이 크다고 평가받는다. 한전의 중개로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매하는 ‘제3자 PPA’도 있다. PPA는 대부분 신규프로젝트로 계약이 이뤄지는데 수요 기업의 구매가 프로젝트의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추가성이 높다. REC(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거래시장에서 REC를 직접 구매하는 방식도 추가성이 있다고 본다.

마지막은 녹색요금제다. 전기요금에 추가비용(국내의 경우 1㎾h당 10원 정도)을 얹어 한전에 납부해 재생에너지 사용확인서를 발급받는 방법이다. 녹색요금제는 기존 프로젝트에서 발행한 인증서를 이용해 재생에너지 시설을 추가하는 기여도가 가장 낮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사용실적으로 인정은 받지만 온실가스 감축 실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린피스는 지난 9월 14일 발표한 ‘삼성전자 신환경경영전략 1주년 평가’ 보고서에서 질적 평가를 할 경우 2021년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전력비율은 20%가 아닌 6%에 불과하고, 2022년 실적도 31%가 아닌 10% 이하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재생에너지 조달방식별로 자가발전과 PPA에 1, REC 구매에 0.3, 녹색요금제에 0.1의 가중치를 적용한 결과다.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하면, 차이가 뚜렷하다. 2022년 미국에서 애플과 삼성전자 모두 RE100을 달성했지만, 애플은 효과성이 높은 제도 활용 비중이 77%(PPA 62.6%·자체설비 14.6% 등)인데 비해 삼성전자는 효과성이 낮은 제도 활용 비중이 94%(REC 구매 92.2%)를 차지했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지난 1년간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렸지만,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작은 조달제도를 주로 쓰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지난해 삼성의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전년도에 비해 늘어난 것이 이를 반증한다”면서 “정부도 기업이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빠르게 늘릴 수 있도록 공급에 힘써야겠지만, 삼성전자 역시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큰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빠르게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직접 발전과 PPA, REC, 녹색요금제 모두 RE100을 비롯한 글로벌 이니셔티브 등에서 인정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조달 수단이며, 많은 글로벌 선도기업들이 활용 중”이라면서 “국내외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조달을 위한 가용 수단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향후 거점별 인프라 및 시장 상황을 고려해 PPA 등을 통한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RE100 갈 길 먼데 반도체 클러스터에 LNG

삼성전자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설립된 아시아 청정에너지 연합(ACEC·글로벌 기업, 재생에너지 발전사, 투자자 등이 모여 결성한 기구로, 아시아 국가의 재생에너지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함) 창립 멤버로 가입했고, 지난해 11월 반도체 기후 컨소시엄(SCC) 창립 멤버로 가입해 반도체 업계 전반에서 기후변화 공동 대응을 위한 목표 및 로드맵 수립, 표준화 작업에 적극 참여 중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함께 인터넷에 연결된 전자제품들의 소비자 사용단계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활동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를 위해 동종업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재생에너지 생태계는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공급 방안도 우려를 낳고 있다. 삼성전자는 총 300조원을 들여 2042년까지 5개 이상의 반도체 공장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조성한다. 여기에 필요한 전력은 2029년 0.4GW에서, 2042년 7GW, 2050년 10GW 이상으로 전망한다. 정부는 전력공급을 위해 6기의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를 지을 계획이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폐쇄가 예정된 석탄발전소를 LNG발전소로 전환하는데, 그 전환 물량을 용인에 배치한다. 추후 송전망을 건설해 경북의 원전과 호남의 재생에너지를 끌어오기로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송전선로를 통해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한다는 전략이다. 다만 송전선 건설에 시간이 오래 걸리니 상대적으로 적게 걸리는 LNG발전소를 산단 내에 지어서 초기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고, 이후 송전선 건설을 통해 전력을 공급하는 2단계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급되는 주요 전력원이 LNG와 원전이 된다면 RE100 이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정부는 전력을 제때, 충분한 양을 공급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발전소 계획은 기업의 전력 필요시점과 수요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역시 발전원에 상관 없이 제때 필요한 만큼의 전력을 공급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한 검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생에너지는 변동성이 있지만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을 결합해 보완할 수 있다. 토지 사용도 크지 않을 수 있다. 정부는 초기 수요인 400MW를 태양광 발전으로 충당할 경우 100만평 이상이 든다고 하지만, 200만평 이상으로 예상되는 산업단지 내 건물 옥상이나 공장 지붕, 주차장을 비롯한 유휴부지를 활용하면 상당량을 채울 수 있다. 게다가 경기도 RE100 실행위원회에 따르면 도에 있는 농지의 10%만 농사와 발전을 동시에 하는 영농형 태양광으로 전환해도 7GW(20% 시 14GW)를 설치할 수 있다.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경기도에서 영농형 태양광을 확대한다면, (수요지와 생산지가 일치해) LNG를 지을 필요도, 원전에서 전기를 가져오기 위해 송전망을 지을 필요도 줄어든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국가 전력망의 에너지원 구성과 별개로 REC 구매, 녹색요금제, PPA 등으로 이뤄지는 우리의 RE100 전략은 변함이 없다”면서 “기흥 등 현재 사업장의 지붕 등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듯, 향후 비슷한 방식을 활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사들, 삼성 탄소 감축 활동 주시

글로벌 차원에서 화석연료 퇴출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새로 LNG발전소를 짓는 건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사라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 아태지역 책임투자부 이사는 “RE100을 선언한 삼성전자가 향후 LNG 발전 시설에서 나오는 전력을 사용하는 것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기술발전과 규모의 경제로 이미 태양광과 풍력발전은 화석연료나 원자력보다 더 싸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으로 견고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TSMC도 풍력발전 구매 계약으로 재생전력의 사용을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규 LNG 전력 시설의 경우, 2050년 이후까지 운영할 텐데, 이럴 경우 2050년 재생전력발전 100%를 선언한 삼성전자가 넷제로 목표 달성 경로(Net Zero Pathway)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의문을 갖는 투자자들의 ‘관여’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탈탄소 행보를 눈여겨보는 투자자 모임으로 ‘클라이밋 액션100+(CA100+)’을 들 수 있다. CA100+는 전 세계 자산운용사 700곳이 참여 중인 투자자 이니셔티브로, 자산운용 규모가 약 62조달러(약 8경2156조원)에 달한다. CA100+는 지난 6월 2050년 넷제로 달성을 위해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한 투자자 관여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제2차 기후행동’을 선언했다. CA100+은 제2차 기후행동에서 투자자들이 주요하게 관여할 기업으로 모두 171개 기업을 선정했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한국전력, 포스코, SK이노베이션 등 4개 국내 기업이 포함됐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새로운 제조 시설에 LNG 전력을 공급하면 삼성의 기후 관련 공신력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독일의 비영리 기관인 ‘신기후연구소’의 토마스 데이 기후정책 연구원은 최근 기후미디어허브가 의뢰한 의견서에서 “국제에너지기구가 파리협정에 부합하기 위해선 화석연료 인프라에 대한 신규 투자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한 상황에서 자칭 기후리더가 화석연료 기반 전력에 의존하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정부 정책만 바라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기업인 삼성이 정책적 진전이 더디다는 핑계로 정부의 소극적 정책 뒤로 숨는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삼성의 주요 경쟁사들이 보여줬던 노력과 비교했을 때, 삼성이 이에 필적할 만한 수준으로 해법을 찾고, 대중의 지지를 결집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플랜1.5’의 권경락 활동가는 “삼성이 RE100을 선언할 당시엔 적극적으로 정부에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고, 자기의 책임도 이행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화석연료 사업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어 씁쓸하다”고 평가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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