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음악가의 영원한 시네마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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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영화가 시작되면 2시간 36분의 마법이 시작된다. 딴생각할 틈도 없다. 사료적 가치와 오락적 재미 모두 유효하다. 잘 만들어진 기록물을 넘어 모리꼬네와 토르나토레의 우정과 연대의 산물이다. 필히 극장에서 경험하시라.

제목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The Glance of Music, Ennio)

제작연도 2021

제작국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일본, 중국, 독일

상영시간 156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엔니오 모리꼬네,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개봉 2023년 7월 5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사 진진

㈜영화사 진진

가장 뛰어난 영화음악가는 누구일까? 답을 찾기 쉽지 않다. 질문을 바꿔보자. 현대 대중에게 영향력 있는 영화음악가는 누구일까? 엔니오 모리꼬네란 답을 부정하긴 힘들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가 여느 전기영화나 교훈적 다큐멘터리와 다른 차별성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설사 그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또 어떤 영화의 음악인지 모르더라도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시간 반에 육박하는 상영시간의 인물 다큐멘터리라는 점이 꺼려지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되면 휘몰아치는 이야기와 볼거리, 들을 거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다.

이는 매우 상투적인 방식이지만 그래서 효율적인, 전통적 다큐멘터리의 구조와 전개의 탄탄함에서 기인한다. 엔니오 모리꼬네 본인과 주변의 많은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그의 생애를 조망한다. 유명 인터뷰이들이 줄줄이 깜짝 등장한다. 이들의 면모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더불어 방대한 영상자료와 음악이 이를 입체적으로 뒷받침한다.

일단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한 인물의 개인적 삶의 궤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팬들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시간이다. 위대한 음악가임에도 보통의 사람들과 다름없이 순리를 따르며 성실히 살아온 한 인물의 희로애락은 인간적인 면에서 큰 공감과 감동을 선사한다.

풍성하고 흥미진진한 연대기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서술하는 방식도 흥미진진하다. 연대기 순으로 나열되는 작품들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과거부터 현재를 꿰뚫어 한 예술가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유추할 수 있도록 돕는다.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기억하는 친숙한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공감과 희열은 극대화된다.

막상 <시네마 천국>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기대보다 너무 짧게 언급돼 아쉬움이 크다. 음악적 성취로는 그의 수많은 작품 중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대중에게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이름을 깊이 각인시킨 작품은 <시네마 천국>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러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이 바로 <시네마 천국>을 연출했던 쥬세페 토르나토레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을 부각시키는 일이 낯간지럽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또 <시네마 천국> OST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랑의 테마’가 대를 이어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 안드레아 모리꼬네의 작곡이었다는 것도 이유일 수 있겠다.

대신 영화적 평가보다 음악의 가치를 크게 인정받은 감독의 다른 작품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보다 길게 다뤄지고 있어 인상적이다.

영화로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된 거장

토르나토레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엔니오 모리꼬네가 항상 현존하는 사람처럼 그려지는 데 중점을 뒀다고 한다. 그가 지금도 일하고 있고, 나중에 만나 와인 한 잔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처럼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단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나서야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지인의 이야기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골반부 뼈의 이상으로 수년 동안 거동이 불편했던 모리꼬네는 사망 일주일 전 낙상을 당해 병원 치료 중 2020년 7월 6일 운명했다.

<시네마 천국>으로 인연을 맺은 엔니오 모리꼬네와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우정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여년에 걸쳐 토르나토레 감독은 영화, 광고 등 자신의 모든 작업을 모리꼬네와 협업했다.

모리꼬네는 스스로 작성한 자신의 부고 말미에도 “형제나 다름없었고 인생 마지막까지 내 곁을 지켜준 페푸치오(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별명)를 특별히 기억하고 싶다”고 썼다.

이번 다큐멘터리 역시 ‘토르나토레 감독이 연출을 한다’는 조건으로 모리꼬네가 허락해 실현됐다고 전해진다. 잘 만들어진 기록물을 넘어서는 우정과 연대의 산물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2시간 36분의 마법이 시작된다. 잠시도 딴생각을 할 틈이 없다. 사료적 가치와 오락적 재미 모두 유효하다. 필히 극장에서 경험해야만 하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밖에서 기억되는 음악들

㈜영화사 진진

㈜영화사 진진


엔니오 모리꼬네는 약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400여 편이 넘는 영화 및 드라마 음악과 100여 곡에 이르는 클래식 음악을 작곡했다. 당연히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언급되는 작업은 빙산의 일각일 수밖에 없다.

영화감독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존 카펜터는 자신의 영화음악을 직접 작곡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1편의 장편영화 중 4편만 다른 작곡가에게 음악을 맡겼다. <욕망의 불꽃>(1978·해리 서크만), TV영화 <엘비스>(1979·조 렌제티), <스타맨>(1984·잭 니체), 그리고 SF호러의 걸작으로 꼽히는 <괴물>(1982·엔니오 모리꼬네)이다.

대중에게 잊힌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영화는 <엑소시스트 2>(1977)다. 전편의 크나큰 성공이 되레 짐이 돼버린 불운한 속편 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이유 없이 악마에게 선택돼 고난을 받았던 소녀는 속편에서 ‘스스로 선택한 희생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처연하고 비애어린 영화의 주제를 강화한다. 특히 메인 테마라고 할 수 있는 ‘리건의 테마’는 백미다.

한국 대중에게는 <프로페셔널>(1981) 삽입곡 ‘치 마이(Chi Mai)’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TV를 통해 <어느 연약한 짐승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방영되면서 음악도 널리 사랑을 받았다. 이 곡이 더욱 친근해진 건 한 어묵회사의 맛살 광고에 쓰였기 때문이다. 당시 분위기상 저작권 해결은 고려조차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모리꼬네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 추억의 광고는 유튜브(youtu.be/rKbGdm CEhs0)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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