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껏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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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기자 10명에 8명꼴로 반대(한국기자협회 6월 여론조사)한다는 동아일보 정치부장 출신 이동관 대통령 대외협력특보를 기어이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했습니다. MB 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특임대사를 끝으로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을 거쳐 종편방송 패널 등을 전전하던 ‘야인’ 생활 10년여 만에 권력의 핵심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이 내정자가 내놓은 일성은 ‘공산당 기관지’입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사상도 이념도 넘나들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세상입니다. 인류가 우주 영토 확보 경쟁에까지 뛰어든 21세기에 갑자기 그 옛날 공산당을 불러들였습니다.

[편집실에서]정도껏 하자

기자가 “(공산당 기관지처럼 팩트 전달보다 주의·주장을 선전·선동하는) 매체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는 취지로 묻자 그는 “국민이 판단하시고 본인들이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예상대로 특정 언론사를 거론하지 않고, 미꾸라지마냥 교묘하게 빠져나갔습니다. 눈엣가시 같은 비판 매체들의 이름을 특정하지 않고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합니다. ‘비판하면 공산당 기관지, 칭찬하면 선진국형 권위지’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만들어버렸으니까요. 내 편을 드는 언론을 향해서는 ‘글로벌’, ‘존중’, ‘품격’, ‘첨단’ 등의 그럴듯한 명분과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마구 띄워주며 두둑한 선물보따리를 풀어놓겠지요. 그게 바로 종편 출범 등을 비롯해 MB 정부 시절부터 이들이 언론을 ‘길들여온’ 방식이니까요. 야당과 언론단체들의 비판처럼 과연 ‘방송(장악)기술자’다운 화술이요, 면모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졸지에 언론은 현 정부를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먼저 ‘자기검열’부터 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고, 대중을 향해서도 ‘공산당 기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여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실정을 비판하면, 자가당착을 꾸짖으면, 처가·장모 비리를 파헤치면 습관적으로 ‘가짜뉴스’라고 매도하더니, 그것만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이젠 아예 사상 검열의 프레임까지 씌워버린 꼴입니다. 자신들의 기준으로 ‘책임 언론’과 ‘선전·선동 매체’를 가리겠다는 언론을 향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입니다.

언론(방송)정책의 주무부처라 할 수 있는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인식이 이런 수준이라면, 또 이런 인사를 요직에 앉히는 것이 현 정권의 실체라면 과연 정권을 향한 쓴소리는 곧이곧대로 권력 핵심부로 가닿을 수 있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검찰이 공안 사건 전반에서 경찰의 수사단계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수사준칙 개정안을 최근 법무부가 마련해 입법예고했습니다. 기자의 사상을 검증하고 ‘불순·불온한’ 보도의 내막을 파헤치겠다며 틈만 보이면 검·경이 수사에 뛰어드는 ‘공안통치’ 시대 부활의 예고편이자 그 서막이라고 한다면 너무 나간 생각일까요? 이동관의 재등장은 결코 허투루 보아넘길 일이 아닙니다. 이 여름, 어떤 납량특집이나 호러물보다 더 섬뜩한 장면일 수 있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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