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은 ‘물건’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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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생명으로 인정하는 민법개정안 법사위 상정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빚을 갚지 못하거나 세금을 체납하면 재산이 압류될 수 있다. 이른바 ‘빨간 딱지’가 붙는 것이다. 자동차, 냉장고, TV 등. 가족이나 다름없는 ‘반려동물’도 압류 대상에 해당한다. 반려동물이 다른 사람의 고의나 과실로 다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치료비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반려동물의 교환가치(시장가격)를 초과한 액수는 배상받을 수 없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반려동물이지만, 부부가 이혼할 때는 양육이 아닌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

기본적으로 동물은 ‘물건’이기 때문에 그렇다. 현행 민법은 사람만이 권리와 의무의 주체이고 물건은 객체로 규정한다. 동물은 그 지위를 별도로 부여하지 않아 물건으로 묶이는 것이다. 이런 법체계가 현실과는 동떨어진다는 지적은 지속해서 제기됐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0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동물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또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정부가 마련해 2021년 10월 국회에 제출했다. 민법 개정안의 시행만으로 곧바로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반려동물에게 빨간 딱지를 붙이지 않는 등 동물권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려면 별도의 후속 입법이 뒤따라야 한다. 민법 개정안은 동물권을 둘러싼 논의를 확장하기 위한 ‘발판’인 셈이다. 민법 개정안을 두고 “끝이 아닌 시작, 목적이 아닌 수단”(조해인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장)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민법 개정안 등이 상정됐다. 정부가 법안을 추진한 지 약 2년 만에 본격적인 논의 테이블에 오른 것이다.

후속 입법 동반돼야 실질적 변화 

법무부는 2021년 7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동물의 법적 지위를 새롭게 규정한 내용이다. 현행 민법 제98조는 물건을 ‘유체물 및 전기(電氣)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으로 정의한다. 동물은 유체물(물건)에 해당한다. 반면 법무부의 개정안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제98조의2)을 신설했다. 법무부는 “반려동물 가구가 증가하면서 동물을 생명체로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라며 “인식 변화를 법 제도에 반영하고 동물과 사람을 막론하고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견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법무부는 그해 10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안보다 동물의 법적 지위를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 민법 개정안이 최근 발의되기도 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7일 내놓은 개정안은 ‘동물은 물건이 아닌 감각이 있는 생명체이다’라고 규정했다.

이런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더라도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법체계가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는다. 개정안에는 ‘동물에 대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라는 단서 조항도 있기 때문이다. 동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룰지를 개별 법률에 명시해야 비로소 동물과 물건의 구분이 실현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은 선언적 규정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2020년 12월 28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유영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2020년 12월 28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유영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고 의미가 없거나 적은 건 아니다. 일단 동물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는 동물학대를 보다 엄중하게 처벌하거나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동물권 연구 변호사 단체(PNR)’ 공동대표인 박주연 변호사는 “최소한 동물이 물건과 달리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 또는 지각력이 있고, 지능이 있는 생명체라는 인식을 명문화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규정은 무엇보다 동물권 보호를 위한 논의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디딤돌로서 그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정 동물을 압류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후속 제도 마련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런 후속 제도는 민법 개정안의 단서 조항처럼 ‘특별한 규정’이 담긴 법률을 제·개정해야 가능하다.

조해인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장(변호사)은 이런 맥락에서 민법 개정안을 두고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라고 표현했다. 조 센터장은 “민법에서 선언적으로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전제를 깔았으면, 동물을 물건처럼 취급하지 않도록 특별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이어지는 조치가 없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후속 입법을 통해 구체적인 강제 규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해외 사례를 봐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규정을 만들고 후속 입법을 통해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는 단계를 거쳤다.

