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짜오’ 대신 ‘진짜요’···웃음꽃 핀 미술수업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베트남 학생들이 한국에서 온 이성민 교사 일행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이성민 제공

베트남 학생들이 한국에서 온 이성민 교사 일행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이성민 제공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늘 외국에 나가서 그곳 학생들을 상대로 미술수업을 하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마침 경상북도가 설립한 비영리기관인 새마을재단에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외파견 교육봉사 요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해 처음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운 좋게 공모에 선정돼 도개고 미술부 학생들과 함께 지난 8월 16일부터 25일까지 베트남을 다녀왔다. 다낭에 있는 판반동(Pham Vam Dong)중학교에서 현지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미술수업을 했다.

해외에서 미술수업을 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루게 된 건 가슴 벅찬 일이었지만, 준비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먼저 기초생활에 필요한 베트남어 학습을 시작했다. 외국 학생들의 관심을 끌려면 초보 수준일지언정, 언어장벽을 허무는 일이 급선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파우치 만들기, 페이스 페인팅 수업 등에선 통역만으로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남을 것만 같았다.

다음 단계는 본업인 ‘미술수업 커리큘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짤 것인가’였다. ‘반전(反戰) 만화 그리기’를 넣었다. 한국은 미국의 베트남전쟁(1964~1975)에 참전해 민간인 학살에 가담한 쓰라린 역사를 갖고 있다. 아픔을 딛고 양국이 진정한 화해와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주제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한국 바로알기’를 가미했다.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 한국 음악 등 한류 열풍은 베트남이라고 예외는 아닐 터.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향한 관심이 급증한 베트남 학생들에게 짧은 기간이나마 한국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 소재는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하회탈 제작하기’를 선택했다.

1주일에 걸쳐 어렵게 완성한 대형벽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멋진 작품이 탄생했다./ 이성민 제공

1주일에 걸쳐 어렵게 완성한 대형벽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멋진 작품이 탄생했다./ 이성민 제공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현지 학생들 앞에 섰다. 첫날 반전 만화 그리기 수업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학생이 한명 있었다. 말도 없이 열심히 그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고나 할까. 완성된 그림을 보고는 실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베트남 스타일의 올림머리를 한 소녀가 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림 좌우에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를 배치하는 섬세함까지 빼놓지 않았다. 뭘 표현하고 싶었는지 물어봤다. “두 나라의 번영과 친분이 앞으로 더욱 강화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그렸다” 그제야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베트남 학생들이 진심으로 한국을 좋아하고 정말 관심이 많구나, 하고 느꼈다.

한국어 수업시간도 잊을 수 없다. 통역이 있었지만, 일부러 수업 시작 때마다 “신짜오”(xin chao)를 외쳤다. 한국말로 하면 “안녕하세요”다. 외국어 구사란 역시 간단한 인사말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면 할수록 자꾸 발음이 ‘진짜요’로 바뀌어 갔다. 함께 간 교사들과 학생들도 웃고, 통역은 물론, 현지 학생들과 수업 참관 학부형들도 한국에서 온 미술 교사의 엉뚱한 발음에 폭소를 터뜨렸다. 허점투성이였지만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드는 선생님을 보며 학생들도 용기를 냈다. 큰소리로 한국말을 따라했고, 1주일여의 일정을 마친 뒤에는 서툴지언정 수업시간에 배운 기본 한글과 그림 문양을 적절히 섞어가며 정성껏 손편지를 제작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이번 일정의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단연 ‘대형벽화 제작’이다. 판반동중학교 인근 마을에서 베트남 학생들, 도개고 미술부원들과 함께 대형벽화 그리기 작업에 나섰다. 길이가 15m나 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너무 규모가 커서 처음에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첫걸음을 떼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며 진도가 나갔다. 40도에 이르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봉사를 나온 한국 학생들을 위해 베트남 학생들은 자신의 집에 가서 얼음물을 가져왔다. 사탕수수 나무에 올라가 직접 딴 열매로 시원한 음료를 만들어주는가 하면, 현지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큰 냄비에 한국 라면을 끓여주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쏟아진 엄청난 소나기로 인해 기껏 그려놓은 그림이 전부 쓸려내려가 버리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3가지 주제를 담았다. 먼저 베트남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풍악을 울리며 즐겁게 노는 모습을 그렸다. 이어 바다가 보이는 한국의 남해를 배경으로 소나무와 붉은 지붕의 집 등이 늘어서 있는 잔잔한 풍경을 그려넣었다. 마지막은 분홍빛 바닷속 풍경이 장식했다. 귀국 전날에야 겨우 완성한 작품을 보면서 마을 이장님, 교장선생님, 양국의 학생들 모두 큰 박수를 보내며 기쁨에 겨워 환호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베트남 학생들이 손수 제작한 감사 편지들 / 이성민 제공

베트남 학생들이 손수 제작한 감사 편지들 / 이성민 제공

다낭 외곽의 한 장애센터를 방문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 고엽제 피해로 인한 장애인들이 모여 있는 시설이었다. 중증환자가 많다는 얘기를 들은 터여서 무거운 마음으로 센터 문을 열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순간 무거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장애인 아이들은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축하공연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다. 어설펐지만 진심을 담은 율동이 이어졌고, 공연 말미엔 무릎 한쪽을 꿇더니 ‘프러포즈’ 자세로 우리한테 꽃다발을 건넸다. 파견교사로 선정되고 나서부터 시작한 준비과정과 노력, 현지수업에서의 시행착오, 학생들의 격려와 응원 등이 떠올라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간 몸에 쌓였던 피로도 한순간에 풀리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니 힘은 들었지만 참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지만, 서로를 위한 진심 어린 마음만 있다면 의사소통엔 전혀 지장이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이번에 새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교육 일선에 있으면서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이번에 학생들과의 소통은 더 그랬다. 몸짓·발짓으로 시작한 대화였지만 상대방의 특성이나 취향 등을 알게 됐다. 좀더 친해지고 싶어 상대방 나라의 역사나 언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으니 이보다 더 의미 있고 좋은 일이 또 있을까. 9박10일간 함께 고생한 새마을재단 관계자들과 본교 미술부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필자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교육대학원을 나왔다. 개인전 12회, 아트페어 및 국내외 전시 200여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2023) 등을 지냈다.

<이성민 경북 구미 도개고 미술교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