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불평등과 계층이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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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역동적이고 발전하는 사회는 계층이동성이 높은 사회일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계층이동성이 높다고 보고된다. 계층이동성이 낮은 사회에서는 열등한 계층의 가계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더 나은 계층으로 진입하기 어렵다. 계층의 고착화는 경제적으로 열등한 계층에 태어난 자녀들의 인적자원이 사회에서 소외받으며 개발되지 못하면서 발생한다. 불평등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이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의 경우 빈곤선(기준중위소득 50%) 이하의 소득구간에 위치한 사람들의 비중이 크다. 생활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결핍되거나 부족한 상태에 있다면 당사자들의 삶의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결혼이나 출산 등 중요한 인생의 계획이 심각하게 제약받게 된다. 그러기에 빈곤선 이하의 인구 비중이 높은 사회는 우선 저출생을 통해 경제성장의 가능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이 경우 절대적 빈곤보다는 상대적 빈곤이 저출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부분의 주민이 빈곤한 저개발국가의 경우 출산율은 낮지 않지만, 상대적 빈곤율이 높은 나라에서 빈곤계층의 출산율은 대체로 낮게 보고된다.

불평등과 정부의 역할

불평등한 경제상황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사람들은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본다. 출발지점의 상황을 유사하게 만들어 준다면 개인이 획득한 경제활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국가의 재분배적 개입이 필요없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개인의 성공 요인을 살펴보면 (불평등도 여기서 유래될 것이다) 유전적 요인과 교육적 환경, 그리고 경제적 환경을 들 수 있다. 유전적 요인과 교육적 환경은 지적능력이나 성취동기와 같은 정서적 측면, 지구력이나 손재주 같은 육체적 측면, 외향성의 정도 같은 심리적인 측면들에 모두 영향을 준다. 경제적 환경의 차이는 증여 혹은 상속의 과정을 거쳐 재산상의 차이로 이어진다. 자녀의 고등교육비를 부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증여행위의 일종이고, 결과적으로 교육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불평등의 싹은 결국 가정과 부모에 있는 셈이다. 개인들이 선택할 수 없는 성장 초기의 환경 차이가 개인들의 성공 여부에 결정적이다.

가정과 부모를 균등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넘어선다. 가능하지도 않다. 취약한 가정에 태어나더라도 좋은 교육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학교와 학교 외적 서비스를 충분하게 제공하는 역할을 정부는 계속해야 한다. 기회균등 추구 방식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한계는 그러나 명확하다. 결국 불평등을 실효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방식의 노력이 내실 있게 이행돼야 한다. 정부가 의무교육을 실행하고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방식의 기회 균등화 정책은 반드시 재정이 넉넉한 나라들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며 많은 나라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결과의 평등, 즉 양극화의 축소를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방식은 국민이 경제활동에서 획득한 소득이나 저축, 상속을 통해 형성된 자산에 대해 누진적으로 과세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모습은 요원하다.

소득과 자산에 대한 누진적인 과세는 개인들의 경제적 성과가 반드시 그들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지원, 환경의 변화 등 여러 요인에 의한 것이란 점에서 정당성이 충분하다. 1980년대 이전에는 선진국에서 잘 정착돼 있던 내용이다. 1980년대 이후 작은 정부론이 추세적으로 자리를 잡으며 누진과세가 현저하게 약화됐다. 법인과 개인에 대해 50%에 달하던 주요 국가들의 세율 수준은 큰 폭으로 낮아졌다. 기업과 소득상위 계층의 정치적 영향력이 과대하게 대변되면서 조세 및 재정정책수단의 투입은 정치현실에서 터부시되고 통화정책이 홀로 모든 부담을 안고 분투했다. 그 결과 경제위기 때마다 반복되는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시중에 유동성이 엄청난 수준으로 늘어났다. 최근의 인플레이션으로 통화정책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늘어난 유동성은 전 세계에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을 끌어올려 양극화를 더 크게 벌렸다.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소득과 자산 하위계층에 속한 이들의 정부에 대한 분노가 깊어졌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기층사회로부터의 분노는 정치권 전체로 향했으나 진보정치인들을 향해 더 강하게 표출됐다. 기층시민들에게 그들의 어려운 경제현실에 대한 책임을 어디에 돌려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보정당들의 대안은 설득력이 있지도, 실효적이지도 못했다. 결국 극우정치인들이 제시하는 손쉬운 해법(이민자 제한, 글로벌화와 중국의 책임 등)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극우정치인들이 제기하는 정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근거 있는 분노를 풀어줄 실효적 대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경제 격차 완화

재정정책이 본연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조세제도는 응능부담 원칙(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맞게 과세하는 원칙)에 충실한 소득세와 법인세를 주축으로 적절한 수준의 세 부담을 정착시키고, 필요한 수준의 재정지출이 가능하도록 재정조달의 기능을 감당해줘야 한다. 마련된 재원은 복지와 교육 및 사회안전 등 인프라 투자에 효율적으로 활용돼 기저층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기대하면서 살 수 있도록 사회가 변화돼야 한다. 정부 세입과 세출의 양방향에서 소득과 자산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재정이 조달되고 사용돼 양극화가 점진적으로 해소되도록 재정정책이 역할을 해야 한다.

사업이나 부동산 등에 대한 자산투자를 통해 형성된 자산을 자식 세대에게 물려줄 때 국가가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서면 심리적인 저항감을 가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봐야 한다. 자식 세대가 물려받은 자산 등은 본인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며, 결과적으로 계층이동성을 심각하게 제약한다.

지대 추구는 새로운 부를 창출하지 않고 단지 기존의 부에서 자신의 몫을 늘리기 위한 활동이다. 독과점적 이익을 누리는 기업, 공급의 제한을 통해 고소득을 누리는 의사 등의 직업군들만이 지대 추구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지대 추구는 기득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의 잠재성장력이 떨어지는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집단화된 기득권층의 지대 추구 행위다.

부의 대물림은 지대 추구 행위 그 자체이며, 형성된 불평등을 고착시킨다. 소득과 자산에서 지대적 요소를 줄이는 것이 경제정책의 핵심이다. 지대에 대한 높은 과세는 경제원리에 부합한다. 경제학 교과서는 ‘가장 효율적인 조세는 지대를 창출하는 자산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정과 부모를 균등화하지는 못해도 경제적 격차는 적절하게 줄여야 한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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