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폭우 사태 속 영웅? 국가가 영웅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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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6일 집중호우에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실종자 수색과 배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지난 7월 16일 집중호우에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실종자 수색과 배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성동훈 기자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폭우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캐나다 노바스코샤 지방은 지난 7월 21일 밤부터 하루에 250㎜가 넘는 강우량으로 3개월 분량의 비가 쏟아져 도로와 자동차, 가옥을 쓸어버렸다. 정부는 주도인 핼리팩스를 포함한 5개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어린이 2명을 포함한 4명이 실종됐고, 8만명 이상이 정전 피해를 겪었다고 밝혔다. 마이크 새비지 핼리팩스 시장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때 같은 폭우에 도시가 침몰됐다”고 말했다.

인도는 폭우 및 산사태 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도의 7월은 통상적인 우기이기에 비가 많이 오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극단적인 폭우가 올해 더 심각했다. 인도 북부에서도 세계문화유산 타지마할까지 침수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우기가 시작된 이후 인도 전역에서 도로 함몰, 주택 붕괴 등으로 6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접 국가인 파키스탄은 지난해 몬순 폭우로 전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면서 1739명이 숨지고 300억달러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 올해 몬순이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최소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지난해의 고통이 생생한 파키스탄인들에게 다시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한국의 기록적인 장마 폭우

한국 역시 장마 기간 이례적인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다. 장마의 지속 기간은 평년과 비슷했지만, 장마철 전국 누적 강수량이 648.7㎜로 평년 강수량의 거의 2배로, 1973년 이후 2006년과 2020년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양이었다. 특히 강우 강도(장마 기간 중 강수일수 대비 강수량)는 30.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폭우의 양도 많았지만, 한번 올 때 많이 쏟아졌다.

이번 기록적인 폭우는 47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막대한 피해를 냈다. 특히 충청도와 경북 북부지역에 폭우가 집중됐고, 200년에서 1300년에 한 번 올 확률의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이는 장마 기간 전국에 무려 322곳의 제방 붕괴로 이어졌다. 그중 249곳이 충청과 경북에 집중됐다. 이중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 있는 제방 붕괴는 미호강의 범람으로 이어졌다. 근처 궁평2지하차도로 많은 물이 순식간에 들이닥쳐 침수됐고, 지하차도 안 차량 17대에 있던 14명의 생명을 빼앗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오송 지하차도 사고로 수해 원인에 대한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한 환경부 주도의 물관리 일원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토교통부의 물관리 기능까지 넘겨받은 환경부가 수해방지를 위한 정비 사업을 소홀히 한 결과 이번 물난리를 자초했다는 비난이다. 또한 지방하천의 국가하천 승격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위기로 발생한 극한 폭우가 원인이기에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라고도 한다. 무엇이 맞는 말일까. 문제의 본질은 좀 더 복잡하게 숨어 있다.

숨어 있는 수해 사고의 본질

첫째, 사고가 난 궁평2지하차도로 범람한 미호강은 국가하천이지만 환경부가 관리하지 않는다. 현행 하천법상 국가하천 유지보수 업무를 시·도지사에게 위임할 수 있고, 또 시·도지사는 다시 시장 군수 구청장에게 재위임할 수 있다. 환경부는 국가하천 중 5대강 본류와 일부 국가하천만 직접 관리하고, 나머지는 국고 지원 방식으로 지자체에 위임한다. 미호강 역시 형식상으로는 국가하천이지만 환경부에서 충북도로, 다시 청주시로 재위임해 관리 중이다. 미호강 하도준설이나 제방보강 등 하천기능의 정상유지를 위한 점검·정비활동은 청주시가 관리한다. 환경부는 미호강의 직접적인 관리 주체가 아니다.

사고 당시 제방 붕괴가 발생한 지점은 미호강교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기존 제방을 제거하고 임시제방을 만들었다. 환경부 산하 금강유역환경청은 해당 임시제방과 관련한 하천 점용허가를 내준 바 없다고 밝혔다. 하천 수량관리를 환경부가 하든 다시 국토교통부로 돌리든 이번 미호강 제방 붕괴사고의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이번 지하차도 참사는 신속히 차량진입만 막았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사고가 난 지방차도의 관리 주체는 충북도이고, 재난안전법상 청주시도 긴급안전조치의 의무가 있다. 특히 사고 전 최소 3차례 홍수통제관리소와 주민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지하차도 통제는 없었다. 단순히 어쩔 수 없었던 기상재난이 아니었다.

둘째, 홍수에 대비한 미호강 임시제방의 설계에 의문이 있다. 하천제방과 하수도는 과거의 관측 강우량에 대비해 설계한다. 일반적으로 하천제방은 50년에서 100년, 하수도는 10년에서 30년 빈도의 강우량을 기준으로 설계한다. 하천은 좀더 구체적으로 규모에 따라 국가하천, 지방하천, 소하천으로 분류한다. 미호강은 국가하천으로 100년 빈도의 강우량 기준으로 설계한다. 미호강 제방 붕괴사고의 기존 제방고는 31.45m인데, 미호강교 확장공사를 위해 이를 허물고 임시제방은 1.71m가 낮게 29.74m로 임시제방을 쌓았다. 사고 당일 미호강 수위는 29.87m로, 임시 시공한 둑을 넘어서며 월류와 함께 둑을 무너뜨렸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 따르면 계획홍수위가 28.78m로 임시 제방고보다 낮다고 설명한다.

임시 제방고를 100년 빈도의 강우량 기준으로 설계했다면, 기존 31.45m의 제방고는 왜 2.67m나 높게 설계했을까. 기존 제방고를 쌓을 때 고려한 설계기준과 임시제방을 쌓을 때 고려한 설계기준은 왜 크게 다를까. 미호강 제방고에 대한 설계와 시공이 하천기본계획을 제대로 고려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셋째, 지구온난화로 높아진 폭우와 홍수의 불확실성이다. 기존의 방지대책들은 ‘과거’의 관측치에 기반하는데, 기후변화로 불확실해진 미래의 강우량은 과거의 설계기준을 무너뜨린다. 100년 만의 폭우, 100년 만의 폭염, 100년 만의 혹한 같은 역대급 기록은 더 이상 극한 한계치를 나타내지 못한다.

과거 2017년 7월 충북 청주시에는 시간당 최대 86.2㎜, 하루 290.2㎜ 폭우가 내렸다. 2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비였다. 수십명의 사상자와 수백억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이에 청주시는 수해백서를 내고, 중요 지역의 방재시설 설치기준을 200년 빈도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기준을 충족한 곳은 없다.

지금 수준의 제방으로는 극한 폭우를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제방을 수백 년 경험치 이상의 강우빈도에 맞춰 모두 뜯어고치기에는 한정된 예산 문제가 있다. 기존의 제방 관리와 제방 설계 홍수량을 철저히 확인하고 검토해야 한다. 설계 홍수량이 넘는 극한 폭우가 왔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기 경보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벽이나 한밤중이라도 즉시 대피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피난 시스템이 필요하다.

치수는 치국의 근간이다. 오송 지하차도 안 747번 급행버스 기사는 유리창을 깨고 승객을 먼저 탈출시키다 숨졌다. 한 영웅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다른 이들의 생명을 지켰다. 왜 국민의 생명을 영웅에게 의지해야 하는가. 국가가 그 영웅이 되기를 바란다. 삼가 오송 지하차도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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