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 보스톤-대한민국을 품고 달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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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이미지가 덧씌워진 강제규 감독이지만, 신작 <1947 보스톤>은 범작 이상의 대접은 충분히 받을 만한 작품이다. 특히 후반부의 마라톤 경기 장면은 좀처럼 한국 스포츠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몰입감을 구현해낸다.

제목 1947 보스톤(Road to Boston)

제작연도 2023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08분

장르 드라마

감독 강제규

출연 하정우, 임시완, 배성우, 김상호

개봉 2023년 9월 27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롯데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199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영화 부흥기의 중요 인물 중 하나로 강제규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은행나무 침대>(1996),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2004), <마이웨이>(2011) 등 한국영화의 제작 규모와 동시에 관객동원의 영역까지 혁신적으로 확장한 인물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극장에 선보였던 작품은 2015년 공개한 <장수상회>이다. 작은 규모의 가족드라마였던 이 작품은 그동안 감독이 만들어왔던 영화들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보이는 작품이어서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이 다양한 의구심을 촉발하기도 했다.

전성기 작품들의 햇수나 8년이라는 긴 공백기는 그에게 ‘낡은’ 이미지를 덧씌우기에 충분한 숫자다. 따라서 그의 신작에 대한 기대가 예전만 못함은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역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엔간해선 나은 평가를 받을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떠한 배경과 작용이 있었건 간에 이번 신작 <1947 보스톤>은 충분히 범작 이상의 대접은 받을 만한 작품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환영받아왔다. 그것이 실화라면 감동은 더 배가된다.

이 영화는 현대사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의 정서를 세심히 담아내면서도 한국적 정서에 부합하는 ‘우리’ 이야기를 포착해내고 있다.

중견 감독 강제규의 8년 만의 대작

베를린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하정우 분). 그러나 시상대에서 일장기를 가렸다는 이유로 제명당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간다. 베를린올림픽 출전 당시 경쟁자이자 동료였던 남승룡(배성우 분)은 국위 선양을 위한 후배 양성에 사활을 걸고, 손기정에게 보스톤마라톤 참가를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이즈음 가난하지만 달리기 하나만큼은 천부적 소질을 타고 태어난 청년 서윤복(임시완 분)이 두 사람의 눈에 들어온다.

관록을 쌓은 중견 감독의 작품답게 영화는 다양한 측면에서 안정적인 완성도를 보인다.

다양한 인물의 관계에 골고루 시선을 보내면서도 이들이 결말의 주제를 향해 부드럽게 봉합되도록 유도해낸다.

화면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채운 해방 직후의 풍경은 고증과 재현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매 순간 실감하게 만든다.

특히 후반부의 중심이 되는 마라톤 경기 장면은 좀처럼 한국 스포츠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몰입감을 제대로 충실하게 구현해냈다. 경기 자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끈다. 사실 한국영화가 다양한 운동을 소재로 삼아온 지는 오래됐지만, 경기 자체를 주인공으로 실감했던 경험이 별로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그 자체만으로 고무적 성과라고 해도 과찬은 아니다.

악재가 선물한 시의성과 가치

<1947 보스톤>은 한 인간의 성공담을 영상화하는 과정에 있어 충분한 성취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값진 결과가 단순히 한 사람의 뛰어난 재주나 노력으로만 쟁취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이 함께하는 이해와 신뢰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과정에 집중한 점은 더욱 아름답다.

무엇보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 가장 혼란스러웠고, 희망이 부족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국인의 자존감과 긍지를 잃지 않고 지켜내려 노력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작금의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영화는 2020년 개봉 예정이었다. 코로나19의 발생으로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뒤 연이어 불거진 주연배우들의 구설수로 개봉 가능성은 더욱 묘연했다. 이런 악재로 인해 유명 제작진과 200억대의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임에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창고에 묵혀 있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런 치명적 핸디캡이 외려 영화의 가치를 부각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세태의 아이러니다. 애국과 정의의 가치가 왜곡되고 투미해진 작금의 시대에 되레 시의적절한 화두의 작품으로 다가온다.

애초 영화가 기획될 시점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진정한 ‘공정’과 ‘상식’의 기준과 가치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좀더 높은 평가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

또다시 재현되는 추석 ‘한국영화 4강전’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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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에 있어 성수기 중 하나인 여름 휴가철을 겨냥해 한국영화 기대작 4편이 경쟁하는 양태가 지난해와 올해 연속해서 반복됐다. 이번 추석 연휴 역시 대목을 겨냥해 야심 차게 출사표를 던진 한국영화가 공교롭게도 4편이다.

관계자들 사이에는 이 같은 현상이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앞선 두 번의 떠들썩했던 경쟁의 결과란 게 참담하다고 할 정도로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또다시 득보다 실이 커 보이는 경쟁 구도가 재현되는 것은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여파로 개봉 시기를 놓치고 창고에 쌓여 있던 작품 중 상당수가 아직도 방치된 상태다. 시간이 지날수록 투자금 회수의 압박을 타계해야 하는 제작사 처지에서는 마냥 점잔만 빼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팬데믹 이후 더욱 각박해진 투자환경으로 인해 새로운 작품의 제작에 들어가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 돼버렸다.

이번 판세가 더욱 부정적으로 읽히는 치명적 조짐은 4편의 영화 중 <30일>(마인드마크·10월 3일 개봉)을 제외한 <1947 보스톤>(롯데엔터테인먼트), <거미집>(바른손E&A),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CJ ENM)이 모두 같은 날인 9월 27일 개봉한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 경쟁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시차를 두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다음날인 28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연휴를 온전히 점유하겠다는 포석이 크겠지만, 개봉 당일이 ‘문화의 날’(매달 마지막 수요일)이라는 점에서 관련 특수도 간과할 수 없는 기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각자도생의 이기적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결과는 곧 판명날 것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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