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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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장마가 인간을 할퀴고 갔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틈을 타 대통령은 공직사회를 질타하고,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를 꾸짖는 등 책임 소재 가리기 작업이 한창입니다. ‘이태원 참사’를 겪고도, 1년 전 그 물난리를 겪고도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장탄식이 이어지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소방·경찰 등 관계당국과 공직자들은 분명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 지탄받아 마땅하지요.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이 많이 어색한 것도 사실입니다.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는 없다’는 이유로 귀국을 서두르지 않은 대통령, 나라는 수해로 난리가 났는데 해외에서 한가로이 ‘명품 쇼핑’을 하다가 현지 언론에 딱 걸린 배우자의 모습까지 겹쳐 ‘지금 누가 누구 탓을 하는 건가’ 싶어서요. ‘공복(公僕)’이라고 해서 이런 생각이 없겠습니까.

[편집실에서]인간의 이중성

공무원 사회가 생각만큼 잘 안 굴러가는 모양입니다. 대통령실이 여기도 두들겨 보고, 저기도 두들겨 보는 식으로 관계부처 장악을 도모해 보지만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국정 방향과 내용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나 검토는 없이 실·국장 경질, 스타 장관 육성, 실세 차관 내리꽂기 등의 대증적 요법에 의존한 결과입니다. 딱히 특정 부처에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형국입니다. 정책 따로, 현장 따로입니다. 혼선과 파행의 연속입니다.

대통령이 나서 “시늉만 할 거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공직사회를 향해 연일 목소리를 높여도 보지만 약발이 잘 안 듣는 듯합니다. 정권과 관가(官街)의 힘겨루기만 팽팽해지는 양상입니다. 어르고 달래다 안 되니까 나무라 보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니까 사람까지 바꾸는 식으로 갖은 수단을 동원해 보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입니다. 책임규명, 진상조사를 앞세운 대대적인 감찰(監察)·사정(司正) 몰이도 그때뿐입니다. 납작 엎드리고만 있을 뿐, 실제로 정부·여당의 기대만큼 일선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민(民)과 정권을 잇는 가교이자, 국정 수행의 손발이어야 할 공직사회가 이리 뒤숭숭하니, 그 피해는 오로지 애꿎은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이번 수해는 기본적으로 인재지만, 구조적으로는 ‘대자연의 역습’입니다. 삶의 터전조차 망가뜨려 버리는 오만한 인간을 향한 자연의 경고입니다. 겸손하게 한마음 한뜻으로 성찰하고 대비해도 모자랄 판에 네 탓 내 탓 공방을 벌이며 서로 책임을 미룹니다. 한켠에선 인공지능(AI)·로봇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일자리는 물론, 존재 자체가 위협받게 됐다며 갖은 ‘엄살’을 떨고 있습니다. 인류 앞에 도사린 정말 큰 위협은 AI의 공습일까요, 자연의 역습일까요. 아니면 AI를 경쟁적으로 들이는 것도 인간이고, 자연을 짓밟는 것도 인간이라는 점에서 탐욕과 모순, 뻔뻔함과 무모함으로 얼룩진 ‘인간의 이중성’일까요.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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