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신 ‘직전’ 대통령이면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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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의원, 대안 제시…집회 금지구역 ‘꼼수’ 공방

지난해 5월 10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 전경(사진 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원이 지난해 8월 21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앞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차를 통과시키고 있다. 대통령 경호처는 이날 문 전 대통령 자택 경호 구역을 울타리부터 최장 300m까지 확장, 재지정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연합뉴스

지난해 5월 10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 전경(사진 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원이 지난해 8월 21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앞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차를 통과시키고 있다. 대통령 경호처는 이날 문 전 대통령 자택 경호 구역을 울타리부터 최장 300m까지 확장, 재지정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연합뉴스

“세상에 이런 사고를 하는 게 우리 국회에서도 가능한지 정말 납득할 수가 없다. 그냥 폐기해 버리는 게 맞다.”

지난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당시 야당 간사인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기 의원이 “폐기”해야 한다고 지적한 대상은 안건으로 상정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이다. 집회를 원천 금지하는 장소에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 주변을 새로 추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통과시킨 뒤 체계·자구 심사를 위해 법사위로 이송됐다. 집회 금지 장소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행안위 논의 단계에서부터 논란이 됐다. 대통령 집무실도 문제이지만 특히 헌법적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전직 대통령의 사저 부분은 위헌 소지가 훨씬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사위는 이 집시법 개정안을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부쳤다. 그런데 지난 6월 개최된 법안심사소위에서 뜻밖의 대안이 거론됐다. ‘전직’ 대통령 사저 대신 범위를 좁혀 ‘직전’ 대통령 사저로 한정하는 방안이다. 이 제안은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 의원이 내놓았다. 시민사회에서는 “국회에서 이런 논의가 이뤄지는 게 어이없다”는 반응과 함께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직 대통령 사저’ 본격 논의되나

국회 행안위는 지난해 12월 1일 여야 합의로 집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의 주변 100m 이내에서 아무런 예외 없이 집회를 금지토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집회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개악”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집회 금지 장소가 점차 축소돼온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법안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입법 거래를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집시법 개정안은 국회 법사위로 이송됐고, 지난 2월 16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당시 민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은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기 의원은 “행안위가 무슨 생각으로 이 법안을 여야가 합의해 이쪽으로 올려놨는지 모르겠다”라며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세상에 이런 사고를 하는 게 우리 국회에서도 가능한지 정말 납득할 수 없다”라며 “더 이상 토론하고 싶지 않다. 그냥 폐기해 버리는 게 맞다”고 말했다. 법사위는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서 이 법안을 보다 심도 있게 논의키로 했다.

이에 법안심사소위는 지난 6월 15일 집시법 개정안을 다뤘다. 소관 부처인 경찰청의 조지호 차장은 ‘대통령 집무실’ 부분에는 찬성 의견을 냈다. 다만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할 우려가 없는 경우’ 등 집회가 가능한 예외 사유를 추가해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앞서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장 공관의 주변 100m 이내에서 무조건 집회를 금지하는 조항을 두고 잇따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점을 고려한 것이다.

반면 조 차장은 전직 대통령 사저 부분은 기존처럼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전직 대통령은 헌법적 기능 등을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집시법을 통해 보호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앞서 행안위의 검토보고서에도 담긴 바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지난 3월 15일 국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방문해 인사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지난 3월 15일 국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방문해 인사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그러자 소위원장인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이 대안을 제시했다. 바로 ‘전직 대통령 사저’를 ‘직전 대통령 사저’로 대체하는 것이다. 정 의원은 “(전직 대통령의) 사저와 관련한 부분은 행안위에서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것”이라며 “혹시 직전 대통령 정도로 수정하는 건 어떤지 위원님들께서 고려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어느 정부든 대통령 퇴임 직후에 사저 주변에서 집회가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라며 “직전 대통령이 아니면 국민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때문에 모든 전직 대통령 사저를 다 포괄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정점식) 위원장이 제안한 것처럼 직전 대통령(은) 논의 가능하다고 본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 의원은 다만 전직 대통령에게는 헌법적 기능이 없기 때문에 그 사저와 현직 대통령 집무실을 별개로 다뤄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박 의원은 “전직 대통령, 특히 직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사회 통합적 기능이나 정치적 기능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그런 측면에서 그 공공성을 가벼이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소위는 추후 ‘직전 대통령 사저’ 방안을 다시 논의키로 했다. 정점식 의원은 위원들에게 다음 회의 전까지 전문위원실에 의견을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법사위 전문위원실 관계자는 “아직 의견이 온 건 없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직전 대통령 사저’ 수정안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견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했다.

