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말로 살고 말로 벌 받은 시시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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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포스’(1549년, 캔버스에 유채,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소장)

‘시시포스’(1549년, 캔버스에 유채,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소장)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는 속담이 있다. 말은 양날의 칼과 같다. 말을 잘하면 인기를 얻지만 잘못 쓰면 칼이 되어 자신을 찌른다.

그리스신화에서 말을 잘해 지옥에서 살아남았지만 결국 말 때문에 더 지독한 형벌을 받게 된 사람이 시시포스다. 시시포스는 테살리아의 왕 아이올로스의 아들로 코린토스를 건설했다. 시시포스는 영어로는 ‘시지푸스’, 프랑스어는 ‘시지프’라고 한다. 교활하고 음흉한 인간으로 꾀가 많고 말솜씨가 뛰어났다.

시시포스는 어느 날 제우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 아이기나를 납치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제우스는 시시포스에게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딸을 잃어버린 아소포스는 딸을 찾기 위해 그리스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 여파로 그리스 전역은 가뭄에 시달리게 된다.

시시포스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자 귀한 샘물을 얻기 위해 아소포스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해준다. 시시포스 때문에 아소포스가 쳐들어온 것을 알게 된 제우스는 분노해 죽음의 신 타나로스를 시켜 지하세계로 끌고 가게 한다. 그러나 시시포스는 끌려가는 도중 타나로스를 술에 취하게 한 다음 쇠사슬로 묶어버렸다. 타나로스의 활동이 막히자 죽는 사람들이 없어 지하세계의 질서가 무너지게 된다.

제우스는 전쟁의 신 아레스를 시켜 그를 지하세계로 끌고 갔다. 시시포스는 지하세계로 잡혀가면서 아내 메로페에게 다시 살아올 방법이 있으니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한다.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는 이를 수상히 여겨 시시포스에게 이유를 묻는다. 시시포스는 들짐승의 먹이가 된 자신을 함부로 하는 아내의 만행을 고발하면서 며칠 시간을 주면 아내를 혼내주고 돌아오겠다고 한다. 시시포스의 현란한 말솜씨에 속은 하데스는 그를 지상으로 귀환시킨다. 시시포스는 그러나 하데스를 조롱하며 지하세계로 돌아가지 않고 숨어버린다.

분노한 하데스는 타나로스를 보내 시시포스를 체포한 후 지하세계의 아주 높은 산의 기슭에 놓여 있던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가리키면서 그것을 산 정상에 올려놓는 형벌을 내린다. 그런데 시시포스가 바윗덩어리를 어깨에 메고 힘들게 올려놓으면 바위는 다시 산기슭을 향해 굴러떨어졌다. 결국 시시포스는 영원히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시시포스가 형벌을 받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티치아노 베첼리오(1488~1576)의 ‘시시포스’다.

어깨에 커다란 바위를 짊어지고 있는 시시포스의 굽은 등은 바위가 무겁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벌어진 다리는 그가 산을 오르고 있음을, 어두운 배경은 지하세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티치아노의 이 작품에서 시시포스 다리 옆의 뱀을 비롯한 여러 동물은 그가 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음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시시포스의 형벌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을 가리킨다. 그 이면에는 말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인간의 교활함이 있다. 결국 말은 사람을 현혹할 수는 있어도, 진실을 가리지는 못한다.

<박희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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