교환가치 이상의 치료비 배상 가능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의 후속 성격을 지닌 법안은 국회의원 발의로 여러 건이 계류돼 있다. 우선 동물을 압류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민사집행법 개정안이 있다. 총 6건이다. 현재 압류가 금지된 물건은 의복·침구 등 생활필수품, 한 달간 생계비, 훈장·포장, 위패·영정, 족보, 안경·보청기 등 신체보조기구 등이다. 여기에 동물을 추가하는 것이다. 다만 압류 금지에 해당하는 동물의 범위는 개정안별로 다르다. ‘반려동물이나 비영리 목적으로 사육하는 동물’,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개, 고양이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동물’ 등이다.

반려동물은 ‘물건’일까 아닐까?

반려동물이 타인의 고의나 과실로 다쳤을 때 교환가치를 넘어선 액수까지 손해배상이 가능토록 하는 민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보통 물건은 교환가치, 즉 시장가격을 초과하는 수리비는 배상액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민법상 동물도 물건으로 분류되면서 고액의 치료비가 나와도 교환가치 내에서만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반려동물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겼다. 하급심에서는 반려동물이 사망한 사건에서 위자료를 인정한 사례가 가끔 나오고 있다. 이를 법률에 명확히 규정하면 혼선을 방지할 수 있다.

부부가 이혼할 때 반려동물의 양육권과 양육비 부담 등을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결정토록 하는 민법 개정안도 눈에 띈다. 현재 동물은 재산분할의 대상일 뿐이다. 이 외에도 관련 법안이 발의된 건 아니지만 반려동물에도 상속이 가능토록 하거나 신탁의 수익자가 되게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또 찻길에서 동물이 사고를 당하는 이른바 ‘로드킬’이 발생했을 때 동물을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명시한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있다. 동물이 사고를 당했을 때 구호 의무가 없어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시체로 인한 2차 사고 발생을 예방하자는 취지다.

소송 당사자 자격 인정될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두고 한국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이다. 오는 7월 30일까지 청구인을 모집한다. 민변은 청구인에 생태계를 대표해 고래를 넣기로 했다. 하지만 고래가 소송의 주체로 인정받기는 어려우리란 관측이 나온다. 그간 법원은 동물을 소송의 원고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18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막아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에서 산양 28마리가 원고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법원은 동물은 원고 자격이 없다며 각하했다.

향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민법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동물의 소송 당사자 인정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주연 변호사는 “민법 개정 없이는 동물이 소송의 주체가 될 가능성은 아예 없다. 민법 개정은 일종의 교두보”라며 “이어 민사소송법에 동물이 원고가 될 수 있게 규정하는 방법이 있다. 공익소송 등에서 어떤 주체가 동물을 대변할지 구체적인 절차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2월 서울 한강 여의도 수영장 부지에 있는 반려견 쉼터에서 강아지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3월 2월 서울 한강 여의도 수영장 부지에 있는 반려견 쉼터에서 강아지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연합뉴스

2년 만에 논의 테이블에 올라 

정부와 국회의원이 발의한 민법 등 각종 개정안은 지난 7월 13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일괄 상정됐다. 앞서 여야는 지난 4월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는 등의 이유로 처리하지 못했다.

법원행정처는 주간경향 질의에 “개정안의 입법 취지에는 공감한다”라면서도 “다만 법률 개정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와 부작용, 다른 법과의 체계적 적합성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행정처는 “동물이 사법상 어떤 권리·지위를 지니는지를 구체적으로 규율하지 않아 법적 혼란과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라며 “동물이 민법상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경우, 자칫 영업 목적으로 사육되고 있는 가축 등을 대상으로 하는 재산범죄 성립에도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형사법, 행정법 등 공법 영역에서 동물에 대한 구체적인 보호를 강화하는 방안이 동물보호를 위한 보다 실천적이고 실질적인 방향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박주연 변호사는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동물의 법적 지위가 곧바로 주체로 승격되는 것이 아니고, 동물이 당장 형법상 재물의 범위에서 제외되지도 않는다”라며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사회적 혼란이나 중대한 변화는 거의 없거나 최소한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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