“특별한 계급 부여하는 것”

‘전직’을 ‘직전’으로 변경하는 수정안이 국회에서 등장한 것을 두고 시민사회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전직 대통령 사저 주변을 집회 금지구역으로 설정하는 건 대통령 집무실보다 위헌성이 짙은 데다, 여기서 직전 대통령으로 좁히는 건 특정인에게만 특혜를 주는 꼴이라는 비판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전 대통령으로 한정하는 건 단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며 “전직 대통령들은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경호를 받으면 되는 것이지, 집회를 통한 시민들의 비판에서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선임간사는 “일반인인 전직 대통령의 사저 주변 집회를 금지하는 건 그에게 특별한 계급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라며 “사저 주변의 특별한 사례를 일반화해 집시법 자체를 뜯어고치겠다는 것은 민의를 대변하고 기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해야 하는 국회에서 추진할 방안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제안을 한 국민의힘 의원도 문제이고, 특히 판사 출신에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민주당 의원이 여기에 맞장구를 쳤다는 게 더 황당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대통령 집무실 앞을 집회 금지구역에 포함하는 조치를 관철하기 위해 민주당에 이런 대안을 제시했다는 해석도 있다. 랑희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국민의힘이 바라는 대통령 집무실 주변의 집회 금지를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찬성할 수 있는 직전 대통령 사저도 함께 끼워 넣으려는 것”이라며 “여야가 각자의 대통령을 위해서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다. 의원들이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나쁜 거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5월 10일 공권력감시대응팀 소속 활동가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개최하겠다고 신청한 집회가 불허되자 삼각지역 인근에서 집회의 자유를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 5월 10일 공권력감시대응팀 소속 활동가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개최하겠다고 신청한 집회가 불허되자 삼각지역 인근에서 집회의 자유를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문 전 대통령 퇴임 후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주변에서는 극우단체의 집회·시위가 지속됐다. 특히 밤새 소음에 시달린 이곳 주민들이 상당한 피해를 호소했다. 그럼에도 사저 주변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점도 반대 논거로 언급된다. 현행 집시법으로도 심각한 소음 피해를 주면 제재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경호법에 근거해 사저 주변의 경호 범위를 확대할 수도 있다. 실제 대통령 경호처는 지난해 8월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의 경호구역을 넓혀 사저 주변 300m 이내에서 집회가 금지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조지호 경찰청 차장은 지난 6월 15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한 자리에서 문 전 대통령의 사저 주변 상황을 두고 “경호구역으로 설정을 하고 경호구역 내에서는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라며 “경호구역으로 설정되기 전과 후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현재는 비교적 안정돼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대통령 집무실 주변을 집회 금지구역으로 두는 것 또한 비판 대상이다. 이지은 선임간사는 “시민의 뜻을 충분히 받들어서 정책에 반영하고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대통령 집무실 주변도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해 5월 대통령실이 용산에 들어선 이후부터 ‘대통령의 관저=집무실’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대통령 집무실 주변 100m 이내 집회에 금지를 통고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건의 가처분 신청 사건과 지난 1월 본안 소송에서 법원은 대통령의 관저와 집무실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경찰의 집회 금지 통고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경찰은 항소했고,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 금지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청은 또한 집시법상 주요도로에 대통령 집무실 앞을 지나는 ‘이태원로’를 추가하는 내용의 집시법 시행령 개정도 추진 중이다. 집시법은 차량 소통을 이유로 주요도로에서의 집회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한다. 이태원로가 주요도로에 포함되면 경찰이 교통 혼잡을 핑계로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를 원천 금지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를 막기 위해 국회의 입법권과 정부의 행정권이 총동원되는 양상이다. 그나마 사법부만 이를 견제하는 모습이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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